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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Oct 28. 2024

일기(日記)

어느 날 임금은 폐허가 된 궁터를 거닐고 있었다.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정전(正殿)은 현판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군데군데 불에 탄 문짝이 반쯤 떨어져 있었다. 정문은 훼손되지 않고 반쯤 열린 채로 있었는데, 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왕을 따르는 이는 없었다. 평소 그를 따르던 궁녀와 내시(內侍)는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고, 오후의 길어진 햇빛이 정전의 마당인 조정(朝廷)으로 쓸쓸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거칠게 놓인 박석(薄石) 위로 품계석이 놓여 있었으나 그곳에도 사람은 없었다. 이 나라가 망한 것인가. 왕은 혼잣말을 해보았으나 어떤 대답도, 어떤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다. 왕은 한기를 느꼈다. 그는 잠자리에서나 입을 흰색의 야장의(夜長衣)을 걸치고 있었다. 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당 위를 바라봤다. 그곳에 왕의 의복인 곤룡포(袞龍袍)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밟히고 밟힌 모습으로, 흙발자국이 남은 채로 왕의 옷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왕은 소리쳤다. 게 아무도 없느냐. 게 아무도 없느냐. 누구든 있다면 소리를 내어보아라.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임진년과 병자년에도 버텼던 나라가 결국 이렇게 무너진 것이냐. 왕은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궁궐 담벼락 위로 붉게 물든 하늘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노을이 아니었다. 아직 저녁이 아님에도 하늘은 칼에 베인 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하늘이 왕에게는 선혈(鮮血)로 물든 왕토(王土)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게 아무도 없느냐. 아무리 소리를 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왕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곳은 그가 잠에 들었던 궁궐이 아니었다. 창덕궁도, 경희궁도 아닌 이곳은 어디인가? 왜 나는 이곳에 홀로 있는가? 그렇게 가슴속의 갑갑함이 커져가는 동안, 왕은 수차례 몸을 뒤척였고, 얼마 후 그는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궁녀들 사이에서 잠을 깼다.


한밤 중이었다. 그가 잠이 들었던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이었다. 차라리 어린 시절 누렸던 강화의 풍경이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고. 이 무슨 고약한 꿈인가. 왕은 궁녀가 건네주는 그릇을 받아 들고, 왕의 체통도 잃은 채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왕은 마음이 진정이 된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직 밤은 길었다. 무엇으로 또 이 긴 밤을 채워야 하는가. 불이 꺼진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왕의 마음은 서글프고 번잡하였다. 왜 하필 그런 꿈을 꾼 것일까? 왕은 이 나라의 운명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리인데……. 정치는 김문근(金汶根)을 비롯한 안동 김씨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임금은 배움이 없고 아둔하여 모든 처분을 대신들의 손에 맡겼고, 중궁전은 안동 김씨의 손에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두 해 전부터 임금은 몸이 좋지 않았고, 어의의 진찰을 받으며 겨우 정무를 결재했다. 형식적인 업무마저 쉽지 않았다. 왕은 역사를 몰랐다. 다만 이 왕조에도 세종(世宗) 같은 성군(聖君)이 있어, 나라의 제도를 정비하고 백성들의 살림을 돌보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임진년과 병자년에 나라의 뿌리가 뽑힐 정도로 망극한 고난이 있었으나, 그때도 조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듣기로는 효종(孝宗) 대에 제도를 크게 손보아 나라가 망할 지경을 벗어났다고 하는데, 무슨 연유인지 백성들의 삶은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임금은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었고 그때 궁녀 하나가 내전 왕의 침실 문을 살며시 열어 안을 살폈다. 아무것도 아니다. 왕은 말했고 조심스레 문이 닫혔다.


임금은 자신의 몸이 이 나라의 몸처럼 느껴졌다. 죽어가고 있구나.


왕의 아버지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은 잊힐만하면 터지는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수차례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러기에 금상(今上)은 문자를 익히고 역사와 경전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는 농민이었다. 그저 땅이나 부치고 산길을 돌며 나물이나 캐는 사람이었다. 하늘이 내려주는 것들로 목숨을 연명하고, 운이 좋으면 배필을 얻어 일가를 이루어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그가 바란 전부였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은 딱 그만큼이었다. 역사(歷史)라니. 그에게 춘추(春秋)란 서책이 아닌 땅과 하늘에 있는 것이었다. 봄이 오면 밭을 갈고, 여름이 오기 전에 모내기를 하여 농사를 짓는 것. 가을이 오면 수확을 하고 겨울을 대비하는 것. 겨울이 오면 갈무리한 것들로 견뎌내며 다시 봄농사를 기다리는 것. 그에게 춘추는 그런 것이었다.


어쩌다 뜻하지 않게 오른 왕위. 권세가들의 필요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 가시방석 위에 앉은 사람. 임금은 혼인을 하고 자식들을 얻었으나, 저주받은 옥좌 때문인지 아이들은 모두 요절하였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옹주(翁主)만이 유일한 혈육이다.


