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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황금수레 03화

완전군장과 연전연패

by 조병인

김씨 부인의 말대로 황영감은 상당기간 동안 주식공부에 진심이었다.

황영감은 대박증권사가 회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투자자교육과정>도 이수하였다. 주식을 온라인으로 매매하려면 HTS나 MTS를 사용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매회 2시간씩 10강좌인 교육을 두 번 받았으니 주식을 사고 파는 법을 40시간 배운 셈이다.

알렉스 강이라는 이가 2020년 3월에 펴낸 『(네이버 증권으로 배우는)주식투자 실전 가이드북 : 주식 고수들만 아는 네이버 증권 200% 활용법!』이라는 책을 통해 맘에 드는 주식을 골라서 사고 파는 방법을 익혔다.


그만하면 완전군장을 갖췄다고 생각하면서도 첫걸음을 망설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는 것이 없어서 엄두가 안 나더니 아는 것이 쌓이고부터는 머리가 복잡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차일피일 결단을 미루다 정년 정치인 이준석이 국회의원 경력도 없이 36살 에 거대 여당의 대표가 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대박증권사에 전화를 걸어서 안내를 받고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 접속해 ISA계좌 개설에 필요한 소득확인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남들은 꼼꼼히 비교해본다는 거래수수료, 할인행사, 환전우대 같은 것은 비교해볼 생각도 안했다. 그런 정보 확인할 시간 있으면 좋은 주식을 찾는 것이 더 영리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라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잠실의 대박증권사 영업점을 찾아갔다.

분위기가 쾌적했고 직원들은 상냥했다. 창구직원이 권하는 대로 ISA계좌 외에 일반계좌와 CMA계좌를 개설했다.

갑자기 사기가 떨여졌다. 주식공부에 몰두할 때는 자신감이 펄펄 넘치더니 막상 실전에 나서려니까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동안 귀가 아프게 듣고 눈이 따갑게 들었던 주식격언들이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였다.


매수는 기술이고 매도는 예술이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
공포에 사고 탐욕에 팔아라.
나눠서 사고 나눠서 팔아라.
원금을 잃지 마라. 앞의 말을 절대 잊지 마라.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충동매매를 하지마라.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
현금 보유도 훌륭한 투자다.
주식시장은 악마의 발명품이다.
주식은 모욕의 달인이다.
신용거래는 꿈에도 생각지 마라.

생각회로가 절반은 멈춘 상태에서 유튜브를 열었다.

유망주 추천을 암시하는 썸네일들이 소리 없는 호객경쟁을 벌였다.

평소 눈여겨 봐둔 유튜버들의 영상을 두루 둘러보고 연금박사 이영주의 5분 36초짜리 동영상(삼성전주 주식을 꼭 사야하는 이유)을 따르기로 하였다.


2021년 11월 19일(목) 오전 구렁이알처럼 아껴둔 노후자금 5천만 원을 대박증권사 ISA계좌로 이체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는가 싶더니 높은 절벽에서 추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가슴을 차지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대박증권사 HTS를 열었다. <주문> 창의 ‘매수’ 단추를 눌러서 삼성전자 주식 10주를 주당 64,100원(시장가격)에 샀다. 전일보다 1퍼센트쯤 하락한 가격이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보지 못한 묘한 전율이 온몸에 번졌다.

잠시 희열감이 넘치는가 싶더니 5분, 10분 간격으로 주가가 궁금해서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주가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캔들 색깔이 붉은 주식들을 모조리 쓸어 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뇌 안에 엔도르핀·도파민·세로토닌 같은 행복호르몬이 잔뜩 쌓였는지 내가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점에 진열된 장난감을 모두 가지려는 어린애처럼 내가 매수할 주식을 남들이 재빨리 다 살까 봐 허겁지겁 새 종목을 추가했다.

날마다 새 주식을 추가할 때마다 행복지수가 위로 치솟는 것 같았다. 주식을 사는 재미에 빠지다보니 매수를 하려다 깜빡하고 매도를 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탐욕의 발작에 기인하는 주식중독의 전조(前兆)였다.


BBIG의 구색을 맞추고 카카오·네이버·셀트리온·엔씨소프트 등을 추가했다. 안전하면서 거래비용이 저렴해 초보 투자자에게 적합하다는 ETF도 샀다.

배당도 많고 수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은행주도 샀다.

큰돈을 벌려면 미국증시로 가라고 해서 FAANG과 M7 주식을 육감만으로 샀다. 워린 버핏의 어록을 읽고 S&P500 주식도 샀다.


유일하게 잘한 것은 책과 강의를 통해 습득한 주식격언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절대 하지 말라고 배운 짓은 절대로 안 했다는 것이다.

신용거래융자 같은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휴대폰 번호를 남기면 급등종목을 알려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선물이나 옵션 같은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추억을 더듬는 데도 기운이 쓰이는지 황영감은 가벼운 피로감을 느꼈다.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잠시 눈꺼풀을 닫았다.

열려있던 기억회로가 주식계좌를 잔뜩 채워놓고 행복에 취했던 시절을 소환했다.

