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 아니었는데.
Q.
저는 데뷔를 준비 중인 소설가입니다. 2년 전에 계약을 하고 작품을 준비 중인데요. 저는 변하는 것 없이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꿈에 다가간다고 느끼지만, 최근 1-2년 사이 계약을 하고 업계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는 저를 대하는 시선이나 기대감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김보영입니다’ 하고 말할 때와 ‘소설가 김보영입니다’ 라고 말할 때면 사람들의 관심도도 달라지고요. 일상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있을 수 있지만 업계에는 꼭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기도 하고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과 작가라는 직업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혼란을 느낍니다. 명확히 분리도 되지 않고 경계도 애매한 것 같아요. 뮤지컬 업계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내공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느꼈을 것 같은데요. 분명 재능이 있지만 사라진 신인도 사라지는 것도 있을 것 같고요. 이제 갓 업계에 발을 들인 신인에게 해줄 말씀이 있으신지요? 배우님의 신인 시절을 돌아봤을 때 이것은 꼭 지켰다 하는 점도 궁금합니다.
A.
일단 격려의 박수 한 번 주시고요. 언젠가 김 작가님이 쓴 소설을 우리가 읽게 될 텐데. 작가든 배우든 우리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상 우리는 평가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이 직업은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직업입니다. 여기 비평가님도 오셨잖아요.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고요. 심지어 베스트셀러가 되도 사람들은 한마디씩 합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모든 사람이 다 저를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다 무시하라고는 못 하고요. 저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싶지만 잘 안 돼요. 그때 들었던 말들이 내 안에 어딘가 좌심실 이런데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러다 잘 지내다 어느 순간 튀어나와요. 그렇지만 노력은 하자는 거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노력.
그래서 기세가 중요합니다. 자기를 믿고 기세로 밀고 나가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그 기세를 SNS에서 펼칩니다. 누가 댓글로 제 마음에 안 드는 말 하면 삭제 차단 삭제 차단 합니다. 왜? 그곳은 내 공간이니까. 그 사람이 제게 욕을 안 했어도, 제 마음에 안 드는 말, 예를 들면 제가 입은 옷을 보고 ‘옷이 앵무새 같아요’라고 하면 저는 삭제 차단 합니다. 욕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는 안 들어. 거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제 공간이니까요.
작가면 글만 쓰고 싶고 어디 나가서 인사하고 얼굴 비추고 그런 거 싫을 거예요. 하지만 해야 합니다. 비즈니스 해야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 지점을 찾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면서 단단해질 겁니다. 그 믿음과 기세로 나가야 해요…. (뮤지컬 배우 K)
사람들은 내가 쓴 글로 나를 판단했다. 넌 이럴 거야, 넌 지금 이게 안 되고 있네, 이걸 이렇게 해야겠네. 그들이 말한 건 글이었지만 나는 그걸 나로 받아들였다. 내 글이 곧 나였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파고들어서 나를 재정립하는 과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남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해체되고 단편으로 조각조각 찢어져서 나뒹굴었다. 뼈도 장기도 없이 그냥 다 찢어진 가죽 조각으로. 가죽 끄트머리를 징으로 바닥에 박아놓고 나머지는 바람에 흩날렸다.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무감각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선과 말을 한계가 있다.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전부 다 받아들이려 했다는 점이다. 왜? 모두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으니까. 나를 미워할 데가 어디 있어? 나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들이 하는 말을 전부 귀담아듣고 그 피드백을 전부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점을 고치면 나를 좋아해 줄까 봐.
단 하나의 사랑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는데.
모두가 좋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떤건 그냥 감정적이고 불쾌한 발설에 불과했는데.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