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를 기다리며
작가는 40에 태어난다지. 그럼 난 아직 응애도 못 한다. 아직 잉태 중이다. 실제로도 계약은 했지만 데뷔 전이고. 그런 내가 세상에 나가기 전 예버덩 문학의 집에 입주작가로 온 게 얼마나 행운인지. 들리는 건 물소리와 새소리 풀벌레 소리. 보이는 건 초록의 산과 파란 하늘 그리고 자연. 볕이 좋아서 테이블에 마냥 엎드려 있어도 그러려니 한다.
첫날엔 서울 독소를 뺐다. 어둠 속에서 흐르는 강물소리를 듣고있자니 내가 얼마나 조급하게 살았는지 깨닫는다. 해야 할 것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 전부 할 수 없으니, 마음은 급하고 체력은 약해지고 정신은 예민해졌다. 지쳤지. 휴일은 있었지만 휴식은 없었으니까.
같이 입주한 시인 선생님들은 부모님 연배고 경력도 많으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어리고 여전히 새파랗고 응애는 멀었어. 그런데 왜 그렇게 조급하고 늦었다는 생각에 안달 났을까. 사회적 나이로 치면 전혀 어린 것 같지 않아서. 이미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은 사회나 가정의 리더로 많은 책임을 지는 중이다. 그 모습에 시선이 안 갈 수가 없다. 이 정도 됐으면 나도 뭔가 해서, 되어서, 보여주어야 할 텐데 남들에게. 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저 이런 작가입니다. 그게 늘 될듯 말듯, 된 것 같은데 아직 내놓을 게 없으니까 많이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고 나를 몰아세웠다. 빨리, 뭔가 내놓자고 세상에.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알고 산에 들어오니 정말로 이곳엔 자연의 일부인 나밖에 없다. 자연과 나만 있다. 다른 작가들도 전부 자기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작업을 한다. 글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또 무엇인가? 나의 세계를 고요히, 그리고 묵묵히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작가’라는 세계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솔직히 이 정도면 판타지 아닌가? 문 열고 나오면 숲이고 먹을 건 항상 가득하고 종일 도서관에서 밍기적 대고 운동하러 앞산 타고 마당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작가를 귀하게 여기고 지성인들의 지혜와 연륜을 언제나 들을 수 있고 글만 쓰면 되는 곳. 늘 바라던 장면 속에 들어와 있다. 나는 산책할 수 있는 조용한 동네와 작은 도서관과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방만 있다면 그거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임을 알아간다.
행운처럼 주어진 이 고요와 평화 속에서 조급과 불안함이 만든 독소를 죄다 빼버리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 오로지 그 충만함으로 채우고 싶다. 그러니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야지. 작은 감사와 크고 작은 행복들로 날 채워야지. 오늘 하루 쓰고 싶은 만큼 글을 쓰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야지.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나를 알아다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