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4.
뭘 잘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편이다. 어제는 생강청을 끓여 먹으려고 냄비에 올려두고는 까맣게 잊어서 까맣게 태웠다. 사실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은은하게 계속 끓이려고 했는데 중간에 불을 올리고는 들여다보는 것을 잊었다. 생각나서 가봤을 때는 이미 연기가 자욱했다. 물은 언제 다 졸았는지 알 수 없었고 바닥에 설탕이 눌어붙어 냄비가 아주 새카맸다. 부엌 근처에 가니 천정에 부연 연기가 가득했고 인덕션 근처에 가니 탄 냄새가 났다. 그제야 뒤돌아보니 집안 전체에 연기가 가득했다.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될 때까지 어쩜 몰랐을까. 매캐한 냄새 때문에 계속 기침이 났다. 문을 열고 에어컨도 켜고 선풍기, 환풍기도 돌리고 제습기까지 동원했지만 연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띵동. 왜 하필 지금인가. 집을 보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제가 뭘 좀 태웠어요."
"안 그래도 바깥부터 냄새가 나더라고요."
쿨럭쿨럭, 들어오면서 다들 기침하신다, 으악.
어쩌다 딱 맞춰 집을 보러 오셨나 싶겠지만,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 생강청을 끓인 것은 노리고 한 일이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싶었는데 그만 욕심이 과했다. 내가 예상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 오셨다. 그래서 생강청을 끓이다 끄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잊는 내가 주된 원인이기도 하지만 좋은 집처럼 보이고 싶었던 욕심 탓도 크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보여도 되는 데 왜 그랬을까. 젠체하고 싶었나 보다.
우리 집은 이렇게 향기 납니다. 어때요, 좋지요?
경제 용어 중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보를 가진 사람과 정보가 필요한 사람 간의 불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정보의 불균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집에 살아보고 계약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집을 보여주는 사람은 최대한 좋은 집'처럼' 보이려 하는 거고 집을 보러 온 사람은 집을 구석구석 잘 살피고 등기부등본도 떼보는 것 아닐까.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제도를 마련해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거나 방지하는 것뿐이다. 이때 양자 간에 원하는 정보가 다르다면 정보의 비대칭은 더욱 심해진다. 결혼도 그렇지 않은가.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알고 결혼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 덕에 결혼이 성사되기도 하는 것 같다. 또 모르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못 본 좋은 점이 발견되기도 하니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진실되고 세상 모든 사람이 투명하게 보인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도 그래서 자꾸 잊는 것 아닐까. 다 알고 다 기억하고 살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약간은 모르고 조금은 모르는 척하며 살아야 편하다. 돌고 돌아 참 적당한 핑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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