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언제나 희망에 부풀어 있다
대학교는 졸업했지만, 회사는 다니지 않았던 25살 봄. 신입사원이던 친구가 밥을 사주겠다며 광화문으로 불렀다. 1년 정도 계속 입사에 실패하다가 마지막에 ‘신도 모르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간 친구였다. 취업 준비를 하던 1년 내내 연락도 안 되고 살도 10kg 정도 빠져서 걱정했었기에 그녀의 입사가 너무나도 기뻐서 케익 하나 사서 축하를 했었다. 입사하고 한창 바빠서 연락이 끊겼다가 오랜만에 받은 연락이었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직장인들이 뜬금없이 불러내며 밥을 사줄 때, 그들의 눈은 한결같이 지쳐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눈도 어딘가 공허했다. 새로 산 정장과 백이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해서 조금은 어색한 것처럼, 무언가 열심히 따라가려다가 지친 얼굴이었다. 청계천 앞에 자리를 잡으며 오늘도 열심히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분야 전문가를 잘 찾아왔구나, 친구야.
친구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자기가 산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부리또나 치킨윙이 너무 맛있다며 입안 가득 넣고 오물거렸다. 밥 잘 먹는 건 두 번째 역할이고 첫 번째는 꿈과 희망 사항을 가득 늘어놓기. 서울시에서 지원금 받으면서 창업할까 봐. 저녁마다 수영을 다니는데 다음 달이면 평영을 나갈 거야. 너무 신나. 어디 면접을 볼 건데 기대돼. 어디 회사에 지원서를 쓸 건데 꼭 가고 싶어. 이걸 하려고, 저걸 하려고. 좋겠지? 종알종알.
“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구나. 난 이런 게 너무 그리웠어.”
친구가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일부러 더 들떠서 이야기했다는 걸 친구는 알까. 어른이 된 그녀의 눈이 희망을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각박한 현실을 따라가기 벅찰 때 어떤 사람은 여전히 꿈과 이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 싶어 한 것 같아서. 그게 더는 본인이 아닐지라도 그런 사람이 여전히 존재함을 느끼고 싶어 한 것 같아서.
어릴 때부터 밥만 먹어도 어른들이 좋아했던 이유. 아이는 언제나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걸 말하고 싶어 하며 온몸으로 티를 냈다. 당장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아마 아이의 들뜬 마음이 어른의 배고픈 눈으로 들어가서 고단하고 지친 일상을 위로했을 것이다. 더 고단하고 지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날이면 일부러 열심히 밥을 먹었다. 복스럽게 먹는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기뻤으니까.
내가 테이블에 있던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자 친구는 집에 가자고 했다. 그날 친구가 했던 말은 열 마디도 채 안 될 것이다. 그래도 얼굴은 많이 온화해져서 마음이 놓였다. 친구의 배고팠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진 것 같아서 더부룩한 속을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