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합사, 니들, 니들홀더를 선물받다
아직 실습을 나가 1인분 하기가 어려운, 외과실습초자 해보지 않은 나는 본과 1,2학년 중 하나이다(특정되고 싶지 않아 모호히 표현하는 점을 양해 부탁한다.)
나는 여러 동물병원을 다녀보았지만 모두 하루이틀의 짧은 방문이었을 뿐, 일주일 이상 장기 실습을 해본 적은 없었다.
방문해본 병원은 대부분 2차 이상의 대형병원들이었으며, 딥한 케이스들이 많았기에 인터뷰 온 학생으로서의 최선의 경험은 수술 참관 정도였다.
짧은 방문 사이에도 느껴지는 건 대형 동물병원의 특성상 위중하거나 높은 집중을 요하는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에 본과 학생이 직접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서 흔히 들려오는 인턴 수의사의 갓 취업 직후 느끼는 무능함과 그로 인한 원장, 테크니션과의 갈등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졸업 이전에 익힐 수 있는 술기가 거의 없다는 한계서 비롯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런 것이, 외과 실습은 본3이 되어서 진행되고 그마저도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치는 낮을 것이다. 본4 때 로테이션을 돌기는 하지만 최소 40명이 넘는 학생들을 모두 대학 부속 동물병원에서 관리하며 하나하나 케이스를 쥐여줄 수도 없을 뿐더러 학교 차원에서 면허도 없는 학생들에게 쉽사리 내원 환자를 보게끔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저러한 한계 속에서 주어진 커리큘럼만 소화한다는 전제 하에 졸업 직후 취업을 하게 된 초보 수의사들은 처음에는 누구나 이렇게 무력해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무작정 집 근처 동물병원에 순차적으로 연락을 돌렸다. 직접 찾아뵙는 건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 전화로 여쭤보았다.
첫번째 트라이는 뛰면 1분 거리인 1인 동물병원이었다. 원장님의 약력이 화려한 편이었고 많은 정보가 나와있어 파악하기 좋았다. 개원한지 2-3년이 된 새 병원이지만 리뷰가 많고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아보였다. 학구열이 뛰어나신 원장님인 것 같아 배울 점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 전화를 드렸다.
결과는 아쉽게도 거절. 굉장히 정중하게 문자로 연락해주셔서 되려 감사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으니 두번째 트라이. 아까 병원 보다는 멀지만 그래도 도보 10-15분 이내인 병원이다. 첫번째 병원과는 결이 많이 달랐고 그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위 병원은 이론적 배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이 병원은 원장님 연세가 많으신 편이어서 경력이 굉장히 긴 편일 것이고 수술전문병원이라고 광고하는 점에서 수술 케이스가 많아 최소한 어시스트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등 실용적으로 배울 점을 기대했다.
그래서 또다시 무작정 전화드렸다. 연락한 당일 콜백이 오지 않아 다음날 다시 원장님께 전달되었냐 전화로 물었고 다음날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이스
다음날 찾아갔고, 한가할 때 아무때나 편하게 오라고 쿨하게 말씀하시는 원장님.
자세한 디테일은 밝히기 어렵지만 원장님은 연세가 상당히 많으셨고 터프한 상남자 그 자체셨다.
이런 스타일의 원장님은 처음이라 너무 색달랐다.
오자마자 보정부터 시키셨다. 채혈부터 마취약 배합 등 주사기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며 주사기를 여러개 주시며 한손으로 능숙하게 다루는 연습을 하라 하셨다.
수처는 할 줄 아냐 물으시길래 당연히 모른다 했다.
니들과 봉합사, 니들홀더를 주시며 원장님 속도의 절반을 따라잡으면 수처를 시켜주겠다는 호쾌한 제안을 하셨다. 원장님은 그 자리에서 의료기기 거래처에 전화하셔서 니들홀더 하나를 추가로 주문해주셨고, ‘방금 너꺼 사준거다’ 말씀하시고 담배를 피러 사라지셨다.
쾌남 그 자체, 여기 오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은 사실 굉장히 와일드하게 굴러가는 편이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만, 아무튼 그렇다. 원장님은 헤비 스모커셔서 비흡연자인 나지만 담타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더 사실적이고 화끈한 이야기들을 풀고 싶지만 아무리 익명이라고 해도 모든 걸 솔직히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 정도로만 하겠다.
아무튼 그렇게 첫날부터 내게 바늘과 봉합사, 니들홀더를 선물해주신 원장님 덕에 쿠팡에서 봉합연습용 피부모형을 구매해서 2시간 동안 연습해보았다.
실습 이틀차에는 마취약 주사와 여아중성화를 짧게나마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복부 절개 부위를 통해 후크로 난관을 찾아볼 기회를 주셨는데, 너무 조심스럽기도 했고 이걸 어떻게 찾는 건지 지방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후크를 든 것이 무색하게 끝나긴 했지만 이틀차에 이런 귀한 기회라니 앞으로가 기대됐다.
과연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걸 배워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