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죽고 동석은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면직 신청하려고. 선애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확인만 하고 답이 없었다. 엄마도 맘이 복잡하겠지. 어떻게 만류할지 고민하고 있을까, 추측하는데 밤늦게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코로 풍선을 부는 선애 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뭔데? 영상통화를 걸자 한 손에 반쯤 부푼 풍선을 든 선애 씨가 받았다. 해녀 삼촌한테 잠수할 때 도움이 되는 호흡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선애 씨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이모네 귤 농장 일을 돕는다고 제주도에 내려가 올라오지 않았다. 반년 가까이 눌러앉더니 해녀가 되려는 건가. 그러나 동석이 엄마 해녀 되게?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해녀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럼? 선애 씨가 대답했다. 그냥 숨 참는 훈련. (숨은 참아서 뭐 하게.) 동석이 가만히 있자 선애 씨가 먼저 물었다. 왜냐고 안 물어? 어. 알아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 됐지 뭐. 선애 씨가 코로 풍선을 부풀리다 말고 푸흡, 하고 웃었다. 풍선이 선애 씨의 손에서 빠져나가 공중에 푸푸 바람을 내뱉으며 떠다녔다. 이런 이런. 선애 씨가 풍선을 붙잡으려고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마찬가지야. 뭐가? 그냥 그렇다고.
다음 날 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유는 무한도전. 도전이라 좋네 좋아. 그래 아직 젊으니까 뭐라도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지난 석 달간 하루 두 번씩 민원을 제기하는 활동가 양 씨를 상대하는 동석의 조용한 분투랄지 소란한 참선이랄지 그런 걸 본 후라서 인지 팀장은 그저 좋은 이야기만 했다. 혹시 로또 된 건 아니지? 하면서 허허 웃는데 농담인 척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부러운 감정이 느껴져 좀 우스웠다. 그만두려고 하니 모든 게 우습고 모든 게 좋게만 느껴졌다. 좋네 좋아. 이럴 때 형은 뭐라고 했더라. 무한도전에 나오는 유행어라고 했는데. 히트다 히트. 혹은 무야호.
동석이 형과 나누는 얼마 안 되는 대화의 절반은 무한도전, 절반은 가 본 적 없고 어디쯤 위치한 지도 잘 모를 브루클린에 관한 이야기였다. 형에게 브루클린은 멀고 실체를 알 수 없으며 아마도 영원히 가 볼 일 없는 장소라는 점에서 우주와 동급이었다. 무한도전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무한도전 유니버스 안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무한도전은 형이 아는 유일한 바깥세상이었으며 형이 세상을 즐겁고 친근하고 가끔은 하찮은 채 얼렁뚱땅 살아가도 괜찮은 곳으로 긍정할 수 있게 해 주는 단 하나의 우주였다. 무한도전 멤버들 역시 가족인 선애 씨와 동석을 제외하고 형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동석보다 더 가까웠는지도 몰랐다.
형은 왜 그렇게 무한도전을 좋아했을까.
새벽에 자다 깨어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갈 때면 어두운 거실에서 실내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소리를 줄인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는 형과 마주치곤 했다. 화면에는 이미 몇 번이나 보았을 무한도전이 나오고 있었고. 그럴 때 모니터에서 나오는 푸른빛에 비친 형의 표정은 뭐랄까, 지금 생각하면 어리둥절한 채 스푸트니크호에 태워져 광막한 우주를 떠도는 떠돌이 개 라이카처럼 보였다.
“너는 나를 개만도 못하다고 생각하지?”
마지막 퇴원 후 잘 맞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최근 몇 년간 형은 대체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지만 가끔 알 수 없는 순간에 버럭 화를 내거나 울분을 토하곤 했는데, 형의 질문에 동석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할 때 특히 그랬다. 한 번은 쉬는 날 방에서 영화를 보던 동석이 나오자 형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동석을 흘끔거리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 진짜 웃긴다, 웃겨 죽겠네. 몇 번이나 보았을 무한도전 재방송이었으나 반응이 다른 때보다 요란한 것은 동석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일 터였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같이 한번 웃어 (주고)는 동석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형이 물었다.
“너는 저 중에 누가 제일 좋아?”
“글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렇게 말하고 동석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던 영화를 이어 보기 시작했다.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벌겋게 충혈된 눈을 번들거리며 형이 소리쳤다.
“내가 개냐?”
동석이 마시던 맥주를 천천히 내려놓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개냐고. 그렇잖아? 지금 네가 날 대하는 게 사람을 개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나랑은 말도 하기 싫다는 거잖아?”
무엇이 형을 분노케 한 건지 동석은 차분히 더듬어 보았다. 아,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잘못된 거였다. 유재석이나 박명수, 누구라도 한 명의 이름을 말해야 했다. 그리고 형은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질문을 되돌려야 했다. 형은 대답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토록 오래 형이 무한도전을 여러 번 반복 시청하는 걸 보면서도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동석은 형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형은 죽었고,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누구인지는 영영 알지 못할 터였다.
