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마귀 시를 적은 종이를 형의 책에 끼워 넣고 동석은 병식을 만나러 갔다. 언제나처럼 도서관 앞 벤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 일인지 병식이 일찌감치 문 앞에 나와 있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배낭까지 멘 폼이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어디 급하게 갈 데라도 생긴 건가. 멀리서 봐도 두리번거리며 몸을 앞뒤로 흔드는 폼이 꽤나 초조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병식은 동석이 내미는 책을 받지도 않고 서둘러 준비한 현금을 내밀었다. 급히 갈 데가 있다고 했다. 어딜 가느냐 물으니 병식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내밀어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오는 길에 동석도 받은, 실종자를 찾는 안내 문자였다.
“이게 왜요?”
“찾으러 가요.”
“누굴?”
“이 사람.”
문자에 따르면 실종자는 화성에서 거주하는 70대 치매 노인이었다. 키는 170 정도에 보통 체격. 검정 조끼와 검정 바지, 파란 운동화.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그런데요?”
“실종됐어요. 그래서.”
“그래서 찾아야 한다고요?”
“네. 빨리요.”
초조해하는 병식을 붙들고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검정 봉투. 마지막 목격 장소는 장안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어린이놀이터라고 했다. 같은 경기도라도 너무 멀었다. 차로 가도 한 시간은 족히 넘어 보였다. 물론 실종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서 꽤 멀리 이동했을 수는 있지만, 이 근처까지 왔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데 병식은 도대체 어디서 실종된 노인을 찾는다는 걸까.
“여길 가려고요?”
실종 발생 장소를 가리키며 동석이 물어보니 병식은 지도 앱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요?”
“걸어서.”
“여기가 어딘 줄은 알아요?”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찾으려고요?”
“알아요. 어디서 찾을 줄.”
그렇게 말하며 병식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가 서둘러 걸어가는 방향은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쪽이 아니었다. 도서관 뒤편의 야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였다. 도대체 화성에서 실종된 사람을 왜 수원의 야산에서 찾으려는 걸까. 물론 실종된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발견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병식은 무슨 근거로 여기서 실종자를 찾겠다는 걸까. 동석은 알 수 없는 채로 병식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성큼성큼 앞서가던 병식이 야산 중턱에 이르자 등산로가 아닌 잡목이 우거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길을 잃은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애초에 그곳이 목적지인 모양이었다. 쓰러진 노목에 이르자 병식은 걸음을 멈추더니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 무언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여기가 어딘데요?”
병식을 쫓아오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내쉬며 동석이 묻자 병식이 대답했다.
“여기서 찾았어요.”
“뭘요?”
“나요.”
“누구요?”
“배병식.”
그러니까 병식은 과거에 실종된 적이 있었고, 아마도 그건 한 번이 아닐 터였다. 형도 그랬다. 이런 일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경험을 통해 병식은 자신이 실종되었다가 발견된 곳에 가면 실종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거였다.
형이 처음 실종된 건 동석이 열두 살 때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형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그다음 날도. 그동안 선애 씨는 단순 가출로 처리한 경찰들과 싸우며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고 열두 살의 동석은 무얼 했나. 그냥 평소와 똑같이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고 집에 돌아와 우는 선애 씨를 보며 라면을 끓여 먹고 숙제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잤다. 그리고 자다가 깨면 어둠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뒤나 옷장 문을 열고 중얼거렸다. 형 그만 숨고 나와.
형이 돌아온 것은 세 계절이 훌쩍 지난 후였다. 봄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던 형은 겨울이 되어 같은 옷차림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형은 몸을 아주 작게 구부린 채 삼일 동안 잠만 잤다. 불편해 보여서 다리를 펴 주려고 하면 무릎에서 뚝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주 좁고 어두운 방에서 오래 웅크려 있었다는 말만 들었다.
그 후에도 형은 섬망증이 심해질 때마다 세 번 더 실종되었지만 그때는 장애 등급을 받은 후라서 실종신고를 한 지 십 분 만에 경찰이 출동했고 서른 명의 인원이 투입되어 마지막 목격 장소를 헤맨 끝에 하루 만에 형을 찾아 주었다. 한 번은 어릴 때 살던 집 근처의 어린이대공원의 탈출한 코끼리 우리 앞에서였고 한 번은 몇 년 전 살았던 상가 주택의 폐업한 노래방에서였다. 그때 실종된 형을 찾아다니며 동석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형을 영영 잃거나 저 바깥의 어둠 속에서 형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해를 입힐까 봐 두려웠다.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새벽의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형을 찾아 헤매었다.
