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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15. 2023

이달의 이웃비

6. 무해함의 오류



  동석이 이음 커뮤니티에 올린 배순경의 일화 속 대화는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일까.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모두 진실이라는 것도 역시 믿음의 영역 아닌가. 일상적 대화의 많은 부분이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같은 기약 없는 약속들로 이루어진다. 진실도 아니지만 거짓도 아닌 말들 - 고객님 잘 어울려요, 괜찮아요, 밥 먹었어요 - 같은 거짓 진술들은 또 어떤가. 그러니 병식을 이야기함에 있어 절대적으로 무해하고 우리가 보듬어야 할 선량한 이웃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솔직함과 진실의 가치는 지나치게 고평가 되어 왔다. 사실 우리는 좀 더 위선적일 필요가 있지 않나. 좀 더 다정한 거짓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미 기울어진 세계에 조금이라도 공평함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더 기울어진 이야기로 채워도 좋지 않은가. 동석은 거듭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변명을 만들어 내었다. 형이 진짜 무덤으로 들어간 후, 이제 동석의 핑계 있는 무덤은 병식이 된 것이었다.

   동석도 알고 있었다. 동석은 글을 쓸 때만 좋은 이웃이 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라도 좋은 이웃이기 위해, 그런 ‘척’이라도 하기 위해서, 그 후로도 실종 경보 문자를 받을 때마다 병식과 함께 실종자를 찾아 나선 것은 거짓은 아니었다. 보여 주기 위한 의도된 선행일지라도 진실한 수고가 뒤따른다면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나. 그것이 비도덕적이라 할 수 있나. 문제는 선이었다. 동석은 병식을 만나는 동안 거듭해서 선에 대해 생각했다. 선(善)이 아닌 선(線) 말이다. 형과 동석 사이에 존재했던 선은 이제 보니 형이 그은 게 아니었다. 동석이 그은 거였다. 형을 선 밖에 두듯, 지금도 병식과의 사이에 무수한 선을 긋고 있는 건 동석 자신이었다.      

 



   처음으로 함께 실종자를 찾아 나선 이후, 동석은 병식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절대 혼자 실종자를 찾으러 가지 말 것. 실종자를 찾아 나설 때 꼭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서 여러 번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실종 경보 문자를 받으면 동석은 병식에게 연락했고, 대개는 도서관 앞 벤치에서 만나 같이 실종자가 배회 중이라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게 어떤 날은 용인의 천변으로, 어떤 날은 수원 행궁동으로 이동해 실종자를 찾아다녔다. 한 번은 찾는 중간에 시민들의 제보로 안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문자를 받았고 한 번은 다음 날 아침에 무사히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번 다 시민들의 제보 덕분에, 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병식이 물었다.


  “시민들?”

  “네. 시민들. 우리 같은.”

  “우리 같은?”

  “네. 우리 같은.”


   이제 병식에게는 많은 우리와 많은 다정한 이웃이 생겼다. 시민들이란 병식에게 잃어버린 것을 함께 찾아 제자리로 돌려주는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다정한 이웃들. 그럴수록 동석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지나치게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나 큰 위험은 믿는 자에게서 비롯되니까. 예를 들면 동석과 같은.

   얼마 전에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렀던 병식이 차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다가 엉뚱한 차로 다가가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동석은 병식을 자기 차로 데려와 옆자리에 태우며 여러 번 당부했다.


  “함부로 모르는 사람 차를 타면 안 돼요. 혹시 히치하이킹 같은 것도 절대 하면 안 되고요.”

  “히치, 하이킹이요?”


   병식은 히치하이킹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석은 다만 그를 겁줄 목적으로 언젠가 사람들의 선의를 믿고 히치하이킹만으로 여행하는 실험을 하던 한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아무 차나 타면 절대 안 돼요. 알았죠?”

  “이 차는요?”

  “나는 아무나 가 아니잖아요.”

  “그럼요?”

  “나는,”


     나는 아무나 가 아니면 무엇일까. 동석은 병식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나 가 아닌 친구나 이웃, 심지어 아는 사람이라고도 답하지 못하면서, 병석을 옆자리에 앉힐 어떤 이름도 스스로에게 부여할 용기가 없으면서, 나는 병식을 태우고 어디로 가고 있나. 그날 이후 동석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물었으나 답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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