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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16. 2023

이달의 이웃비

9. 진실 혹은



   -경찰은 수원시에서 실종된 이수복 씨(여, 83세)를 찾고 있습니다.

   155cm에 45kg, 노란 꽃무늬 치마에 남색 니트. 검은색 슬리퍼. 연락은 182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예상대로 치매 노인으로 야간 배회 증세가 있으며 마지막 목격 장소는 P 아파트 놀이터라고 했다. P 아파트면 동석과 병식이 자주 만나는 도서관 쪽 아파트 단지였다. 진짜로 실종자를 찾을 기회가 온 거였다. 동석은 안타까움과 함께 일종의 흥분을 느끼며 병식에게 연락을 했고, 두 사람은 마지막 목격 장소부터 치매 노인이 배회할 만한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찾는 동안 날이 어두워졌고 동석과 병식은 포장마차에서 어묵 두 개를 먹고 붕어빵 이천 원어치를 사서 두 개씩 나눠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붕어빵은 이천 원에 다섯 개여서 하나 남은 걸 서로 양보하고 있는데 포장마차 뒤쪽 어둠 속에 누군가 쭈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데 얼핏 노란 치마가 불빛에 비쳐 보였다. 실종된 노인인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급하게 걸음을 옮기니 노인이 놀랐는지 벌떡 일어나 달아나려 했다. 어둠 속에 모르는 남자 둘이 다가오면 충분히 놀랄 수 있겠다 싶었다. 노인의 걸음이야 충분히 따라잡고 당장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동석은 성급히 접근하지 않고 조심스레 뒤에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실종 안내 문자의 연락처로 노인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곧 현장에서 가까운 경찰들이 출동하겠다고 해서 지금 노인이 있는 장소를 상세히 안내해 주었는데 노인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노인이 인적 없는 공원을 지나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데 혹시라도 무리하게 붙잡으면 반항하거나 놓치게 될까 봐 경찰과 연락을 취하며 조심스레 거리를 두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허청허청 걷던 노인이 지쳤는지 어둠 속 벤치에 주저앉았고, 노인이 더 이상 경계하지 않는 걸 보고 동석도 거리를 둔 채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동석의 조심스러움과 달리 병식은 아무렇지 않게 노인의 곁에 앉더니 말없이 붕어빵을 내밀었다. 노인은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배가 고팠는지 순순히 그것을 받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무해한 노인이 무해한 병식을 알아보는구나. ‘그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라고 동석은 안심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참고 있던 요의가 참을 수 없이 밀려왔다. 경찰들이 곧 올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봐야지, 했지만 어묵 국물을 너무 많이 먹은 게 문제였다. 찔끔, 오줌을 지리기까지 하자 동석은 주의를 두리번거렸다. 공중화장실은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방뇨를 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꽤 많이 있었다. 노인은 이제 완전히 지쳐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병식과 벤치에 나란히 앉은 모습이 가족처럼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동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병식에게 잠시만 노인을 잘 보호하고 있어 달라 당부하고는 서둘러 어두운 곳으로 달려가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오래 참았던 터라 오줌발이 세고 길었다. 그리고 지퍼를 올리고 돌아서서 다시 노인과 병식이 있던 벤치로 돌아가는데,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놀라서 달려가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당황한 병식의 음성과 교태 섞인 노인의 비명인지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리고 동석은 보았다. 어두운 풀숲 사이에 치마가 반쯤 벗겨진 노인과 그 앞에 주저앉아 반쯤 벗겨진 치마를 붙잡고 있는 병식을.


   반쯤 벗겨진.

   반쯤 입혀진.


   뒤늦게 동석은 생각한다. 그때 동석은 반쯤 입혀진 치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민 없이, 동석은 생각했다. 반쯤 벗겨진 치마를 병식이 내리고 있다고. 노인이 벗으려 한 치마를 반쯤 입히고 있는 병식이 아니라 치마를 반쯤 벗기고 있는 병식을 목격했다고.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병식이 당황한 듯 동석과 노인을 번갈아 보면서 무언가 설명하려 했으나 동석은 병식에게 들을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묻고 싶은 것도 없었다. 동석은 다만 병식의 당황한 얼굴과 어쩔 줄 모르고 내젓는 손만을 분명히 목격했다. 그리고 동석은 말없이 노인의 반쯤 ‘벗겨진’ 치마를 붙잡고 있는 병식의 손을 떼어 내고 옆으로 밀친 후 노인의 치마를 다시 입혀 주었다. 그리고 노인을 풀숲에서 데리고 나와 벤치에 앉혔다. 곧 경찰들이 와 노인을 인계해 주었고 실종된 이수복 씨가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경찰차에 타고 같이 이동하는 동안 병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해서 동석은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았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 음악을 아주 크게 들었다. 경찰서에 도착해 발견한 경위와 장소를 설명하고 가족들을 만나 감사 인사를 받고 연락처를 남기는 그 모든 과정들을 병식과 함께 차분하게 끝낸 후, 동석은 경찰서 앞에서 병식과 헤어졌다. 그리고 동석은 다시는 병식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반쯤 벗겨진.

   반쯤 입혀진.     


   항상 나쁜 쪽이 더 진실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늘 그렇듯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다. 무엇이 더 진실처럼 보이는지, 내가 무엇을 진실로 믿고자 하는지 믿음의 방향에 있다. 동석은 더 이상 이음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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