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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23. 2024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3)

예불 시간은 새벽 4시였다. 3시 반 즈음 밖에서 소리가 나 문을 열어보니 종무소 아가씨가 예불 시간이라고, 4시 전에 대웅전 앞마당으로 와 달라는 말을 했다. 내가 무슨 소리인가 몰라 머리를 긁적거리자 그녀가 “원치 않으면 참여 안 하셔도 되는데요. 그래도 기왕 오신 거 참여하셨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네,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집을 나서기 전 절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환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래, 절에 가서 네 형, 연우 복 좀 빌어주고 오너라.”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섰다. 이 시간에 일어날 일이 없었기에 좀처럼 잠을 깨기 어려웠지만, 어머니의 그 말이 떠올라 나는 머리를 흔들며 억지로 잠을 털어내고, 책상 의자 위에 걸어둔 템플 스테이용 긴팔 티셔츠를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옆에서 자고 있던 규진을 흔들어 깨웠다. 그도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하다가, 예불이란 말을 듣고 참여가 하고 싶었는지 주섬주섬 옷을 입고 두꺼운 패딩 점퍼까지 껴입었다.


마당으로 가니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는 의외로 그 여자까지 와 있었다. 매사에 귀찮은 표정, 퉁명스러운 말투의 여인. 이름은 최시우라고 했다. 스물여덟. 이런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회색 템플 스테이 옷 위에 검은색 코트를 껴입고 행렬에 서 있었다. 언제 친해졌는지 여자는 세 식구 중 중년 여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에는 오후 차담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모두 와 있었다.


사람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법당으로 들어갔다. 내 앞에는 규진이 아직 졸음이 깨지 않은 걸음으로 걷고 있었고, 나는 맨 뒤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행렬을 따라갔다. 예불이 시작되고 스님은 예불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문이어서 뜻은 알 수 없었으나, 다른 스님들이 큰 절을 할 때면 나와 다른 내객들이 따라 절을 했다. 방석이 있었지만 오래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니 다리가 아팠다. 볼품없는 외모지만 키는 크고 다리는 길어, 이런 예불 자리에서는 다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절을 하면서 어머니 말대로 형의 복을 빌어주려는 생각을 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스님들의 행동을 따라 하기 바쁠 뿐이었다.


“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그렇게 내가 한참 허둥대고 있을 때, 마지막 반배를 끝으로 예불이 끝났다. 예불이 끝난 후 법당 밖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종무소의 여인은 “수고하셨어요. 많이 피곤하실 텐데, 숙소로 돌아가서 주무세요. 아침 공양은 6시인데 힘들겠다 싶으면 점심 공양에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온 하얀 입김이 새벽 공기 안으로 퍼져 들어갔다. “아! 그리고 암자 포행이 있는데, 그건 7시이에요. 참가하실 분들은 아까처럼 마당에 7시까지 나와주세요.”


나는 숙소로 가지 않고 대웅전 마당에 있는 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규진이 나를 부르며 말했다.


“인우 씨는 안 들어가요?”


“예. 전 새벽 공기 좀 쐬다가 들어가겠습니다.”


내 말에 규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서둘러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마당의 나무는 줄기가 큰 고목(古木)이었다. 짙은 녹색의 철제 울타리가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한 겨울이라 가지에 잎들은 보이지 않았다. 수령(樹齡)이 얼마나 되었을까? 살아있는 나무일까? 주변에 안내판이 없었으므로 알 길이 없었다. 주변에 불빛은 거의 없었다. 대웅전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마당 한편으로 희미하게 떨어질 뿐이었다.


나는 나무 앞에 서서 눈을 감고 합장했다. 막상 눈을 감고 있으니, 무슨 말을 속으로 읊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익숙하지도 않았다. 형의 봉안당을 찾을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형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던 때도 속으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홀로 형의 무덤을 찾을 때면 나는 그저 봉안당의 작은 칸, 몇 뼘 되지 않는 그 공간과 형의 뼛가루를 담고 있는 작은 항아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형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딘가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혼(魂)이라는 것이 있어 내가 지금 여기서 형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듣기는 할까?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죽음에 대해 딱히 떠올려본 적 없는 나로서는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형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보며 형에게 말을 건네야 하고, 형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1년 여 전 형이 세상을 떠났다. 나와 세 살 터울인 그는 서울 신촌의 어느 작은 원룸에서, 쓰레기들 틈에 갇힌 채,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다. 비닐봉지로 만들어진 산(山) 사이에서 어떻게 그 막대기를 찾았는지, 한창 의욕이 넘칠 때 운동을 하려고 문에 달아놓은 일자(一字) 형의 턱걸이 운동기구에 목을 매고 죽었다. 의사의 말로는 이틀 정도 뒤에 발견된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내가 그곳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아마 형은 더 오랜 시간, 생을 저버린 후에도 한참을 그곳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원룸 주인에게 부탁을 해 강제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동안 형이 쌓아 올린 고독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사람의 온기 대신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쓰레기봉투들. 집에 한 번 가보겠다고 할 때 왜 형이 그토록 오지 말라고 했는지, 그 집의 문이 열린 후에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그것도 이처럼 어두운 새벽에 눈을 감고 있으면,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 사실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형은 저승이든 어디든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은 비워진 그 원룸, 그렇게 견고하게 쌓여있던 쓰레기 틈에 파묻혀 있을 것 같다. 너무 앙상해서 도저히 중력(重力)의 힘으로는 생명을 빼앗기지도 않을 것 같은 모습으로…….


눈을 떴을 때, 대웅전에도 불이 꺼졌는지 주변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늘에는 반달이 떠 있어 주위가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한 것인지도. 눈가가 축축하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그것이 눈물인지 공기가 차가워 맺힌 이슬인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형의 죽음이었기에, 사실 나는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내가 울었던 것일까? 내가 형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나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울어본 적 없는 인간인데? 심지어 나 자신을 위해서도?


결국 나는 형의 복을 빌어주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죽은 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고 나는 몸을 떨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규진은 잠시 몸을 뒤척였으나, 방 안은 이내 그의 코골이 소리로 채워졌고 나는 허물처럼 벗어놓은 이부자리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얼어붙은 몸은 금세 녹아내렸지만, 가슴속에는 여전히 녹지 않는 어떤 결정 같은 것이 남아 계속 서걱거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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