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실어증이라고 했다. 이름들이 자꾸 지워졌는데 건망증과는 증상이 달랐다. 브로콜리는 시작에 불과했고 존 쿠삭이나 갈까마귀, 콜로라도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이름을 떠올리려면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이틀이 넘게 걸렸다. 의미착어증세와 잘못된 문장구조로 말하는 현상도 이어 나타났다. 면직 후 혼자 지낸 시간이 길었다. 다시 규칙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 사라질 증상이라고 동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지워진 이름들은 영영 떠올리지 못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을 이름들이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 그래 브로콜리 같은 건 평생 먹지 않으면 그만. 그게 없다고 인생이 뭐 얼마나 달라지랴 싶었다. 오히려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붙잡고 있는 게 문제였다. 잊어도 무관한 이름들을 기억하느라 진짜 기억해야 할 것들까지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곧 일어났다. 은행이나 마트에서 통장이나 보이스 피싱, 종량제 봉투 같은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몇 번 난처한 경험을 한 후 동석은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하나씩 지워질 거라면 최소한 무엇을 먼저 지울지는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자기기만적인 결정이었다.
사실 잊어버린 이름들은 동석이 기억해야 존재하는 것이므로 기억에서만 지우면 될 것 같았지만. 레드 썬을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튕긴다고 해서 마음대로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제든 다시 불러오고 싶어질 수 있었다. 다시 내 것으로 소환하고 싶어 졌는데 기억나지 않아 난감해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없음’의 상태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한번 지워진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다. 소유를 이전하는 거래 절차를 통해 없음을 완료하기로 했다. 일정한 보상을 받고 이미 가진 기억에 대한 소유를 넘겨야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이 만들어지는 거였다.
거래의 규칙은 단순했다.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하지만 누구라도 합리적인 보상을 지불하고 갖고자 하는 ‘있음’이 존재해야 한다는 거였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떠넘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버리는 행위였고 버리는 것은 있던 것을 없애는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쓰레기로 용도가 변경되었을 뿐 영원한 ‘있음’의 상태로 남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무료 나눔도 불가했다. 나눈다는 행위는 언제든 어떤 식으로 건 보답으로 돌아올 것을 알았다. 그러니 반드시 유상 거래를 할 것. 물물교환은 가능했지만 먹거나 사용함으로써 완전 소멸이 가능한 보존 불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하나를 없애는 방법으로 다른 하나를 소유하는 것은 있음에서 다른 있음으로의 전환일 뿐 없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를 토끼 인형과 바꾼다고 해 보자. 그것은 브로콜리가 토끼 인형으로 이름과 형태가 바뀐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브로콜리였다. 중요한 건 한 번은 유의미했던 그 이름의 본질을 없애는 거였다.
거래 가격은 거래 시점의 소비자가격이나 시가를 기준으로 하되 가격을 매기기 힘든 개념이나 소유되지 않는 것들은 다른 대체물로 갈음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에피파니나 사필귀정, 고탄력과 갈까마귀와 뉘엿뉘엿 같은 것들은 그 이름과 관련된 개인적인 ‘사념‘을 담은 구상화된 대상물로 대신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기본 규칙을 정한 후 제일 처음 이웃 마켓에 올린 게 브로콜리였다.
- 판매자 좋은 이웃 : 브로콜리 팝니다. 제주에서 왔어요. 한라산 백록담의 기운을 담은 싱싱한 브로콜리가 스무 송이 한 상자에 12,800원.
시가보다 저렴하게 올려서인지 올린 지 십 분도 안 되어 구매 문의 알림이 떴다. 구매자 닉네임은 배순경.
