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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찾아 헤맨 추석연휴 아침.

매일글쓰기 8.

by 다정한 여유



오늘의 글감 : 추석연휴로 사행시 혹은 글짓기.

그러니까 오늘은 써보세요. 바쁘고 분주하시다면 사행시도 괜찮지 않을까요.



추. 석 연휴가 이렇게 길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하긴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전설 같은 휴가가 아닌가. 중간에 하루를 쉬면 무려 10일을 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기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기회와 여건이 되었다면 나도 멀리 여행을 갔을까? 멀리, 길게 여행을 가본 것이 언제였던가 짚어봐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여행을 언제 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보며 설레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나이 먹어 그런 걸까?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좋아 그저 새로운 도시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워낙 여행 프로그램과 영상이 많아서 간접 경험을 생생하게 할 수 있는 덕일까. 그리고 새로운 것 중에서도 음식에 대한 도전과 경험을 중시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세계 음식이 한 손에 꼽을 정도가 된 것 같다.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오늘 책 모임에서 서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엄청난 문장을 만났다. 신영복 작가님의 '감옥에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한다.



인간의 적응력, 그것은 행복의 요람인 동시에 용기의 무덤이다.



석. 연치 않았던 부분이 말끔해졌다. 나는 지금 이 상태에 적응해 버린 것이다. 여행하지 않아도 적당히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굳이,라는 단어를 따지며 멀리 오래 여행하기는 저어하는 것이다. 여행에는 분명 많은 것들이 소요되고 소비되어야 하는데 지금보다 더 행복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부터 확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을까. 위험을 과하게 탐할 정도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 불확실성에 대한 떨림을 모두 설렘과 기대라고 여긴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 내 발밑을 바라보기보다는 늘 열 발짝 앞에 뭐가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지냈다. 분명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마치 살짝 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했었다. 나의 모험심은 이제 바닥이 난 걸까. 현재에 대한 만족이 그것을 대체한 것이라면 나는 예전보다 더 나아진 것일까, 아닐까.



연. 연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거꾸로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족해서 안주하는 현재는 과거에 한 모험의 결과일 수 있다. 시선을 돌려보면, 현재가 아닌 다른 곳을 자꾸 기웃거렸다면 원하는 무엇이 현재에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모험을 좋아했지만, 그 자체보다 모험으로 얻는 그다음을 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달리해본다. 모험과 여행의 정의도 살짝 방향을 틀어보자. 바깥세상으로의 모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요즘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다. 나 자신을 탐색하는 것도 일종의 모험과 여행이 아닐까. 미지의 정도로 치면 새로운 여행지보다 더 새롭고 더 밝혀지지 않은 영역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여행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 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살짝 모른 채로 편하게 잘 지내왔는데 그런 나 자신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불편해지고 불안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휴. 면 상태라고 생각하며 그건 나답지 못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닳고 낡아서 윤기를 잃은 것을 아닐지 걱정됐다. 용기는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변화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안정되고 고요한 자아와 일상에 자꾸만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분명하고 확실한 용기다. 어느 순간부터 책에서 읽는 '안온하다'라는 단어가 좋았다. 그 단어가 마음에 와닿은 것은 '조용하고 편안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겉으로는 우아한 백조처럼 고요한 척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이지 않는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 나는 백조이기보다는 흑조다. 백조를 불변의 진리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흑조의 발견은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한다. 모험이 중단된 줄 알고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던 나를 뒤집어 준 생각에서 출발한 글. 추석 연휴로 시작된 이 글이 자아 성찰로 끝맺음할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것도 역시 오늘 나에게 찾아온 흑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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