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시베리아
흑곰처럼 땅 아래 잠들어 있을 나.
그게 아니라면 캐나다 설원
침엽수처럼 눈을 뒤덮고 있을 나.
그도 아니라면 사막 도마뱀처럼
발을 붙이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나.
그 어디에도 없는 나를 상상하는 것인데
그 상상의 전파는 결국
그곳들의 나에게 미치지 못하고 돌아와
잔향(殘響)으로 주변을 배회한다.
내가 여기에 있는 우연처럼
내가 거기에 있을 우연,
그 중첩된 파동이
오케스트라처럼 울려퍼지는
좁은 방
나는 오래된 라디오처럼
다시 주파수를 맞춘다.
이번에는 어디로 쏘아볼까.
내가 없는 곳의 나를 상상하며.
어느 지중해의 물고기처럼
공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헤엄칠 수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