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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16. 2023

이달의 이웃비

11. 등화관제훈련



   한 계절이 지나고 그사이에 세 번의 실종 안내 문자를 받았다. 병식이 혼자라도 실종자를 찾아 나설지 아니면 여전히 동석의 연락을 기다릴지 동석은 궁금하지 않았다. 병식이 혼자 실종자를 찾아 헤맬 곳이 어디인지 아니까 걱정하지도 않기로 했다. 실종 안내 문자를 확인할 때마다 아는 이름이 뜰까 봐 두려웠지만 두렵지 않기로 했다.

   가끔 이웃 마켓에 들어가 병식의 거래 내역을 보았다. 병식은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직거래로 이웃들의 물건을 구매하고 있었다. 그가 최근에 산 것들은 크리스마스트리용 전구와 해피하우스라고 적힌 현관 매트, 작가의 안부 인사가 적힌 서명본 시집과 낡아서 소음이 크지만 페달을 돌리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오래된 실내 자전거였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실내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무한도전을 보고 또 보는 병식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동안 동석은 무한도전의 세 번째 정주행을 끝냈다. 여전히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모든 일을 예견한 듯 오늘의_무한도전. jpg가 올라왔고, 그때마다 동석은 이미 방송은 종영되었으나 무한도전 유니버스가 끝나지 않도록 좁고 어두운 방에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활동하는 비밀 요원들의 작은 키득거림과 살피는 마음의 온기를 느꼈다. 그중에는 병식도 있을지 몰랐다. 혼란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예측 가능한 친밀하고 우스운 세계의 해석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으로 한밤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안전 요원들, 그들의 작은 움직임이 멈추지 않도록 페달을 돌리고 또 돌리면서.


   그랬다. 병식은 지워지지 않았다. 어떤 것도, 한번 머물렀던 것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동석은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버스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멍하니 듣다가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브로콜리너마저라는 걸 기억했다. 브로콜리조차, 브로콜리 너마저, 동석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병식에게 12,800원에 판매한 브로콜리는 여전히 동석에게 어떤 형태로건 남아 있었다. 그렇다는 건 병식에게 갚아야 할 이웃비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병식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으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브로콜리 너마저가 추가되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끔 도서관에 갔는데 병식이 있을지 모르는 가까운 도서관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야 하는 먼 곳으로 갔다. 병식을 닮고 형을 닮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야기 속에 머물 때 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중에 동석도 있었다. 그곳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아주 천천히 읽었고, 그 책의 작가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석이 안다고 생각했던 건 대체로 모른다는 말과 같았다.

   도서관에서 나오면 집까지 여섯 정거장을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어느 날 밤엔 산책로 벤치에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 한 켤레를 보았다. 낡지 않았지만 새것도 아닌, 동석과 비슷한 발 사이즈를 가진 어른이 신었을 법한 신발이었다.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물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천변을 한참 쳐다보게 되었다. 어떤 사연이 있을지 몰라도 그 사연은 슬프고 무서울 것만 같았다. 다른 상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병식을 닮고 형을 닮고, 불안한 눈동자와 축 처진 어깨를 한 나를 닮은 사람이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른 채 비틀비틀 맨발로 걸어가고 있겠구나. 그것이 동석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상이었다. 동석은 밤의 거리에 떨어진 위험하고 날카로운 것들을 하나씩 집어 주머니에 넣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밤에 산책을 할 때면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고 거리를 둘러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병식과 마주칠까 봐 일부러 병식이 자주 다니던 길은 멀리 돌아갔다. 그러다 골목 모퉁이에서 험하게 신은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마치 어려운 집에 방문한 사람의 신발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나쁜 상상을 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자주 비워야 했다. 언젠가는, 거리에 놓인 한 켤레의 신발을 보고 좋은 상상을 하는 날이 오게 될까. 세상이 좋아져야만 좋은 상상이 가능하게 될까 아니면 좋은 상상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아지게 할 수도 있는 걸까. 자꾸만 머리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가 떠다녔다.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한참을 걷다 보니 언젠가 형이 실종되어 머물렀던 노래방 건물에 다다랐다. 건너편의 건물에 여전히 그 글자들이 걸려 있는지 궁금해 쳐다보았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한참을 들여다보니 그 질문은 인간이 아닌 신을 향한 것 같았다. 왜 당신은 거듭나지 않습니까. 신만 거듭나면 세상의 작고 나약하고 어리석은 우리가 굳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될 텐데. 왜 당신은. 그러니까, 동석에게 믿음은 신을 원망하기 위해 붙들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때 그 신발들은 왜 거리에 놓여 있었을까. 그 신발의 주인들은 지금쯤 어디를 걷고 있을까. 그들의 맨발에는 새 신이, 쉽게 벗겨지지 않고 발뒤꿈치도 벗겨지지 않는, 험한 길과 반듯한 길 모두를 오래 신고 걸어도 편안한 신이 지금은 신겨져 있을까.


   어두운 거리를 걸으며 동석은 아주 어릴 때 경험한 등화관제 훈련을 떠올렸다. 형은 등화관제 훈련이 있는 날이면 그 누구보다 신이 났다. 옥상에 올라가 골목길 아래의 집들을 내려다보며 불이 켜진 창문을 향해 소리치곤 했다. 불 꺼요! 불!

