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직업이 없어졌다.
기간제 교사 계약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기간제 선생님과 나의 대학 동기들은 근무하던 학교에서 재계약을 잘만 하던데, 나는 재계약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학교 관리자들이 보기엔 나의 능력이 부족했나 보다. 사실 경력도 없는 내가 바로 취직을 한 것이 신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로 뽑혀도 아쉽고 속상하긴 하지만 받아들였다. 사실,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정교사였다면 우리 아이들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다 봤을 텐데 아쉬움만 가득히 남았다. 그 후, 몇몇 학교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모두 떨어졌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타지 생활에 지쳐있던 나는 본가에서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내년에도 같이 공부해요."라는 아이들의 말에 마음 편히 "그러자"라고 대답할 수 있길 굳건히 다짐하면서. 씩씩한 사회 초년생은 그 당시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임용에 실패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떨어질만했다.
2017년, 다시 교사가 되었다.
2015년에 근무했었던 학교에서 다시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 보고 싶던 나의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기쁜 마음도 잠시,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장애학생들은 때로 퇴행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그랬다.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여쭤보았고 나는 속상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쪽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학교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만이 온전히 책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음껏 가르치며 사랑하는 것. 나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교육과 지원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제공할 수 있었던 2017학년도. 그때는 몰랐으나, 나의 교직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사실 내가 처음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던 학교는 나의 모교였다. 그곳을 졸업할 때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나의 첫 직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리고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다시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그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이때 확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뉴스에서만 보던 학교폭력업무, 악성민원, 갑질 등과 같은 일들을 내가 다 겪을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일들을 이루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한데, 원하지 않는 일들은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기도를 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도 평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