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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62 - 쇼핑

3.5km 거리에서의 사격은 예상대로 빗나갔다. 그래도 클론 경호원의 목을 맞추기는 했다. 처음부터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쏜 것이 아니었으니, 그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었다.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쏜 첫 발은 연단의 계단을 맞추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광경을 보았겠지만 현장이 소란스러워 눈치챈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총알이 경호원을 맞췄다.


행사장에서 6km 거리에 있는 고층 빌딩. 지하 도시의 건물이지만 20층 건물이라 옥상에 서면 그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그곳은 문서에 ‘예언’되어 있는 곳으로, 어머니 루시가 그곳을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 거리에서 유일하게 행사장을 직선거리로 관제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건물들이 행사장을 첩첩이 가리고 있는 모든 각도 중, 그곳만 시야가 열려 있었다. 육안으로는 당연히 보이지 않고, 30 배율 고성능 망원경으로 봐야 사람들의 윤곽을 볼 수 있다.


그곳 옥상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망원경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두꺼운 옥상 난간에 저격용 소총이 올려져 있고, 여인은 선 채로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고 현장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천천히 호흡을 정리한다. 들숨과 날숨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호흡을 정지한다. 온몸의 신경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여인은 망원경을 통해 한 곳을 무서운 집중력으로 바라본다.


동요할 필요 없다. 쏘고자 하는 점을 정하고, 그곳을 조준한 다음, 발사……하면 된다. 여인은 방아쇠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소란스러운 현장. 망원경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금발 사내의 머리를 숙이며 연설대 밑으로 그의 몸을 구겨 넣는 모습이 보인다. 하연은 연설대 안 남자의 머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지 가늠해 본다. 망원경으로 보기에도 작은 모습이지만, 그녀는 쌀알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처럼, 상상으로 쌀알 같은 연설대 위에 몇 개의 점을 찍는다. 그리고 조준. 그대로 발사. 다시 조준. 연이어 발사…….


49g의 고성능 저격용 철갑탄이 공기를 흔들며 6km의 거리를 날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거의 없는 시각. 탄환은 흔들림 없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총 세 발의 사격. 여인은 여전히 망원경을 주시한다. 아무 움직임도 없다. 실패한 것인가? 다시 사격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쳐질 즈음, 연단 위 검은 정장 남자들이 허둥대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들은 금발 남자의 몸을 들고 현장을 빠져나가려 한다. 거리가 멀어 완벽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하연은 남자의 이마에서 붉은 피를 본 것 같았다.


그녀는 난간 위에 올려져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하연은 하늘색 반팔 원피스에 얇은 흰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마치 이곳 백화점으로 쇼핑을 하러 온 듯한 모습. 그녀는 바닥에 있는 ‘작은 파우치’를 열어 작은 면조각을 꺼낸다. 소총을 문질러 지문을 지우고(사격 전에도 이미 흔적을 지웠지만), 소총을 분해하여 옥상 한편에 놓여있던 골프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골프 가방을 옥상 구석진 곳에 숨겨놓았다.


뒷정리가 모두 끝난 후 하연은 파우치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녀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옥상 비상구를 향해 걷는다. 그녀는 내가 손써놓은, CCTV 사각지대를 통해 2층까지 내려간다. 그녀는 그곳 매장에서 화장품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가 옥상을 빠져나가려 할 때, 나는 안드로이드를 조작해 두 발을 더 사격하게 했다(이 안드로이드는 탱크의 집 벽장에 있던 것으로, 집과 연결된 지하 통로와 하수구를 통해 현장까지 이동했다). 정교한 조작은 아니었으므로 원격으로도 충분했고, 보안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경호 당국은 마지막 사격으로 어디에서 사격 시도가 있었는지를 식별할 것이다. 그들은 행사장 3.5km 거리에 있는 15층 건물(어느 제약회사의 건물이다)로 특수화기전술팀(SWAT)을 출동시켰다.


그 사이 하연은 예정대로 백화점 2층 화장품 코너에서 BB크림을 하나 샀고, 1층 백화점 현관으로 나갔다. 그녀가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도로 위로 각진 검은색 경찰 장갑차 몇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하연의 앞으로 차량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섰다. 자동으로 차문이 열리자 하연은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에는 린이 타고 있었다.


“사려던 건 샀어?”


린이 하연에게 물었다.


“네. BB크림 하나 샀어요. 언니는요?”


“나도 샀어. 품절되기 직전에 겨우 살 수 있었어.”


린이 하이힐이 든 쇼핑백을 하연에게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탄 자율주행 차는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차는 그들의 집이 있는 A섹터를 향했다. 운전석 차량 시트에 달린 스크린에서는 ‘대통령 피습’이란 글자와 함께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대통령이 경호원들의 손에 실려 나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하연은 화면을 유심히 바라봤다. 손수건이 대통령의 이마를 가리고 있었으나, 붉게 변한 손수건으로 하연은 자신의 ‘쇼핑’이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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