   등화관제 훈련은 적의 침공에 대비해 우리의 위치를 알리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마을에서 한 집이라도 불을 끄지 않으면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어 공습을 받을 위험이 높아진다고 했다. 동석은 그때 큰 목소리로 외치는 형이 부끄럽다가도 형의 외침과 함께 꺼지는 불빛을 보면 뿌듯해졌다. 그때는 형이 목청껏 소리치고 큰 소리를 내어도 괜찮은 유일한 밤이었다. 이웃의 불빛이 모두 꺼지면 우리는 안전했다. 어둠 속에서만, 우리들은 함께 안전한 밤이었다. 불을 켜 지키는 마음만이 아니라 불을 꺼 (지키는 마음)도 있었다.


   "(불 꺼요 불.)"


   동석은 병식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어둡고 좁은 골목을 지나며 작은 목소리로 형의 목소리를 따라 해 보았다. 소리는 아주 가냘프고 떨림의 진폭이 컸다. 겁쟁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겁쟁이의 목소리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용기를 내어 그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낸 덕분이었다. 불 꺼요 불. 그 어둠 속에서, 동석은 어쩐지 알게 되었다. 동석은 병식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부러워하고 질투한 것이었다. 형이 한 번도 갖지 못한 이웃의 자리를 스스로 넓혀 가는 병식을 보면서, 자신이 빼앗은 형의 이웃들과, 동석 역시 한 번도 갖지 못한 이웃이라는 이름에 대해 ‘감히’ 병식이 가지는 것에 대해 언감생심이라는 마음을 품는 비열한 마음이 자기 안에 있었던 거였다. 형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병식도 가질 자격이 없다는 듯이. 그래, 그건 다시 생각하면 두려움이 맞았다. 병식 (같은)이라고 분리해 낸 이웃이 속한 자리가 실은 테두리의 중심이고 테두리 밖에 있는 건 나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식으로 또다시 선을 긋는 자기를 인지하게 되는 두려움, 그리고 병식과 이웃이 되는 일이 형을 배신하고 완전히 잊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산책할 때 신고 나온 형의 신발은 동석에게 너무 컸다. 헐거워 들썩이던 신발이 자꾸만 벗겨지려 해 동석은 집 앞 골목 계단 아래 그것을 가지런히 벗어두었다. 누군가는 나쁜 상상을 하겠지만 누군가는 좋은 상상을 할지도 몰랐다. 또 맨발로 거리를 걷는 누군가에게는 발에 딱 맞는 신발이 될 수도 있었다. 동석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없기에, 누군가의 좋은 상상을 믿는 용기를 내 볼 수도 있었다.

   한때 동석은 한번 잃은 것을 완전히 지우는 게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거듭해서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고 상실에 대처하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너무 이른 완전한 겁이었다. 두 번, 세 번 잃게 되는 것이,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상실에 이르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에 겨우 생각해 낸 비책이었으나 없애는 용기는 겁의 다른 말일뿐이었다. 사실 용기는 한번 지워진 것을 애써 다시 기억해 내는 것,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에 있었다.


  - 자꾸 겁이 나.

   며칠 전 동석이 그런 말을 하자 한참 후 선애 씨가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 왜? 넌 엄마의 용기인데.


   형을 키우면서 한 명의 아이를 더 낳는 건 분명히 매우 겁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나는 얼마나 큰 겁이었을까. 그러나 낳는 것은 용기였다. 그러니까 세상에 낳기 전의 동석은 겁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난 동석은 용기였다. 그러니 내게는 지워진 것들을 용기 있게 좀 더 여러 번 잃어 가며 자주 되살릴 의무가 있는지도 모른다. 동석은 코로 풍선을 푸는 선애 씨의 영상을 다시 재생해 보았다. 어쩌면 선애 씨는 해녀 삼촌에게 이웃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거 아닌가. 이웃이 되기 위해 숨을 참고 코로 풍선을 부는 훈련을 하는 선애 씨를 생각하니 조금 안타깝고 많이 귀여웠다. 선애 씨의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동안 어쩐지 동석 역시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꾹꾹 숨을 참게 되었다. 마침내 완전히 부푼 풍선이 선애 씨의 손을 빠져나가 허공에서 푸푸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날아오르자 동석 역시 참던 숨을 내뱉었다. 그것은 웃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듣는, 형과 닮은 ‘그’ 웃음소리였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왜인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동석은 거듭나지 않았다. 그냥 동석은 아무것도 지우지 않은 채, 지워진 것을 다시 기억하고 또다시 잊고, 그렇게 다만 지우고 기억하기를 반복하면서 살아 나갈 뿐이었다. 어떤 것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어떤 것도 없음은 완료되지 않고.

   형을 다시 만나게 되면 궁금한 것이 많았다. 형은 왜 브루클린을 좋아했을까. 무한도전 멤버 중 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누구였을까. 형이 누굴 가장 좋아했을까 생각하며 보는 동안 어느 날은 유재석이 좋았고 어느 날은 박명수가 좋아졌다. 다 저마다의 이유로 형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될 법했다. 각자는 각자의 이유로 누군가의 가장 좋아하는 멤버일 수 있었다. 그래서 형은 누구를 제일 좋아했을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무한도전 유니버스의 모든 비밀 요원들을 돌아가며 더 많이 더 여러 번 거듭해서 ‘가장’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궁금증은 궁금한 채로 남아도 좋았다.


   그 사이에 두 번의 실종 안내 문자를 더 받았고 병식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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