형이 죽은 후, 동석은 형이 실종되어 머물렀던 폐업한 노래방에 찾아가 본 적 있었다. 노래방이 빠져나간 사무실은 여전히 텅 빈 채 잠겨 있었다. 더 이상 노래방이 아닌 노래방 앞에 쭈그려 앉아 어릴 때 형이 가르쳐 준 노래를 작게 불러 보았다. 형이 동석에게 가르쳐 준 유일한 노래였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쌩쌩 불어도 괜찮아요. 난난난 나는 괜찮아요.
그때 형도 이렇게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까. 형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지만 동석은 형이 노래 부르는 걸 끔찍이 싫어했다. (미친놈 같잖아. 그만 좀 해) 속으로만 생각했지만 형은 어느 순간 동석의 눈치를 보며 집에서 더 이상 노래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언젠가 한 번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종종 했다. 그래 언젠가 한 번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 다음에. 언젠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노래가 되어 자꾸 맴돌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어둠이 내리자 건너편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글자에 불이 들어왔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도대체 무얼 하는 곳이기에 저런 간판이 걸려 있는 걸까. 교회나 마음 수련 단체, 혹은 피부 관리실이라도 있는 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가 보니 빈 사무실에 급하게 빠져나간 투자 사기 업체의 흔적만 유리문에 적힌 쪽지들과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로 남아 있었다.
마지막 실종에서 돌아온 후 형은 외부 출입을 최소한으로 줄인 채 스스로를 집에 가두었다. 그 후 조용한 빌라로 이사했지만 롤 케이크를 보내는 이웃은 더 이상 없었다. 형은 집에 있으면서도 실종된 자, 보이지 않는 이웃으로 존재함으로써만 배척당하지 않고, 떠밀리지 않고 이웃의 자리에 안온하게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보이지 않는 이웃들은, 실종된 후에만 그 존재를 우리 앞에 드러낸다.
처음 실종 안내 문자를 받았을 때 동석은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 형과 닮은 보이지 않는 이웃들이 있는지를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석은 형이 실종되었을 때도 이런 제도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실종 안내 문자를 꼼꼼히 살펴보곤 했다. 2021년 6월 9일부터 시행된 실종 경보 문자 제도 덕분에 실종된 아동과 지적장애인, 치매 노인들을 조기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시민들의 제보가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그러나 병식처럼 적극적으로 실종자를 찾아 나설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그렇게 말하며 동석은 실종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를 지도 앱으로 찾아 병식에게 보여 주었다. 정말 찾고 싶다면 그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병식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내가 찾아야 해요.”
“왜요?”
“나한테 왔어요.”
“뭐가요?”
“찾아 달라고.”
병식이 다시 한번 문자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제야 동석은 이해했다. 병식은 자신만 실종 안내 문자를 받은 줄 아는 거였다. 그러니까 누군가 배순경에게 실종자를 찾아 달라고 출동 명령이라도 내린 걸로 오인하는 거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건 배병식이 배순경이 되고자 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었다. 실종된 병식을 아버지 배철영 씨의 품으로 돌려주었던 경찰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 때문에 병식은 스스로 순경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거였다. 동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오는 길에 받은 같은 문자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실은, 저도 병식 씨처럼 출동 명령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힘을 합해 우리가 같이 찾으면 돼요.”
병식은 혼란한 표정이었다. 자기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실망한 걸까. 동석은 생각과 현실이 어긋날 때 형이 겪던 혼란과 분노와 좌절의 반응을 떠올랐다. 자신이 선을 넘은 건지도 몰랐다. 형과 동석 사이에 선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을 밟거나 넘기 전에는 그곳에 선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가 뒤늦게 당황했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종종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급작스레 분노하는 형을 보며 동석은 많은 날을 보이지 않는 선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에서 또 어떻게 밟을지 몰라 슬프고 위축되고 두려웠던 감정들이 떠올렸다. 어쩌면, 나는 또 선을 넘어버린 걸까. 동석은 불안한 마음으로 병식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병식이 마치 아주 낯선 말을 처음 발음해 보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물었다.
“우리가 같이요?”
“네. 우리가 같이.”
병식이 잠시 생각하더니 아주 작게 그 말을 반복했다. 달고 귀한 것을 입에 넣고 혀로 소중히 아껴 핥듯이.
“우리가. 같이. 우리가. 같이. 우리가. 같이.”
“네 우리가 같이.”
‘우리’는 같이 동석의 차를 타고 실종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로 출발했다. 다행히 가는 길에 실종자를 무사히 발견했다는 문자를 받았고,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 우동과 통감자를 나눠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동석이 처음으로 병식에게 이웃비를 지불한 날이었다. 우동 6,000원. 통감자 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