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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황금수레 05화

황소의 수직 이륙

by 조병인

보물지도에서 손절매에 관한 글을 읽고 있는 황영감의 안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남들은 쉽게 한다는 손절매를 할 줄 몰라서 손실을 키웠다고 생각하니 자신은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영감은 계속 읽으면 아문 상처들이 도질 것 같아 보물지도를 덮으려 하였다. 그런데 눈길이 어느새 여러 줄 앞을 가로질러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있었다. 안경을 벗고 눈을 몇 차례 껌뻑인 뒤에 찬찬히 읽어보니 출가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행자의 수행일기 같았다.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담겠다는 각오로 보유하고 있던 국내외 종목들을 모조리 처분했다. ‘초심자 행운’ 덕이었는지 국내주식 매도액은 원금보다 5퍼센트 정도 늘고 미국주식 매도액은 원금보다 10퍼센트 정도 많다.

그동안의 공부와 마음고생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다고 생각되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오랫동안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비워서 넓어진 마음의 여백에 새롭고 참신한 발상들이 들어찰 것 같다.



황영감은 그 기록하고 나서 기적 같은 행운을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의 주식투자와 관련된 다른 어떤 추억보다도 또렷하고 온전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어느 날 사색과 명상을 겸한 공원산책을 하고 있는데 이제껏 누구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금시초문의 접근법이 잠시 휴식 중이던 우뇌를 강타했다.

ETF에 편입된 기업들은 베테랑 펀드매니저들이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고 뒤져서 골랐을 것이니, 어떤 곳에 투자해도 승률이 높지 않겠어?


곧바로 네이버증권 홈피에 접속해 ‘미래의 먹거리’로 회자되는 영역의 대표적 ETF들을 검색하였다.

명칭에 반도체, 2차 전지, 인공지능(AI), 바이오, 게임, 엔터테인먼트,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 등이 들어간 상품들을 찾아봤다.

분야마다 각기 다른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테마형 ETF가 여러 개씩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가 비슷한 테마의 ETF를 두 개 이상 내놓은 경우도 보였다. 같은 영역의 여러 ETF에 담긴 기업들을 비교해 보니까 극소수의 기업들이 비중만 다르게 단골손님처럼 동시에 여기저기 담겨 있었다.

시험 삼아 반도체 ETF 7개를 취합하여 편입된 종목들을 비중 순으로 나열해 봤더니, 유망주 후보들이 즉석에서 식별되었다.

상품별로 구성기업들의 사업개요를 확인하여 시가총액 순으로 정리하였다. 종목으로 편입될 만한 자격들이 시야에 잡혔다.

2차 전지 ETF 5개와 고배당 ETF 17개를 취합하여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였더니 양쪽 모두 유망주후보풀이 즉석에서 채워졌다.

여러 ETF에 단골처럼 편입된 기업들의 사업개요를 살펴봤다.

열개가 넘는 기업을 다 확인해 봐도 알짜배기가 아닌 기업이 없었다.

유레카!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맨 길이 바로 코앞에 있을 줄이야.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부와 주요 재벌기업들이 미래의 먹거리로 점찍은 반도체, 이차전지, 헬스케어를 놓고 저울질을 해봤다. 종국적으로 ‘이차전지’를 낙점하고 대학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아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한동안 전기차 캐즘이 지속될 것이고 충전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아서 전기차 보급이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충고였다.

나는 ‘주식투자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나의 선택을 믿고 따르기로 하였다.


당시 판매되고 있던 이차전지 ETF 다섯 종류의 기본정보와 각 상품에 편입된 기업들을 파악했다.

다섯 개의 이차전지 ETF에 편입된 열두 기업의 잠재력을 검증하기 위해 자타가 고수로 인정하는 여덟 전문가의 권고를 토대로 나만의 평가지표를 만들었다.

여덟 전문가의 권고를 취합한 서른여덟 항목 중에서 뜻이 명료하여 회사 홈페이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지시스템, 경제신문 등을 통해 변별이 가능해 보이는 아홉 항목을 추려서 평가지표로 삼았다.

