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던 어느 해 여름 방학 때 좋은 기회가 생겨 호주에 6주 정도 머물게 되었다. 당시 나의 상황에서 내돈내산으로 해외를 한 달 이상 간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거였는데, 비용을 지원받아 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그야말로 황금 같은 기회로 호주를 갔다.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도착한 호주에서는 홈스테이를 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면 평생(?) 신호 안 바뀌니 근처 기둥의 버튼을 눌러야한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서 길을 건널 때는 습관처럼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을 살피며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약간 무서운 인상이었지만, 6살 딸이 있어서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홈스테이를 통해 문화적 교류를 기대했던 순진무구했던 나와 달리, 아주머니에게 홈스테이는 새로운 돈벌이였다. 몇 주간 함께 지내면서 식사를 같이 하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사과를 오물오물 잘 먹는 나를 보고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물었다.
"니네 나라에 사과 있니?"
"아, 네...있어요."
'사과 없는 나라도 있나? (지금 생각하면, 사과 없는 나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땐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우리나라가 사과도 없는 나라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흥칫뿡이다. 사과 있거등. 많거등. 여기보다 맛있거등'
얼마 뒤 아주머니가 집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했다. 외모에 신경이 많이 쓰이던 20대 초반의 나는 메이크업과 렌즈 착용을 해야 외출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급히 나가자고 하니 맨 얼굴에 안경 질끈 쓰고 어쩔 수 없이 나갔다. 큰 감흥이 없던 나와 달리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며 이 곳에서는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아, 이 얼굴로 사진 찍기 싫은데....'
어설픈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했는데, 아주머니는 알겠다는 듯이 쌩 하고 가버렸다. 그 뒤로 나는 아주머니에게 'anti-social'이라는 형용사로 불리게 되었다. 속상했지만 감정과 같이 섬세한 것을 영어로 설명하는 건 난이도가 높아 그만 포기해 버렸다. 홈스테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뱅글뱅글 돌다 뉘엿뉘엿 해질녘 들어가길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문화와 언어 차이에서 온 간극이었을 수도 있지만,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과 연결에 대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내가 사과를 잘 먹으니 '사과가 맛있나보다. 좋아하나보다' 생각하고는 사과가 있냐고 물었을 뿐인데, 내가 적대적으로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대적 귀인 편향'이라고 하더라. 멋진 곳에 데려와줘서 고마운데, 노메이크업에 안경 쓴 내 얼굴이 못나보이고 신경이 쓰여서 그러니, 사진은 다음에 찍어도 되겠냐. 오해 없으시면 좋겠어서 말씀드린다고 찬찬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필요했을 텐데, 그 때의 나에게는 그런 융통성(?) 같은 게 없던 시절이었다. 사실 저런 말, 한국어로 하기도 쉽지 않은데, 영어로 하려면 크고 작은 산을 몇 개 넘어야하는 수준이니 어렵긴 어려웠다. 어찌 됐든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본인의 호의가 무시되는 것 같아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오해가 오해를 낳았으리라. 악의는 누구도 없었을지 모르는데, 선의는 어디로 가고 오해만 잔뜩 쌓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표현했다면 오해가 줄었을지 모르는데, 어쩌다가 오해가 쌓였을까. 호주에서는 짧은 영어 실력 때문이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무엇 때문에 비슷한 경험들이 반복되었을까. 이해받지 못 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다가, 나는 자기표현을 삼키게 되었던 것 같다. 말해봐야 '어차피' 또 이해받지 못 할 테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게 된 듯 하다. 그러다 나는 내 안의 세계로 침잠해버렸다. 끝도 없이 떨어지는 지하 100층 깊이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느낌. 올려다보면 천장이 보이지 않고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 없으며, 깜깜함과 막막함만 남은 곳. 그 곳에 갇혀있었다. '어차피'와 '굳이'를 각각 양손에 나누어 쥐고서, 저들은 나를 몰라. 고립을 자초했다.
그러다 문득 너무 외로워져서 꼭 쥔 두 손을 남몰래 펴본다. 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차피'를 쥐었던 왼손을 펴보고, '굳이'를 쥐었던 오른손을 펴본다. 무엇을 위해 두 주먹을 그리도 꽉 쥐었을까. 두 손을 꽉 움켜쥐어 생겼던 손톱 자국이 손바닥에서 슬며시 펴진다. 꽉 쥐고 불끈 쥐는 대신, 긴장을 풀고 힘을 빼고, 그저 툭 내려놓는다.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지쳤었나보다. 그러다 마음의 문을 닫았었나보다. 정말 이해받고 싶었었구나. 너무 이해받고 싶어서 이해 못 받을 것 같으면, 이해 따위 원하지 않는다고, 조금 강한 척을 하고 싶었구나. 그랬었네. 내 마음을 그저 알아준다. 이해를 받고 싶은 건 내 마음, 이해를 해줄지 말지는 당신의 마음이자, 오롯한 당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다 다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옴을 알아차리지만, 그 또한 내 마음임을 토닥여준다.
늘 스모키 화장을 하고 T로 시작하던 이름을 가지셨던 홈스테이 아주머니!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그 때 한국에 사과 있냐고 물어보셨었죠?
네 한국에 사과 있어요.
궁금하셨구나!
관심 가져주시니까 좋아요.
궁금한 거 또 물어봐주세요.
이렇게 답했어도 괜찮았겠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첫 번째 홈스테이 학생이라고 했었는데, 아주머니도 낯선 이방인을 자신의 집에 들인다는 결정이 쉽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시간들 선물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마지막날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오늘 집에 가서 한번 꺼내볼게요. 건강하세요.
- 동양에서 왔던 이방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