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이 거의 없는 무장애길이라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서울 '안산 자락길'
지난 11월 18일(화)은 영하를 기록한 가장 추운 날이었다. 산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라서 걱정되었지만, 옷을 껴입고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는 독립문역 5번 출구였다. 지도 검색으로 가는 길을 검색해 보니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이라 예상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발했다.
오늘은 지인 세 명이 가끔 만나서 서울에 있는 명소를 한 곳씩 걷는 모임으로 봄에는 서초동에 있는 서리풀 공원을, 여름에는 마곡동의 서울식물원에 다녀왔고, 오늘은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자락길을 걷기로 하였다. 모두 퇴직자인데 왜 그리 바쁜지, 8월에 만나고 날짜를 겨우 맞추어 석 달 만에 만난다. 안산 자락길은 안산, 인왕산, 북한산, 백련산, 궁동산을 잇는 '서대문 이음길' 중 하나이다.
안산 자락길은 오르는 길이 여러 곳인데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서 홍제천을 따라 걷다가 홍제폭포를 만나면 폭포 뒤쪽으로 오를 수 있다. 오늘은 반대 방향인 서울 지하철 3호선인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만나 걷기로 하였다. 예상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발했더니 약속 시간인 11시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다행히 독립문역 5번 출구 나가는 방향으로 지하 2층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있어서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바깥은 영하의 날씨라 나가면 추울 텐데 참 잘 되었다.
안산 자락길은 독립문 5번 출구로 나가서 이진아 기념 도서관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독립공원 옆으로 올라가서 이진아 기념 도서관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된다. 이진아 기념 도서관은 2003년 미국 유학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이진아 양을 추모하기 위해 아버지 이상철 씨(현진어패럴 회장)가 사재를 출연해 세운 구립도서관으로 책도 많고 건물도 예쁘다. 도서관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부지런히 걸어서 오후 1시 전에 서대문 구청 식당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어야 하였기에 바로 나왔다.
안산 자락길은 등산이 아닌 산책길
도서관 뒤쪽으로 올라가면 안산자락길 들머리,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산책이 시작된다. 안산자락길 전 구간은 무장애 덱으로 계단이 거의 없어 휠체어를 타고도 갈 수 있다. 즉 등산이 아니라 산책길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지그재그 경사로를 여러 번 지나 능안정에 도착하여 잠시 앉아 쉬다가 안산자락길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날씨는 추웠으나 바람도 불지 않았고, 날씨가 맑아 인왕산, 북한산, 청와대까지 보였다. 푸른 하늘과 단풍이 어우러진 늦가을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전망대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잠시 앉아서 간식과 커피나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리면 된다.
오늘 목적지가 서대문구청 구내식당이라서 서대문구청 방향으로 내려갔다. 안산자락길은 약 7㎞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순환형 산책길이다. 서대문구청 구내식당은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외부인도 식사할 수 있다. 식사비도 4천2백 원으로 저렴하지만, 급식 질이 좋아서 구청 직원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안산자락길이나 홍제 폭포를 방문한 외부인들도 식사를 많이 하는 서대문구 맛집이다.
늦가을 낙엽 밟으며 걷는 길, 낭만이 따로 없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도 완만했다. 산책로에는 우리처럼 몇 명씩 지인들과 온 등산객, 혼자 오신 분, 부부로 보이는 분 등 이용자가 많았다. 평일 오전 시간이라서 가장 많은 분은 우리처럼 60대 70대로 보이는 여자분들이었는데 작은 가방을 메고 가볍게 걷는 분들이었다. 나는 등산화를 신지 않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산책로에는 단풍잎, 은행잎, 상수리나무 잎 등 낙엽이 많아서 낙엽을 밟고 걸으니 늦가을의 정취가 진하게 풍겨 왠지 낭만이 느껴져서 기분 좋았다. 중간에 약수터 지붕에 떨어진 낙엽이 잠시 발길을 멈추게 했다. 아마 여름이었으면 내려가서 물 한 바가지 떠서 꿀꺽꿀꺽 마셨을 거다.