배순경의 본명은 배병식, 그의 이웃 마켓 아이디인 배순경은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 배철영 씨가 지어 준 것으로 배병식이 배순경이 되는 것은 배철영 씨의 원대한 소망이자 병식의 꿈이기도 했다. 병식은 배철영 씨가 돌아가신 후에도 매일 도서관에 가서 몇 년 전 배철영 씨가 사 준 낡은 경찰공무원 수험서를 펴놓고 시간을 보냈는데, 동석이 관찰해 본 결과 병식은 공부를 한다기보다 자기가 수험생이라고 믿기 위해 여타 다른 수험생의 자세를 모방한 멍 때리기로 그 불가능한 믿음을 구현할 뿐이었다. 사실 수험 공부라는 게 대개 이루어지지 않는 간절한 기도라는 점에서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병식의 경우는 하늘을 보지 않고 별을 따기를 바라며 삼신할머니에게 무염시태의 축복을 내려 달라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나무아비타불 하고 정체불명의 주문을 외우는 식이었다.
실은 그것이 배철영 씨가 바란 모든 것인지도 몰랐다. 매일 아침 아홉 시에 도서관에 가서 수험서를 펴놓고 사람도 구경하고 창밖 풍경도 구경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도서관 매점에서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가 도서관 벤치에 앉아 햇볕도 좀 쬐다가 다시 수험서를 펴놓고 기억에 남지 않을 한 줄 한 줄을 더듬더듬 읽어 보다가 저녁 여섯 시가 되면 집에 돌아오는 일과를 반복하는 것. 그 반복되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실현 가능한 목표와는 무관하게 경찰공무원 수험생이라는 하나의 명분이 필요했을 뿐인 것이다. 언제나 가장 강력한 믿음은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이었다.
동석은 이웃 거래를 통해 병식을 처음 만났지만 따지고 보면 진짜 처음은 아니었다. 사 년 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새벽 여섯 시경이면 어김없이 기다란 집게와 배낭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쓰레기를 줍는 늙은 아버지와 형 또래의 덩치 큰 아들을 목격하곤 했는데 그 부자가 배철영 씨와 배병식이었다.
점장의 말에 의하면 배철영 씨는 퇴직한 환경미화원으로, 최근 들어서는 거의 매일 새벽 거리에 나와 아들과 함께 거리 청소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동석이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취객들이 바닥에 토해 놓은 오물을 치우려 하자 같이 근무하던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귀찮다는 듯 동석을 말렸다.
“놔둬요. 이따가 어차피 치워 줄 텐데.”
“누가요?”
“그, 있잖아요. 왜 좀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
그것이 병식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동석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까지도 배철영 씨는 다 큰 아들의 손을 잡고 일정한 경로를 오가며 눈이 쌓이면 눈을 쓸고 비가 오면 배수구를 박는 담배꽁초나 낙엽을 제거했다. 때로는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여는 노포 주인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함께 셔터를 올려주거나 무거운 과일 박스를 같이 내놓아 주기도 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은데 이제는 너무 알 것 같아서, 동석은 마음이 (쓰였다.)
배철영 씨는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이 죽은 후 혼자 남게 될 병식이 이웃에게 배척당하고 낯선 곳으로 유배되는 것이. 그래서 병식에게 좋은 이웃으로 살아남는 법을 훈련시킴과 동시에 그 모습을 매일 반복적으로 이웃들에게 노출함으로써 병식이 좋은 이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에게 좋은 이웃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배철영 씨는 (평생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약자로서의) 병식에 대한 이웃의 선의를 불신하는 만큼 믿고자 했고, 믿고자 하는 마음이 큰 만큼 불신했다. 그것이 매일 병식의 손을 붙잡고 거리를 청소했던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배철영 씨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기 전, 병식을 위해 장기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성당 봉사자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장애 자녀에게 돌아갈 유족 연금과 관련된 절차를 담당 공무원과 복지사에게 미리 부탁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동네 사람들에게 선금으로 지불한 두 사람 몫의 이웃비 같은 것이었다. 병식이 아무리 무해하다(고 거듭 증명한다) 한들 그 무해한 무지로 인한 작은 혼동마저 누군가에게는 불편이나 기피를 넘어 일상의 안온함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느껴질 것을 알았던 까닭이었다.
중고 거래 역시 병식이 지불하는 이웃비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건 동석이 그와 두 번째 거래를 끝냈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