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아롱이에 대한 긴 추도사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요구르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한동안 하루야채를 배달시켜 먹었었는데, 살다 보니 자꾸 쌓이고 야채를 주스로 섭취하는 것에 대한 영양적 논란을 알게 되고 그래서 중간에 끊었다. 당시 아주머니와 함께 화제로 삼았던 것이 강아지였다. 오래 기른 개가 있는 사람들은 그거 하나로 공통 화제가 되니까.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오다가다 보는 일이 가끔 있는 상황이라 음료를 끊은 후에는 약간 면구스러워져서 어색했는데, 오늘은 냅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안부를 나눠야 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면 개가 생각나는 모양으로, 내게 아롱이의 안부를 물었다.
"지난 달에 갔어요."
"아... 그랬구나."
분위기가 또 어색해지는 걸 참지 못하고 나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주머니 댁 아이는 잘 있나요?"
"걔도 갔어요. 열아홉 살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서로 아직 생생한 수술 봉합 자리를 건드려버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아주 잠깐 더 얘기를 나눴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화장해서 뿌려줬다고 했다. 지난 봄의 일이었다고. 나는 우리 개는 간부전으로 사망했다고 얘기했다. 서로 최선을 다했음을 치하하고, 어쩔 수 없이 눈이 물기를 담고 뻘개진 채로 '타탁거리는 발자국 소리 환청'을 최대한 가볍게 얘기하려 애썼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참 곤란했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서로 등을 돌려 갈 길을 가는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발이 눈물 때문에 뿌얘 보였다. 아주머니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에 때없이 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11년 전에 인정받던 직업을 버리고 치매와 암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은퇴했던 선배는 톡으로 아롱이 안부를 묻다가 소식을 알고 "이젠 집에 가지 않아도 눈을 감으면 볼 수 있잖아. 만질 수는 없지만." 이라고 날 위로해주었다. 선배 역시 그렇게나 사랑했던 엄마를 눈 감으면 만나고 있을까? 좋은 것은 짧은 법이라는 적확한 위로에도 나는 자꾸 되묻는다. 꼭 그래야만 했는지. 조금만 더 길 수는 없었는지.
여행도 별로, 넓은 개운동장도 별로였던 쌉내향형 강아지는 이상하게도 여행 때문에 잠시 맡긴 임시 보호자에게는 내가 문을 닫고 사라지는 동시에 생존형 애교를 부렸다. 미국에서 이용한 도그베케이도, 한국에서 이용한 펫플래닛도 '우리 개는 낯가림이 심하고 짖음, 재수없으면 물기도 함'이라는 주의사항이 나만 사라지면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버렸으니 이게 참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항상 어딘가에 맡기거나 누군가에게 와달라고 했었는데, 아롱이가 영원히 떠나기 열흘 전에는 함께 여름휴가를 갔다. 위급상황이 언제 있을지 몰라서 숙소 근처의 24시간 동물병원을 포함해서 준비했고, 여차하면 여행을 취소하기 위해서 상태를 살폈다. 마지막 서비스를 하고 싶었던 걸까. 녀석의 기력은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제정신으로 먹는 것도 싸는 것도 다 되는 상태였다. 각오했던 것보다는 훨씬 양호해서 너무 즐거웠고, 내심 이 상태라면 앞으로 몇 개월은 더 버텨줄 거라고 생각했다.
휴게소에서 야외테이블에 앉아 개모차를 옆에 두고 밥을 먹었다. 개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더웠지만 일행 모두 아롱이를 위해 야외에서 함께 식사했다.
나는 욕심 많게도 겨울 여행도 벌써 마음으로 다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차 타는 걸 싫어하든 말든 이제부터는 어떤 여행이라고 해도 다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너의 선택성 붙임성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을 판이었는데 말이야.
마지막 여행은 저 혼자 먼저 가버렸다.
성질 급하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