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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16. 2023

이달의 이웃비

12. 중고마음거래마켓



   <마음이 쓰이다> 팝니다.

   : 두세 번 사용감 있음. 조금 닦아 쓰면 새거나 다름없는 중고. 500원.      


   며칠 후 동석은 이웃 마켓의 판매 목록에 <마음이 쓰이다>라고 적은 종이를 올렸다. 충분히 사용하지 못한 말들, 가지고 있어도 유용하게 쓰이지 못한 채 낡고 헐어 버린 말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게 사용되길 바랐다. 마음이 쓰이다 다음에는 기웃기웃이나 살피다, 보듬다, 그런 표현들을 하나씩 판매할 생각이었다. 누구라도 이 반쯤 지워진 마음을 가져가 이것들의 없음이 완료되길 원했으나 진짜 구매자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후, 구매 제안이 왔다. 구매자 닉네임은 어슬렁. 어지간히 심심하거나 외로운 사람인가 생각하며 집 근처 사거리 포장마차 앞에서 거래하기로 했는데 만나 보니 어린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은 동석이 건넨 <마음이 쓰이다>가 쓰인 종이를 받고는 한참 들여다보더니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어린 학생에게는 오백 원도 너무 비싼 건지도 몰랐다. 하긴 포장마차에서 파는 붕어빵 하나에 오백 원이었다. 그런데 종이에 연필로 쓴 고작 여섯 글자에 오백 원을 받겠다고 하다니. 돌아서려는 학생을 붙들고 동석은 급히 새 종이를 꺼내어 몇 개의 글자를 더 적기 시작했다.      


  (자꾸) 마음이 쓰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이다.

  (때때로) 마음이 쓰이다.

  (그 녀석이) 마음이 쓰이다.     


   오백 원에 네 장의 마음을 강매나 떨이라도 하듯 우격다짐으로 내밀자 남학생은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 장을 고르고 오백 원을 내밀었다. (마음이 쓰인 거겠지.) 거래를 마치고 돌아서는 남학생에게 다급하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서 안겨 주자 남학생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남학생이 건네준 오백 원으로는 어묵 꼬치를 하나 사 먹었는데 국물을 두 번이나 마셔서인지 발바닥까지 뜨끈해졌다.

   집에 돌아와 하나를 팔았는데 어쩐지 세 개로 늘어나 버린 <마음이 쓰이다>라는 짧은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라고. 헤픈 마음에 대해 생각했고 더 헤픈 마음을 위한 용기에 대해 생각했다. 스케치 노트 한 권에 가득 마음이 쓰이다,라고 썼다. 그 사람이, 그 아르바이트생이, 그 노인과 그 어린이와 그 개와 그 고양이가. 나무와 돌과 구름과 부러지고 깨진 것들이, 그 눈길이, 그 손길이, 그 몸짓과 피로한 미소와 툭 튀어나온 무릎이, 염색할 때가 지난 거친 머릿결과 안쪽만 닳은 신발 밑창과 길게 끌리는 발걸음이 마음이 쓰인다고 적었다. 같은 문장을 거듭 적다 보니 마음이 쓰이다를 쓰다, 쓰리다로 잘못 쓰기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잘못 쓰인 마음은 없었다.

   그 옆에 기웃기웃이라고 적어 보았다. 어쩐지 문을 두드리는 이웃의 모습을 닮은 것도 같았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의 형상을 본뜻 글자 같기도 했고, 어색하게 기댄 사람과 기대어주느라 긴장한 어깨를 한 사람을 닮은 것도 같았다. 같은 글자를 거듭해서 쓰고 들여다볼수록 원래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그 안에 사람이 보였다. 자꾸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보였다. 키득키득 웃는 소리도 들렸다. 그중 요리조리 살피는 사람을 닮은 기웃기웃과 (어쩌자고) 마음이 쓰이다를 한 세트로 판매 목록에 올려놓았다. 한 장에는 오백 원, 두 장 같이 구매하면 칠백 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구매 문의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그사이에 한 번의 실종 안내 문자를 받았고 한 개의 실종 안내 문자를 작성했으나 발송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흘째, 구매 문의 알람이 떴다. 배순경이었다.      




   동석은 이렇게 한번 지워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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