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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뛰어라, 난 걸을 테니.

매일 글쓰기 10.

by 다정한 여유


오늘의 글감 :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어언 넉 달째다. 석 달이 내 흥미의 평균 유효기간인 것을 고려하면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달리기를 싫어하던 내가 달리기를 신나서 하고 있다. 달리기라는 글자만으로도 지루해져 고개를 돌리던 나였다. 마라톤에 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인정했지만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최근 달리기가 유행이기도 하고 내 관심사가 달리기라서이기도 하지만 달리기의 효능에 관한 글이 자꾸 눈에 쏙쏙 들어온다.



사냥하던 인류에게 달리기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움직임이고,
걷기는 신체활동일 뿐 운동이 아니라는 것.



이렇다는데 어떻게 주변에 달리기를 권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달리기가 얼마나 재밌는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를 열심히 설파하고 있다. 내가 말하면 혹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여겨왔는데, 이건 워낙 난이도가 높아서인지 사람들이 쉽사리 넘어오지 않는다. 하긴 나도 예전에 달리기가 좋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귓등으로 들어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달리기라는 운동은 시도도 해보지 않았던 내가 러닝 전도사가 된 듯하니 내 자신도 신기하다. 한 번에 넘어올 수는 없겠지만 나처럼 변화는 어느 순간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니 계 속 달리기를 권하고 싶다. 일단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궁금해하면 슬쩍슬쩍 미끼를 던져본다.

"런데이라는 앱이 있는데 말이야..."

"오늘 달리고 나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아이에게도 화가 덜 난다니까..."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서 겨우 버스를 탔는데도 숨이 안 차더라고..."




요즘 나의 타깃 1호는 남편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남편과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 술·담배를 모두 하고 사무실에 내내 앉아있는 남편이야말로 달리기를 꼭 해야 하는 사람 같았다. 달려보면 어떻냐는 나의 제안을 남편은 단번에 거절했다. 양보를 참 잘하는 남편인데도 이 문제는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한 고집하는 편이지만 대부분 남편 의견에 따르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은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으며, 남편은 최대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아마도 서로에게 중요한 것들을 쥐고 그 사이로 치고 빠지기를 잘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이 양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참 다른 두 사람이 순탄하게 살고 있다.


달리자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 미안했던지 같이 걷는 것은 하겠단다. 그게 어디야! 하며 남편과의 밤산책이 시작되었다. 옆 단지 아파트까지 걷기도 하고 조금 떨어진 카페를 기준으로 두고 걷기도 한다. 난 걷는 남편 옆에서 제자리 뛰기에 가깝게 뛰곤 한다. 하루는 뛰면서 달리기의 이점을 열심히 설명했다.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나름 선별한 근거를 들면서 말이디. 하지만 남편은 본인이 왜 달리면 안 되는지를 더 열심히 얘기했다. 달리기가 몸에 어떻게 무리를 주는지 조곤조곤 설명하는데 하마터면 나도 뛰던 걸음을 멈출 뻔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그렇게 창과 방패가 되어 산책한 것이 몇 번이나 되었을까.


오늘도 걸으러 가자는 말에 남편은 같이 나서준다. 3킬로쯤 채우고 싶어 러닝 앱을 켜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2킬로쯤 되었는데 신호등이 나타났다. 나는 옆에서 계속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고 우리 옆을 어떤 커플 혹은 부부가 뛰며 지나갔다. 초록불이 켜져서 길을 건너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뛰기 시작했다. ‘어머나?’ 놀람과 동시에 속으로 짧은 환호성을 외치고 갑자기 뛰기 있냐며 나도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5분여를 뛰었다. 올레! 첫 시작치고는 꽤 멋지지 않은가. 평소와 무엇이 달라서 남편을 움직이게 했을까. 연휴 동안 불어난 몸무게가 남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내가 오늘 더 열심히 뛰었던가? 뛰면서 우리 옆을 지나던 어떤 부부의 모습이 좋았던가? 다음번에도 또 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너무 승리(?)에 도취되어 오버페이스를 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무심한 척 하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을 전하는 츤데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집에 들어오며 남편에게 슬쩍 물었다.

"그래도 뛰니까 쫌 좋지 않아?" 힘들단다.

"그래도 다음에 5분 정도는 뛸 수 있을 거 같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여 준다. 마지못해 끄덕인 고개지만, 나에겐 그것이 마라톤 완주를 한 것처럼 벅찬 긍정의 신호였다. 오늘은 겨우 5분이지만, 남편과 함께 뛰는 부부러닝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길 기대한다. 설레는 마음을 조금 늦춰야 하는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남편에게 어울리는 러닝화를 검색해 봐야겠다.

소중한 오늘의 기록.



*사냥을 하던 인류에게 달리기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움직임이고, 걷기는 신체활동일 뿐 운동이 아니라는 것. 이 부분은 정세희 교수님의 『길 위의 뇌』와 박용우 교수님의 『내 몸 혁명』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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