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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pr 19. 2017

지금, 딱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그 순간 주변의 가능성이 현실의 윤곽으로 드러난다. 매우, 신선하게.


어떤 질문은 삶의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나와서, 발 닿는 데로 가본 적 있어?”


“네, 저 늘 그러는데요?”


“근데 소설은 왜 그래? 왜 그렇게 답이 다 정해져 있어?”


그날 이후,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실 때나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떠올랐다. 그 순간에도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정을 전부 계획하고 있었으니까. ‘잠깐, 오늘 뭘 할지, 어디로 갈지 계속 생각하고 있잖아?’ 내 몸에는 완벽한 선택을 하고 싶은 준비과정이 탑재된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이전과는 같을 수 없는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내가 이토록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니. 그 날 이후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는 훈련을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편하기보다는 불안했기에 머릿속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내가 이토록 학습된 사람이었던 걸까? 충격 속에서 집에서 나와 발 닿는 데로 걸었다. 골목길에서 갈래 길에 들어서면 어디로 갈지 고민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면 어쩌지?’ 같은 질문은 무시했다. 그냥 마음 내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나는 6년간 살았던 동네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 목련 잎이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뒷골목과 처음 보는 빌라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작은 놀이터와 텅 비어있는 경로당의 마당까지. 늘 가던 길을 벗어나니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신선함이 가득했다. 




생각 없이 나가기는 며칠간 이어졌다. 가끔은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했다. 원래 가던 곳이 아니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글을 쓰기도 했다. 어느 날은 10군데 이상의 카페를 지나도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날 저녁엔 카페 대신에 새로운 가게에서 생맥주를 마셨다. 예정대로 행동했다면 금주해야 했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무턱대고 새로운 장소에 한 번씩 들어갔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새로움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새로움이 내 일상 속에 있는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움을 발견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일상 속이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고, 길을 잃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익숙한 장소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찾음으로써 나의 일상을 신선함으로 채우고 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지 말고, 딱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주변에 있는 가능성들이 비로소 현실의 윤곽으로 드러난다. 하루를 날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오늘 하루쯤은 낭비해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딱 한 발자국만 움직여보자. 설령 하루를 버린대도, 권태로움을 느끼며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어쩌면 망했다고 생각한 하루마저 시행착오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껏 표류하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 자리잡는다. 그곳에서부터 또 다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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