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아롱이에 대한 긴 추도사
처음에 그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아직 그 트위터 닉네임도 기억이 난다. '테레사'였던 걸로. 이번에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면 꼭 유기견을 입양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연한 노란빛이 도는 강아지 사진에 혼을 뺏겼다. 너무 귀여워. 미리 눈도장을 찍어놨다가 아들이 '한 달 동안 청소해서 강아지 키우는 허락 얻어내기'에 성공하자마자 디엠을 보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쉽지만 그 강아지가 이미 입양처가 정해졌으니 다른 강아지를 봐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눈이 유달리 청승맞은 회색 개의 사진이 왔다. 머리가 작고 눈이 슬펐다. 유기견은 다 이렇게 눈이 슬픈가? 생각했다. 털 빛깔은 슈나우저 같은 배치였는데(짙은 부분은 검은 빛깔이 남) 전체적인 마스크는 말티스 같은 강아지였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유기견 입양을 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이미 '어린 강아지를 원한다'는 부끄러운 요청사항을 더한 입장에서(...오래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서 부끄러워하며 달았다) 더 이상 개를 쇼핑하듯 고를 수가 없었기에 입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강아지는 사설 울산보호소에 입소했다가 임보자에게 가 있는 상태였다. 입양이 결정되고 임보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마치 내가 개를 뺏는 것처럼 대성통곡을 해서 좀 난처했다. 어쨌든 울산보호소에서 연계된 일산보호소까지 이동 봉사를 맡아줄 사람이 정해지고, 우리는 2013년 12월 8일 일산보호소에 우리 강아지를 만나러 갔다.
출발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그날 강아지를 넘겨받을 때 이미 짧은 겨울해가 지고 있었다. 강아지는 사진보다 더 슬픈 눈이었고 매우 마르고 많이 떨었다. 머리가 너무 작아서 준비한 목걸이 사이즈가 영 컸다. 불안한 상태로 새 목걸이를 매주고 차에 태웠는데, 도착해서 차문이 열리자마자 패닉에 빠진 이 녀석이 목걸이를 벗어던지고(그래, 컸다니까!) 냅다 뛰어갔다.
유기견을 입양해서 그날 또 잃어버리는 초한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패닉에 빠졌는데, 다행히 남편이 상냥하게 "아롱아"라고 불러서 개를 진정시키고 잡았다. 남편은 그 일로 계속 뻐기곤 했다. 원래 '아롱이'라는 이름은 임보자가 지어준 이름이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부를 새 이름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개 꼴을 보아하니 너무나 소심해서 새 이름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아롱이로 정착시키기로 했다.
이런 말 미안하지만 머리가 아주 좋은 것 같지도 않았고. ㅋㅋ
집안에 들어온 후로 강아지는 사람을 좀 낯설고 어려워하면서도 거실 바닥에 앉은 아들의 엉덩이에다가 자기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붙였다. 우린 서로 낯설어하면서 밤을 맞이했다. 남편은 개는 개라며 침대에 개를 올리지 말자고 했지만 나는 낯선 환경에서 저 소심한 개가 얼마나 힘들겠냐며 일단 우겨서 내 옆에 재웠다. 남편의 '침대에 개를 올리는 건 싫다'는 표현은 그뒤로 두 번 정도 나왔지만 나중엔 그냥 자기가 들어올려서 같이 잤다.
아롱이는 사람을 무서워하면서도 정말 좋아했고, 그 작은 머리를 자기 앞발이나 내 팔에 올려놓았다. 몸이 아파서 침대에 오르는 경사로에 오를 수 없게 될 때까지 아롱이는 내 침대에서 매일 밤 잤다. 그 작고 따뜻한 몸이 옆자리에 누워 있으면 나는 내 일상이 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롱이의 추정 나이는 우리 집에 올 무렵 6개월이었다. 2킬로그램이 좀 넘는 아롱이는 임보 기간을 빼면 길거리에서 3개월 정도를 지냈고, 추정컨대 엄마도 유기견이었던 것 같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홍역과 폐렴을 앓았지만 그걸 이겨냈다. 보호소에 막 입소했을 때의 아롱이 사진은 까만 걸레뭉치 같았다. 이상하게도 강아지 시절의 등은 정말 새까매서, 같은 앤가 싶었다니까.
아롱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곧 동물병원에서 동물등록과 칩 삽입을 했다.
강아지가 오면 매일 청소를 하겠다던 아들의 약속은 당연히 공수표가 되었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그 애를 만나자마자 또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