예수를 믿지도 않으면서 계좌의 주식들이 모두 오르게 해주기를 기도하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어떤 날은 자주식시장이 닫힌 줄을 알면서도 밤에 이불속에서 휴대폰을 켜고 증권사 앱을 열어봤다. 캔들의 색깔이 빨간색이어서 희망이 부풀었던 순간보다 파란색이어서 절망에 빠졌던 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찌된 일인지 책에서 읽고 강의에서 들은 것 가운데 그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는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도 더 쉽게 생각되던 일들이 막상 해보니까 맨발로 물 위를 걷기보다도 어려웠다.

황영감은 잠시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뜨고 읽다가 덮어둔 보물지도를 끌어당겨 가운데 손가락이 닿은 곳을 펼쳤다.


2022년 5월 20일.

매수는 기술이고 매도는 예술이라고 하더니 주가가 올라도 매도시점을 정하기가 정말 어렵다. 남들은 매도신호가 나오면 주식을 판다는데 나는 그 시점을 모르겠다.


가격이 상승하던 종목도 내가 사면 가격이 내려가고 다시 팔면 가격이 올라가는 조홧속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주가가 오르면 더 오르기를 기대하다 수익을 놓치고, 주가가 내리면 다시 오르기를 바라다가 손실을 키운다.


거래량은 주가의 그림자라는 말을 실전에 써먹는 방법도 모르겠다.

고수들이 권하는 ‘나만의 투자원칙’을 세우기도 쉽지가 않다.

어떤 기업의 주식을, 언제, 얼마에, 몇 주를, 어떤 방법으로 사서, 값이 얼마가 되었을 때 어떤 방법으로 팔 것인지를 모두 미리 정하라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중요한 몇 가지만 원칙을 정한다 해도 무수히 많은 항목 가운데 어떤 항목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한단 말인가. 또 적당한 방법으로 몇 가지를 고른다 해도, 힘든 상황이 닥치면 마음이 흔들려서 지키지 못할 것 같다.

고수가 세운 원칙을 따라하고 싶어도 주변에 자신의 영업비밀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


필수인 줄 알고 공들여 익혀둔 금리, 환율, 재무제표, 기본적 분석, 기술적 분석, 가치투자, 역발상투자, 분산투자, 분할매수, 분할매도, 심리훈련, 인내, 손절매, 현금보유 등이 모두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을 못 쓴다.


기업가치 분석, 역발상, 그리고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는 뚝심이 정답인 줄은 알겠는데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무수한 종목들은 모두가 고만고만해 보인다.

독서를 통해 학습한 대로 ‘대한민국 기업정보의 창’이라는 DART에 접속해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봐도 답이 안 보인다.


자주 봐서 이름이 친숙한 기업들의 재무제표, 주식차트, 이동평균선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EPS·PER·PBS·PBR·ROE 등을 비교해 봐도 삼성전자·네이버·카카오를 놓고 저울질을 반복할 뿐이다.

알짜기업들을 찾아서 재무제표를 분석해보고 싶어도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기업들 중에 믿고 친해볼 만한 곳들을 고를 수가 없다.


어렵사리 분석대상을 좁히더라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기업의 얼굴이라는 재무제표에도 눈가림이 많고, 텔레비전의 경제뉴스나 경제신문의 증권소식도 소음 투성이라고 해서다. 진정한 고수라면 설명이 간단하고 명료해야 할 것인데 모든 서술이 어지럽고 복잡하다.


차트와 거래량만으로 주가의 등락부터 세력들의 매집과 매도까지 훤히 안다는 말은 봉이 김선달의 허풍처럼 들린다. 상장기업의 수만큼 많아 보이는 주식강의들을 들어보면 순진한 초보들을 겨냥한 ‘가짜’가 지천이다. 모두 사기꾼이면서 모두가 자기만 믿으라고 꼬인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리포트들을 샅샅이 뒤져보고, 금리와 환율의 변동을 뚫어지게 주시해도 알짜기업을 찾을 재간이 없다. 머릿속에 ‘주식투자는 운칠기삼’이라는 생각이 가득한 채로 ‘기술적 분석’을 시도했다가 실망만 키웠다.

거래량, 거래대금, 이동평균선, RSI, 볼린저 밴드, MACD, 스토캐스틱, OBV, 일목균형표 같은 지표들을 모두 적용해 봐도 매매할 종목을 고르고 매매할 시점을 정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간 과거의 흔적을 가지고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코스피 종목도 코스닥 종목도 종목선정→매수→매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단계마다 복병의 기습에 놀라서 우왕좌왕하다보면 기회는 어느새 멀리 달아난다. 최대한 신중히 결정하고 행동을 하여도, 화초는 뽑아내고 잡초만 키우는 헛발질이 다반사다.


‘좋은 주식을 매수한 뒤에 수면제를 먹고 10년 뒤에 깨어나면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거나 ‘10년 이상 보유할 주식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말라.’ 같은 조언은 산골짝을 울리는 절간의 목탁소리 같다.


공모주청약을 알리는 신문기사나 온라인광고가 요란해서 기대를 품고 응모해봤더니 고작 1,2주가 배정되었다. 그나마도 주식시장에 상장된 후에 가격이 공모가를 상회할 때만 작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만약 하회하면 원금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거액을 집어넣었다가 1주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라는 투자 상품도 공부하다가합병 시기와 대상을 알 수 없다는 결정적 맹점이 보여서 그만두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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