형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동석은 궁금한 적 없었다. 형과 평생을 같이 살고 돌보고 책임질 거였지만, 그건 형이 자신의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형에게 더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런 이유에서 일 뿐이었다. 형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지 않기 위해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만. 동석이 살면서 은밀하게 꿈꿔 온 유일하고도 원대한 목표는 결코 형과 닮아지지 않는 거였다. 최대한 형과 교집합이 없는 먼 개체로 성장하고 살아가는 거였다. 그래야만 경계성 지적장애와 조현병을 앓으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형을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형을 배척하는 마음이 아니라 돌보기 위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라고 믿고자 했다. 국립정신건강서비스포털의 의학 정보에 따르면 형제가 조현병을 앓을 경우의 유병률은 9.6%였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돌보았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우습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 모든 안전한 결정과 이른 포기가 형과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믿었다. 형과 멀어지려 애쓰면서도 누구보다 형을 제 안일한 인생의 핑계로 삼은 건 동석이었다. 헤어진 W가 언젠가 말했던 것, 너는 그저 형을 네 회피의 변명으로 삼는데 너무 익숙해졌을 뿐이야, 불리할 때마다 형 핑계를 대는 건, 네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치사하지 않니?라고 반쯤은 경멸하고 반쯤은 동정하며 했던 말이 지독히 아팠던 건 그것이 진실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동정보다는 경멸이 나았고. 아니 두 개는 어차피 같은 뜻인가. 어쨌거나 W의 말대로 모든 것은 동석의 비겁한 선택이었고 형은 단지 동석의 편협하게 닫힌 세계의 변명이 되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형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언젠가 병원의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하에 있는 식당에 형과 둘이 갔을 때였다. 맞은편에 앉은 형에게 폰으로 무한도전을 보여 주며 조용히 웃으라고 부탁한 후 동석도 멍하니 식당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보았다. 마침 재미있는 장면이어서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는데 식당 사장님이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다가 말했다. 둘이 형제 맞죠? 워낙 데면데면해서 아닌가 했는데, 웃음소리가 아주 똑같네.
웃음소리가 닮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웃음소리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는 걸 동석은 깨달았다. 웃음소리가 닮으면 울음소리도 닮았을까. 울고 싶어 졌으나 동석은 참았다. 울음소리도 닮았다는 소리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동석이 소리 내어 웃거나 울지 않게 된 건.
형도 다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화장실이나 주방을 들락거리며 거실에 앉아 있는 형을 보면서도 지나치기만 하는 동석을, 소파나 테이블처럼 그저 무탈하게 조용히 그 자리에서 낡아지기만 기다리는 무정함을, 말하지 않아도 형과 필요 이상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걸, 그 거부감을 들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은 형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다만, “내가 전염병이냐? 사람을 무슨 전염병처럼 피하고, 벌레처럼, 응? 여기서 누가 개새끼냐? 어? 누가 개새끼냐고?” 같은 말들에 대한 긍정이었음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형은 포기하지 않았던 거였다. 동석과 매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조금이라도 주고받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을? 무언가를. 어쩌면 작은 (살피는 마음) 같은 것을. 그런데 나는. 그때 동석은 어떻게 대답했던가.
“어, 미안해. 내가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그걸 안 했구나. 나는 안 보니까 잘 몰라서 그랬어. 굳이 택하자면 글쎄, 박명수?”
동석은 최대한 차분히 말한다고 했지만 자신의 음성이 진상을 부리는 민원인을 달랠 때나 나오는 지친 공무원의 체념한 말투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형은 다시금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소리쳤다.
“이것 봐, 또 날 미친놈 취급하는 거지. 그래, 넌 내가 뭘 해도 미친놈 같지? 미친놈이 꼴값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넌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아주 사람을 개똥만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그래, 그렇게 잘나서 너는 지금 고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트에 갔던 선애 씨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형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형이 분을 못 이기며 말을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물러났다. 형 대신 뒷말을 이은 것은 동석이었다. 너는 지금 고작, 고작 지금의 네가 되었구나. 그리고 남은 맥주를 마시며 동석은 생각했다. 겨우나 고작, 불과한,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고작의 나를, 그래도 형 앞에서 잘난 척할 정도의 잘난 구석 하나는 가지고 있다고 오해해 주는 건 형뿐이네. 그런 식으로 형은 동석의 자존감을 지켜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형은
(이제 없다.)
동석은 오래도록 형이 자신의 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은, 형은 동석의 용기였다. 연금 생활자를 꿈꾸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공무원이 된 후에는 적은 연봉을 쪼개어 암보험과 치매안심보험을 들었다. 정기적으로 치과에 가고 비타민과 오메가 3을 빼놓지 않고 챙겨 먹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퇴근 후에 천변을 따라 40분간 러닝을 하며 체력 관리를 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모든 일상이 형과 함께 하는 노후를 위한 대비책이었다. 이제 동석에게 남은 건 겁도 용기도 없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미래뿐이었다. (미래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