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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황금수레 07화

반가운 잠룡 등장

by 조병인

황영감은 노트를 덮고 한참 전에 어느 책에서 ‘노인과 칠면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어떤 노인이 이미 얻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다 가졌던 것까지 모두 잃었다는 줄거리다. 책의 제목은 어렴풋한데 저자는 교보증권 영업부장 박병창인 것 같았다.


황영감은 의자에서 일어나 책장 앞으로 가서 유리를 통해 주식책들의 제목을 차례로 훑어보았다.『박병창의 돈을 부르는 매매의 심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의 문을 열고 책을 밖으로 꺼내서 본문 전체를 맨 앞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넘겨봤다.

83쪽에서 86쪽에 사이에 노인이 칠면조를 더 많이 잡으려다 낭패 본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어떤 노인이 칠면조를 잡기 위해 덫을 설치했다. 커다란 나무상자의 한쪽에 문을 내고 밧줄을 묶어서 멀리 떨어져서도 문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상자 안에 칠면조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한 바가지 놓아두고 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밧줄을 잡고 상자로부터 떨어진 곳에 몸을 숨겼다. 칠면조들이 옥수수를 먹으러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밧줄을 당겨서 문을 닫고서 칠면조들을 포획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두 마리의 칠면조가 옥수수를 먹기 위해 상자 안으로 모여들었다. 노인은 한 마리만 더 들면 밧줄을 당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한 마리가 밖으로 나와서 상자 안의 칠면조가 열한 마리로 줄었다. 노인은 열두 마리였을 때 문을 안 닫은 것을 후회하며 상자를 나온 한 마리가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두 마리가 또 밖으로 나와서 상자 안에는 아홉 마리가 남았다. 노인은 열한 마리로 끝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자를 벗어난 칠면조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마리라도 더 들어가면 눈 딱 감고 문을 닫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한 마리가 더 들어가기는커녕 세 마리가 한꺼번에 상자를 나왔다. 노인은 처음에 열두 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며 똑같은 계산을 반복하다 종당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놓쳤다.


주식투자 초보자 중에도 덫에 걸린 칠면조 열두 마리를 모두 놓쳐버린 노인을 닮은 사람들이 많다. 주식을 매수할 때는 고도로 신중하게 결정을 하고서도 막상 수익이 나면 욕심과 미련의 덫에 걸려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멈칫거리다 도리어 손실을 보는 초보자가 많은 태반인 것이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오르면 주변상황이 모두 자기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주식전문가들도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고수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욕심이 부풀어 매도하려던 결심을 보유로 바꾸는 것이 대다수 초보 투자자들의 공통된 행동패턴이다.


황영감은 노인의 행동을 자신이 똑같이 따라 했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탐욕은 정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자신도 그 위치를 모르는 몸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감이 불꽃처럼 솟구쳤다. 욕심을 줄이면 탐욕을 누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황영감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생결단’을 작심했다.

끝없는 좌절보다 차라리 끔찍한 끝장이 낫다. 한 번 걸려서 넘어진 돌에 다시 또 걸려서 넘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황영감은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방안을 찾았다. 살아생전에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아는 지식과 쌓은 경험을 다 동원헤이리저리 묘안을 궁리했다.


“저녁식사 준비됐어요. 식탁으로 오세요.”

한참 묘안을 궁리하고 있는데 주방 쪽에서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나갑니다.”

황영감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들을 꺼내서 식탁에 펼쳐놓았다.

김 씨 부인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쌀밥과 보글보글 끓는 두부찌개와 껍질 타는 냄새가 고소한 고등어구이를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임금님 생일상 같소. 진수성찬과 산해진미가 다 모였구려.”

“립 서비스는 사양하오니 맛있게 드시기나 하시옵소서.”

“빈말이 아니고 내 진심을 사실대로 밝힌 거요.”

“진심이라면 정성을 알아줘서 고맙습니다.”

황영감은 식탁에 놓인 수저통에서 숟가락 두 개와 젓가락 두 벌을 꺼내놓았다.


“삑삑 삑삑! 스르륵”

식사가 막 시작되었는데 현관출입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건우는 퇴근하는 중일 텐데.”

황영감은 본능적으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거실을 지나서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쾅’ 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저 왔어요. 낮에 은행에 볼 일이 있어서 반차 냈어요. 다 처리하고 났더니 어머니 손맛이 생각나서 잠깐 들렀어요.”

황영감이 식탁을 떠나고 3초도 안 지나서 낯익은 목청이 거실을 울렸다.


“그래. 마침 잘 왔다. 어서 아버지 옆에 앉아라. 밥만 한 그릇 뜨면 되니까.”

황영감은 식탁에 앉은 채로 오른손을 의자를 빼내서 아들에게 앉으라고 하였다.

“미리 전화 좀 하지 그랬어.”

김 씨 부인은 아들을 반기면서도 불쑥 찾아온 데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들은 들고 온 손가방을 소파에 놓아두고 식탁에 앉으면서 말했다.

“힘들게 이것저것 준비하실까 봐 일부러 전화 안 했어요.”

“엄마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맙다만 무슨 일인가 해서 깜짝 놀랐잖아.”

김 씨 부인은 서운하게 생각 말라는 뜻인 줄 알면서도 아들을 책망했다.

“놀라시게 해서 죄송해요. 저 먹을 밥 없으면 라면이나 하나 끓어주세요.”

아들은 노부부만 사는 집에 여유 밥이 없을 것으로 짐작한 것 같았다.

“너 먹을 밥이 왜 없겠니. 내일 세끼 먹을 밥까지 미리 해놓았다. 아버지는 삼백육십오일 삼식이 영감 아니시냐.”

“입맛이 없어서 끼니를 거르시는 것보다 백 배 나은 거 아니에요? 그만큼 건강하시다는 증거니까요.”

황영감은 아내와 아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제까지 매사에 무조건 아내 편이던 아들이 갑자기 자신을 편드는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역시 어머니 손맛은 전국에서 최고예요. 일류호텔 요리사도 어림없지요.

황영감은 음식을 입에 넣기도 전에 말로 점수를 아들이 기특해 보였다.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맛을 칭찬하는 습관은 어쩌면 그렇게 아버지를 닮았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아버지도 그 책 읽어 보셨지요?”

황영감은 대답 대신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차전지는 잘 파셨어요?
뉴스 보니까 에코프로에 몰빵 했다가 고점에서 물린 개미가 한둘이 아니라던데요.

황영감은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숟가락으로 건진 두부토막을 입으로 가져가 후루룩 하고 들이마셨다.

“아버지 이제 주식 끊기로 하셨다.”

황영감 대신 김 씨 부인이 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내가 언제 주식을 그만둔다고 했소. 주식책들을 처분하겠다고 했지.”

황영감은 화난 사람의 안색으로 아내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만두기로 하신 거 아니에요?”

김 씨 부인은 주식책들을 모두 없애기로 한 이유를 따져 물은 것인데 황영감은 변명에 가까운 해명을 내놨다.

“나는 내가 읽어본 주식책에 없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지 주식을 안 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오.”

아들은 숟가락으로 밥을 뜨려다 말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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