지표들은 공인된 것이 아니니 그것을 적용해서 매긴 점수들도 공신력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저명한 전문가 여덟 명의 안목을 정교하게 종합한 것이었기에 자력으로 난관을 뚫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평가점수를 하(A)·중(A+)·중상(A++)·최상(A+++)으로 나누어 다섯 종류의 이차전지 ETF에 편입된 열두 기업에 대해 지표별로 채점을 하였다.

평가점수가 상위에 속하는 열두 기업을 선별해 최우수 기업 네 개, 우수기업 네 개, 유망기업 네 개로 구분하였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열두 기업을 주력분야별로 분류하였다.

열두 종목을 다 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어 다섯 종목 이내로 압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해당기업과 증권사 홈페이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경제신문 등을 통해 입수한 정보와 자료들을 토대로 에코프로, 에코프로 BM, LG화학, 포스코케미컬(포스코퓨처엠), SK이노베이션 등 다섯 종목을 골랐다.

ISA 계좌에 넣어둔 오천만 원을 모두 꺼내서 종목마다 다섯 주씩 오십 주를 샀다. 다섯 종목 모두 주가차트가 상승곡선을 그려서 사흘 간격으로 다섯 주씩 추가로 매수해 계좌를 불렸다. 대다수 주식들은 캔들이 파란색인데 내가 산 다섯 종목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붉은색 일색이었다.

비슷한 무렵인 2022년 11월 즈음 배터리 학습을 위해 유튜브의 주식채널을 섭렵하다 우연히 ㈜태양의 박주혁 홍보이사가 출연한 영상을 접했다.

이후로 몇 차례 더 대담을 들어봤다.

박이사는 Y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여의도의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로 30년 가까이 활약했다며 이차전지 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자신 있게 전망하였다. 자신을 '밧데리아저씨'라 칭하며 이차전지 기술의 초격차가 만든 높은 ‘진입장벽’을 강조하며 이차전지 업종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했다.

자신의 주식계좌를 보여주면서 자기 말을 믿으면 반드시 부자가 될 거라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윤채 전 회장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머지않아 전기차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하고 무려 10년 동안 연구와 투자를 계속해 우리나라 이차전지 기술을 세계 1위로 만든 뚝심과 공로를 극구 찬양했다.

세계의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의 양극재 기술을 추월할 수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머리에 넣어 주었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이차전지)인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국내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세 회사가 선도합니다. 배터리 기술의 핵심인 수율(收率·yield)을 잡기가 쉽지 않아서 다른 나라가 기술을 배운다 해도 추월이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제가 추천하는 여덟 기업에 분산투자를 하면 3∼4년 뒤에 반드시 주가가 10배 이상 오르는 기업이 나올 겁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RMA)이 시행되면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시장을 국내 기업들이 석권할 것입니다.


깊은 내공에서 풍기는 자신감에 호감이 갔다. 입으로 쏟아내는 말마다 선경지명이 느껴져 나 같은 초보들을 위해 하늘이 특별히 보내준 메시아 같았다.

게다가 여덟 종목(에코프로, 에코프로BM, POSCO홀딩스, 나노신소재, 포스코케미컬(포스코퓨처엠),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중에서 몇 종목을 택해 장기투자를 하라고 권했다.

박이사가 추천한 여덟 종목 중에 내가 갖고 있지 않은 POSCO홀딩스와 나노신소재, 그리고 박이사가 홍보이사인 금양에 대한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을 진행하였다.

세 기업 모두 성장동력이 확실한 유망주가 확실해 보여 종잣돈을 천만 원 늘려서 공히 20주씩 매수하였다.

박이사의 예언이 거짓말처럼 들어맞았다.

세 종목을 매수한 직후부터 내가 보유한 여덟 종목의 주가가 오르는가 싶더니 날이 갈수록 상승속도가 빨라졌다.

