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생명이고, 마음은 그 생명을 깨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응답하는 댓글은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브런치 120편의 글을 통해 배웠다.
오늘로 나는 브런치에 120편의 글을 올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대견하다.
그 매일의 글쓰기에는
내 삶을 정리하고,
아픈 시간을 털어내고,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 글들 아래에는
참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대단하십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 너무 따뜻합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며 힘을 얻습니다.”
댓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다시 글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글은 혼자 쓰지만, 그 글의 생명은 독자와 함께 만든다는 것.
특히 아내 이야기를 쓴 글에는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과 위로를 보내주었다.
“아내분 꼭 건강해지실 거예요.”
“이런 남편을 둔 아내분은 참 사랑받는 분입니다.”
나는 그 댓글들을 아내에게 읽어주었다.
아내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들이 아내의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작가들의 신변 에세이를 보면서 배운다
나는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들의 글도 즐겨 읽는다.
특히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고백하는 신변 에세이.
어떤 글은
나보다 더한 어려움 속에서 버티고 있는 분의 기록이었고,
나는 그 글을 읽다가
아내와 함께 울컥했던 적도 있다.
누군가의 고통이 글 속에서 진실로 흘러나올 때,
그 글에는 다른 어떤 장식도 필요 없다.
그저 생명이 있었다.
나는 말하고 싶다.
글은 생명이라고.
고백의 글에서 느껴지는 숨결,
눈물을 참아가며 쓴 문장들,
삶의 파도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의 기록
그것들은 그 사람의 ‘살아 있는 흔적’이다.
그리고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준 사람들 역시
그 생명을 단단히 이어준 존재들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내 글을 읽고 느끼고 공감해줬다.
그 사실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고 본다
120편의 글.
그리고 그 아래 남겨진 수많은 마음들.
그 마음들이 내 노년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고 있다.
댓글은 단순한 후기나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보낸 생명의 편지이며,
작가에게 건네는 조용한 손잡음이다.
나는 앞으로도 쓸 것이다.
내 글을 통해 누군가가 잠시 멈춰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슬픔을 꺼내볼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은 혼자 태어나기도 하지만
결코 혼자 살아남지 않는다.
글을 살리는 것은
읽어주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댓글로 이어지는 작은 기적 안에서 다시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