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조난영화 찍기
새벽에 비바람이 쳤다. 그건 서울에서도 겪는 일이니까. 그런데 숲의 비바람은 소리부터 다르다. 마당 앞에서 졸졸 흐르던 주천강은 콸콸거리며 쏟아지고 자꾸 뭔가 날아다니며 내 방갈로를 쳤다. 빗방울 소리가 꼭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 같아서 자꾸만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방갈로를 에워싼 잣나무들이 휘청거리는 실루엣이 불빛에 비춰서 모른 척했다. 이 시간만 잘 견디면 돼. 지금만 잘 견디면 아침이 될 거야. 지금을 벗어나기 위해 얼른 잠들어야만 했다.
휘잉휘잉.
하지만 자꾸 밖에서 날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건 공포영화에서 듣던 소리인데. 새벽 3시. 나는 산에 고립된 조난영화 속 주인공이 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이렇게 끔찍한 소리가 나는 거야.
용기가 났는지 아니면 짜증이었는지 커튼을 젖혔다. 그러자 바람이 불 때마다 춤추듯 휘청거리는 나무들이 보였다. 이게 뭐야. 나무가 힘이 없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거였잖아. 잎사귀들이 많아서 합창하는 것처럼 무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거였잖아. 나무가 자기가 살겠다며 애쓰는 소리에 내가 겁먹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편하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