처음에는 책에서 수없이 읽은 ‘초심자의 행운’인가 보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트의 기울기가 가팔라졌다. 여덟 종목의 차트가 일제히 HTS를 부수고 컴퓨터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로 연일 시뻘건 불기둥을 내뿜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주식의 신비에 놀라면서 표정관리에 신경을 썼다.

드디어 주식고수가 되었다는 착각이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나의 변별력을 마비시켰다.

자랑본능이 가만있지를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후손까지 부자로 살게 해 줄 비법을 찾았다는 기쁨이 과해서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애써 표정을 관리하면서 동네 구립도서관을 수시로 찾아가 경제신문의 배터리 관련 기사들을 신명 나게 읽었다.

『리튬이차전지』(2010),『처음 읽는 2차 전지 이야기』(2021), 『배터리의 미래』(2021),『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전쟁: 기술과 정책』(2022) 등을 대출하거나 직접 구입해서 순차로 읽었다.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박이사는 개미투자자들의 셀럽이 되어서 축지법을 썼다는 홍길동처럼 여러 유튜브 방송을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국내외 공매도세력의 얄팍한 잔꾀를 강하게 성토했다.

주가가 비쌀 때 남들의 주식을 빌려서(유료) 매도한 뒤에 주가가 하락하면 빌린 물량만큼 주식을 매수해서 갚는 방법으로 수익을 챙기려던 국내외 펀드매니저 중에 쌍코피가 터진 자가 많다. 국내외 펀드매니저 다수가 2차 전지 종목의 매수세가 그토록 강하게 붙을 줄 모르고 공매도에 나섰던 펀드매니저 중에 직장을 잃은 자가 여럿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한 달씩 시차를 두고 이차전지를 다룬 신간 세 권이 연달아 출간되었다.

제일 먼저 1월에 배터리 산업 전문가이자 세계 최고의 금융서비스 기업인 S&P글로벌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루카스 베드나르스키가 2021년에 영어로 펴낸 『LITHIUM: The Global Race for Battery Dominance and the New Energy Revolution』이라는 책을 위즈덤하우스가『배터리 전쟁』으로 국역하여 내놨다.


한 달 뒤인 2월에는 경상도사나이가『K-배터리 레볼루션』을 펴내서 이차전지 종목에 투자한 이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박이사의 저서는 K-배터리의 기술 초격차 전략, 배터리 산업에 대한 5가지 거짓과 진실, 투자자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K 배터리 기업 등을 소상히 다뤘다.


다시 한 달 뒤인 3월에는 2차 전지 분야 국내 최고의 석학 4인방(정경윤·이상민·이영기·전훈기)이『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이라는 저서를 펴내서 배터리가 주도하는 400조 거대 시장의 패권 경쟁을 일깨워주었다.


비슷한 무렵인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홀에서 개최된 아시아 최대의 「인터배터리(INTERBATTERY) 전시회」를 참관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에코프로BM 등의 부스를 방문해 2차 전지(원통형, 각형, 파우치형)·양극제·음극재·전구체·분리막·동박 등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제품들의 실물을 보았다.


4월에는 박이사가 어스캠퍼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제공한 ‘2차 전지 투자바이블’ 학습영상(VOD) 16개를 모두 시청했다. 학습교재를 구입하여 기업의 현재 가치를 판단하여 적정한 주가를 산정하는 방법(밸류에이션)도 익혔다. 보조교재로 제공된 <2차전지 투자바이블 노트>를 통해 이차전지 분야에 대한 투자안목을 키웠다.


그 뒤로 벌어진 일들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창고의 대문을 아무리 힘껏 닫아도 문틀에 붙어있던 '후회'와 '아쉬움'이 용케 틈새를 찾아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 뒤로 자취를 완전히 감춘 줄 알았던 나의 탐욕, 오만, 객기, 허영, 소심, 우유부단, 어리석음, 조급증, 공포심 등이 일가족처럼 줄줄이 딸려나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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