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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22. 2022

"혼잣말"의 힘

내가 부정적인 삶을 살아오게 된 이유.

"아 짜증 나!"

내게는 부정적인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짜증 나는 일이 생길 때 "스트레스 해소"를 한답시고 한두 마디씩 내뱉는 수준이었지만, 결국 그렇게 생긴 습관은 고스란히 내 일상으로 옮겨졌다.

머릿속에 고민이 많을 때는 고민을 정리하기 위하여,

화가 날 때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하여,

하다 못해 아무 생각도 없을 때는 "심심하다~." 하는 식으로라도 정말 끝도 없이 말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난 근래에 이 '혼잣말'이라는 것의 치명적인 위험성과, 놀라운 효과를 깨달았다.

나는 제멋대로 스스로를 '이런 사람'이라며 정의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혼잣말의 위험성을 깨달아야만 한다.

세상

아버지는 세상에 당연한 건 자연법칙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것은 아무리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이라도 최대한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에는 다각도의 시선이 존재한다. 

어쩌면 상식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시사 이슈가 터졌을 때 댓글창에서 "중립기어를 박겠다"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찾아본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실천 중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 또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항상 타인에게 이러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었다.

나는 정치색도 없으며, 쉽게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는다. 

나의 문제는, 정작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는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 기사가 되지 못하는, 스스로의 문제들에서 우리는 어떻게 의견을 표출할까?

바로 혼잣말이다.

예시로, 인터넷 기사란에 "나는 A가 싫어"라는 댓글이 달렸다고 시작해보자.

그 순간부터 위 댓글을 작성한 네티즌은 스스로에게도 'A가 싫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댓글을 적기 전까지는 나름 스스로를 설득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엔터키가 눌런 그 순간부터 그를 설득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진다. 인간의 모순을 피하려는 습성 때문이다. 이미 A가 싫다 라는 댓글을 달았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A가 좋다는 댓글을 달수 있겠는가? 설령 후에 A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도 입장을 번복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혼잣말이 이 댓글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들, 그 상황들 또한 전부 시사이슈처럼 다양한 각도의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혼잣말을 내뱉는가? 무슨 거창한 상황같은에만 적용되는 로직이 아니다. 가령 일어났는데 밖에 비가 와서 "아.. 씨 비 오네." 하고 혼잣말을 내뱉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부터 우리의 뇌는 저 말을 한 자신을 부정하기 않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곧 정말로 기분이 안 좋아질 것이다. 혹시 살아가며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한 자리에서 같은 사람에게 모순된 말을 내뱉지는 않는다.

혼잣말도 이와 똑같은 대화다. 그리고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하여 몸을 바꾸어 간다.


혼잣말에도 타인에게 대화할 때처럼 무게를 두어야 한다.

우리가 이슈가 터졌을 때 중립적인 시각을 취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이런 시각을 취할 줄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뇌의 이런 습성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간단히, 조금 중립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혼잣말을 많이 해보자.

밖에 나왔을 때 "날씨 좋네~" 한 마디,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불안해질 것 같을 때는 "다 잘될 거야" 한 마디.

과제를 하다가 쌍욕이 나올 것 같은 순간에는, 차마 쌍욕을 하는 대신 그냥 입을 다물자.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항상 비관적인 태도로 삶에 임관하던 나는 꽤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또한 이는 내가 스스로에게 무슨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가 긍정적인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노력하는 건지, 그냥 내가 긍정직인 사람인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강한 최면에 걸렸다. 

구분할 필요가 없다. 너무 낙관주의적인 태도 아니냐고? 낙관주의자가 비관주의자보다는 낫다는 의견이다.

시사이슈를 대할 때와는 달리, 나 스스로를 대할 때는 중립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 낙관주의적인 태도를 취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분 좋게 산다고 하여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지 않는가?

나도 작은 습관 하나를 바꿈으로써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만약 본인이 왠지 모르게 항상 우울하다면, 속는 셈 치고 시도해보면 좋겠다.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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