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아롱이에 대한 긴 추도사
집안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강아지가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관문은 당연히 배변훈련이다. 그 전에 강아지의 배변훈련을 한 것은 90년대의 일이었고 그때엔 신문지를 말아 가볍게 때리면서 겁을 줘서 훈련을 하는 것이 정석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니 살벌하네) 시대가 바뀐 만큼 바뀐 방법으로 울타리를 쳐서 배변패드를 쓰게 만들기로 했는데 울타리에 갇혀서 훈련받는 것이 싫었는지 아롱이가 어느 날부터 아예 변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24시간을 참기 신공을 쓰는 것에 놀란 나는 며칠 더 시도해보다가 개를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 결정을 봤다. 그러하다. 나의 개는 주인을 참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전설의 실외배변견으로 판명된 것이다.
실외배변은 우리 아롱이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폭염 폭한이 와도 그냥 나가야 했다. 일정이 바쁘고 정신없어도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나가야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개가 오줌을 참고 있어서' 일찍 놀던 자리에서 들어간 적도 많고 아들과도 수없이 싸웠다. 저가 원해서 데려왔으면서도 산책시키는 걸 귀찮아 하는 십대의 아들놈. 개가 불쌍하기도 하고 내 자식이 너무 매몰찬 인성을 가진 것 같아 가슴이 무너졌다. 내가 뭐라고만 하면 싫어하는 놈이다 보니 내가 산책시키라고 해서 산책을 안 시키는 거 아니냐고 막 그런 걱정도 많이 했다.
아롱이는 낯을 정말 많이 가리지만 한번 그 벽을 허물고 나면 한없이 애교가 많고 스킨십을 잘했다. 부드럽게 착 온몸을 붙여 안겨오는 감촉은 지금도 선명하다. 털은 보드랍고, 작은 몸을 가득 채운 체온은 따뜻했다. 돼지고기 한 근 정도를 더 자란 후 어른이 된 내 개딸은 정말 다정했다. (나에게는)
산책을 나가면 이 녀석은 연석 위를 걷는 걸 좋아했다. 정해진 색깔의 보도블럭을 밟은 어린이처럼, 꼭 굳이 뛰어올라서 좁은 연석 위를 타닥타닥 걸었다. 산책 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개를 싫어하면서도 산책을 그렇게 꼬박꼬박 나갔다. 가능하면 세 번, 최소 두 번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말 귀찮았던 적이 많다. 사랑은 귀찮은 일이었다.
목욕은 또 어떻고. 우아함이라곤 전혀 없이 겁에 질려 욕조 턱에 앞발을 올려놓고 선 자세로 목욕했다. 가만히 욕조 안에 서서 씻으면 오죽 좋아. 씻는 내내 굳이 그렇게 벌을 섰다. 물에 적시면 깡마른 몸뚱이도 작았지만 머리가 그렇게나 작았다. 어쩐지 좀 멍청하더라니;; 털발이 사라지고 푹 젖은 강아지를 말리고 엉키기 쉬운 가느다란 털을 정리하는 요령이 생기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다. 어처구니없이 길게 길러놓다가 삭발시키기도 하고, 어떻게 해도 좀 웃기다 생각하면서도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가위컷은 안 시켰다.
아롱이가 4살이 되던 행에 미국으로 1년간 온가족이 나가게 되면서, 개를 데리고 가기 위해 꽤 애를 먹었다. 그래도 미국은 동물에 대해 나름 친한 정책을 펼치는 나라여서 다행이었다. 검색을 하고 서류를 챙기고 동물병원에 거듭 문의를 하면서 아롱이 생애 첫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했다. 그리고 그때 방광의 결정과 간수치 이상을 알게 되었다. 아직 젊은 갠데 왜 간수치가 나쁜지 알 수가 없댔다. 평생 관리해야 하니 사료부터 바꾸라는 지시를 들었지만 일단 방광 관련 사료를 먹게 되었다.
다행히 객실로 여행했지만 직항이 아닌 미국으로 가는 길 한국으로 오는 길 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에서 넓은 잔디밭을(때론 눈밭을) 신나게 뛸 수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미소가 떠오른다. 개의 생 전체에서 1년은 너무너무 길기 때문에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아롱이가 허락받은 견생의 길이는 고작 12년이었기 때문에 그중 1년을 내가 함께 보내지 못했다면 그건 너무 컸다.
미국에서 처음 맞은 전업주부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롱이가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외로웠을 것이다. 그 조용하고 따뜻한 생명이 내게 준 위로는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해준 건 너무나 작은 일들이었다. 데리고 나가 용변을 보게 하고, 내게 달려오면 안아줬다. 한 달 일찍 단둘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놈이 이동장을 파괴하는 바람에 땀을 질질 흘리며 7시간 동안 파괴된 이동장 잔해로 애를 감싸고 쩔쩔맸던 일도 지금은 그립다.
아롱이 때문에 힘들고 귀찮았던 모든 일들이 지금은 죽도록 그립다. 여행 같은 거 좀 덜 가도 좋으니까, 그만큼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딜 가든 아롱이보다 조금 큰 강아지, 작은 강아지들뿐이다. 많이 닮은 강아지, 덜 닮은 강아지가 가득하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눈물로 찔끔 새버리는 시간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살지만 사실은 너무나 보고 싶다. 한 번만 더 만질 수 있다면, 너의 촉촉한 코에 내 코를 맞대고 코뽀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