내려오는 길에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들어섰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단풍 든 지금도 좋지만, 여름에 들어서면 시원함에 오래 걷고 싶은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즉 사계절이 모두 좋은 길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잣나무 숲길에 들어섰는데 잣나무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피톤치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 자리에 서서 맑은 공기 들이마시려고 심호흡하게 된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잣나무 숲길을 지나 거의 다 내려왔는데, 비닐하우스가 길게 이어져서 저건 뭘까 궁금해졌다. 가까이 가보니 황톳길이었다. 450m 되는 꽤 긴 황톳길로 겨울에 황톳길이 얼까 봐 비닐하우스로 보온을 유지하려고 만들어 놓아서 겨울에도 황톳길을 걸을 수 있어 좋겠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분들이 보였는데 황톳길을 이용하려면 걸은 후 발을 닦을 수건을 준비해야겠다. 이곳 말고도 안산자락길에는 황톳길이 중간에도 있었다. 요즘 황톳에서 맨발 걷기 하는 분이 많아서 이용하시면 좋겠다.
오늘 함께 온 분 중에 맏언니는 식물 박사다. 산책로 주변에 있는 세월이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의 거친 줄기도 알려주고, 산책로 옆에 있는 꽃무릇도 알려주었다. 꽃무릇이 산책로 옆에 길게 이어져 있어서 꽃이 피는 추석 즈음에 와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보리수나무에 남겨진 열매는 새들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식물뿐만 아니라 박새와 물까치 이름도 알려주어 산책길에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듣는 것 같아서 2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안산 자락길에는 안내판이 중간중간에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길도 완만하고 여러 길이라 각자 체력에 맞는 길을 선택해서 가볍게 걸으면 된다. 오늘만 만 팔천 보 이상을 걸었는데도 다리가 아프지 않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처럼 등산 초보자도 걷기 좋은 길이다.
서대문구청 구내식당에 12시 45분에 도착하니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식사할 수 있었다. 넓은 식당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오늘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과 미역국, 샐러드 등이었는데 이게 4천2백 원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음식이 모두 맛있었다.
식사 후에 홍제폭포 앞에 있는 폭포 카페에 갔다. 서대문구청 식당에서 5분 거리였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폭포 앞이 길게 늘어선 야외 테이블에는 앉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신 카페 안에는 앉을 자리가 거의 없었다. 폭포 카페의 매력은 만 65세 이상은 주민등록증이 있으면 커피는 천 원, 차 종류는 오백 원이 할인되는 거다. 주문등록증을 꼭 가지고 가길 바란다. 폭포카페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수익금은 어려운 청소년 장학금으로 쓰인다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안산 자락길 참 좋네요. 2시간 걸었는 데도 힘이 하나도 안 들어요."
"여긴 사계절이 다 좋아서 한 달에 한 번 와도 좋겠어요."
"우리 한 달에 한 번이 어려우면,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올까요?:
"좋아요. 다음에 오면 오늘 시간이 없어 올라가지 못한 봉수대도 올라가요."
"그러려면 다음에는 10시 30분에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만나요."
카페에서 안산 자락길 산책 소감을 나누고, 건강에 대한 이야기, 은퇴 후에 잘 사는 법 등 이야기를 나누다가 홍제천을 걸어 홍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안산 자락길은 계단도 거의 없고 데크길과 흙길로 완만하여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중간에 쉼터도 많아서 자신의 체력에 맞게 쉬면 되고, 안내판도 많아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이용자가 많으니 물어보며 걸어도 된다. 지하철로 갈 수 있으니 편하게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자연을 느끼고 싶은 분이 이용하시면 좋겠다. 역시 산에는 혹시 모를 위험도 있으니 혼자 보다는 지인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