금상은 오전 느즈막 눈을 떴다. 밤새 뒤척거려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처리해야 할 정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속이 헐어 더 이상 술을 마실 수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왕의 자리에 앉은 채 속으로 곪아가고 있는 남자. 어쩌면 그보다 이 나라를 잘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임금은 생각했다. 그렇다. 이보다 이 나라에 더 잘 어울리는 왕이 어디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아둔하다는 왕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이는데, 배웠다는 식자(識者)들의 눈에는 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바람을 좀 쐬고 싶구나.


왕은 상궁의 부축을 받아 의복을 정제하고 대조전 밖으로 나왔다. 가을바람이 선선했다. 상(上)은 궁녀들의 부축을 받아 발걸음을 옮겼으나, 몇 걸음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왕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옥교(玉轎)에 올랐다. 10명의 가마꾼이 힘을 주어 가마를 들어 올렸다. 가마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가마는 후원(後苑)의 주합루(宙合樓)에 멈춰 섰다. 왕은 가마에 그대로 앉아 연못 부용지(芙蓉池)를 바라보았다. 언뜻언뜻 물 위로 주둥이를 내미는 잉어가 왕의 시야에 들어왔다. 약해진 체력 때문에 눈이 침침했으나, 임금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었다. 연못 너머로는 주합루 남쪽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이 있었다. 왕과 신하가 물과 고기처럼 만난다는 문.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하여 그처럼 임금과 신하가 한 몸이 되어 정사(政事)를 돌본다는 것이었으나, 서책에만 존재하는 말이었다.


임금이 물이라면 신하가 물고기라는데, 임금은 오히려 자신이 좁은 연못에 갇힌 잉어 신세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열린 물길로 나아가, 거침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면 좋겠구나. 임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연못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직 정정할 나이인 서른셋. 그러나 왕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가고, 안색은 흙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직접 쟁기를 휘두르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니던 때에는 몸이 고단할지언정 병으로 쓰러질 일은 없었는데, 궁에 온 후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앓아눕기 바빴다. 왕이라는 자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하지 않아야 하는 일만 있었으며, 숨 쉬는 것만이 허락된 자리였다. 임금이 해야 하는 일은 신하들이 결정한 일에 옥새를 찍는 것, 그리고 왕실 후손을 생산하는 것, 이 두 가지뿐이었다. 그는 왕실의 종마(種馬)였다.


왕은 어제 본 꿈을 다시 떠올렸다. 텅 빈 궁궐과 핏빛으로 불타는 하늘. 정사는 잘 다스려지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우니 금상은 신하들에게 정사를 맡겨놓고 마음 편히 계시면 된다고 했다. 왕은 백성들의 삶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백성이자 농민이었으나, 그들의 선택을 받은 뒤로는 철통 같은 궁궐에 갇혀, 눈 가린 새가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 새장에 갇혀 있어 나는 법조차 잊어버린 새. 그렇다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져 버렸겠는가.


풍경을 바라보던 왕의 눈에서 갑작스레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위에 있던 궁녀가 놀라며 황급히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왕에게 건넸다. 임금은 그제야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닫고, 궁녀가 건넨 손수건으로 눈을 닦았다.


솜옷을 덧대어 입었으나 혹여나 날씨가 왕의 건강을 저해할까 염려되어, 내관은 왕에게 대조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 물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고 가마꾼들은 가마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후원의 주합루. 이제는 그곳이 임금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왕은 눈을 감고 어린 시절 자란 강화의 풍경을 떠올려본다. 아, 이제는 너무나 먼 시절이라 떠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구나. 살얼음 같은 시절이었으나, 봄이 오면 지천에 피는 꽃들이, 여름이면 푸르게 물드는 산천이, 가을이면 붉게 타오르는 나무들이, 겨울이면 눈 쌓인 들판이 그의 궁궐이었다. 담벼락 없이 어디든 달려갈 수 있었고, 그의 체력이 허락하는 곳까지 어린 이원범(李元範)은 갈 수 있었다. 강화라는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으나 그는 자유로웠다. 오히려 이곳이 진정 감옥이로구나.


대조전으로 돌아간 왕은 수라를 뜨는 둥 마는 둥 하였고, 형식적인 결재 업무를 몇 건 처리한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금세 몸이 불편해진 것이다. 오후에는 옹주가 어미의 손을 잡고 궁을 찾았다. 잠시 자리에 일어나 왕은 어린 딸의 문안 인사를 받았다. 임금은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아이의 얼굴을 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털어냈다.


멸망의 예감으로 가득한 내전(內殿) 안. 저녁이 되기 전 피로한 왕은 잠시 잠이 들었다. 다행히도 임금의 숨소리는 평온했다. 주위의 내관과 궁녀들은 모처럼 안심하며 자리를 지켰다. 세파(世波)는 구중궁궐 담벼락이라는 방파제에 막혀 궁궐 안으로 조금도 들어오지 못했고, 백성들은 멀리 있어 그들의 소리가 왕의 귀에 닿지 않았다. 사관(史官)들은 왕의 말과 뜻을 기록에 남기지 않았고, 춘추(春秋, 역사)는 권세가들의 몫이었다.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땅 위에서, 오랜만에 왕은 편안한 잠을 취하였고 왕조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 단편보다 짧고 엽편보다는 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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