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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곰리 + 안도 타타오"가 전하는 시간

올해 최고의 전시 _ 뮤지엄 산 '그라운드'

by 미술관옆산책로

해 최고의 전시는 이 건가 보다. 올해가 아직 3달여가 남은 이 즈음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GROUND
안도 타다오
안토니 곰리
뮤지엄산


제임스터렐관처럼 상설전시가 될 듯한 안도 타다오의 'GROUND'라는 공간에 고독하고 연약한 인간이 녹이 묻어나지만 영원한 물성을 갖은 철의 외피를 입고 존재한다.


누군가는 서있고, 누군가는 누워 있으며, 누군가는 웅크리고, 누군가는 밖을 향한다.


자연에 직선이란 없다했는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직사각의 철들을 조합해 직선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부분적으론 직선이어도 중간점들을 이으면 전체적으론 곡선의 인간이 될 것이고 자연도 더 작게 나누면 결국 직선이 모여 곡선의 자연을 이룰 것이다.


안토니 곰리가 구현해 놓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서 직선과 곡선에 대한 해본적 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나 더,

하필 그가 나약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소재는 강인한 철이라는 것. 그런데 또 그가 선택한 철의 물성은 주조장에서 갓 나온 반짝이는 철이 아니라 녹이 생기기 시작한 철, 외형적으론 그러한 철, 그러나 그 안쪽은 철의 물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인한 철, 그 철인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과 대치되는 강인한 철, 강인한 철 안에서도 또 대치되는 녹이 배어나오는 철, 직선과 곡선의 대치,


흥미롭다.


곰리의 작품이 서 있는 공간은 공간자체가 너무 아름다웠다. 뮤지엄 산을 디자인한 안도 타다오의 공간이다.


'GROUND'라는 이름의 로마 판테온을 닮아 하늘에 구멍이 난 이 공간은 앞으로 가면 지상이나 뒤로 가면 지하이다. 다시 로마의 카타콤 처럼 무덤을 닮은 듯한데 그래서 두렵다기 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했다.


이 곳은 공간적 디자인 뿐만 아니라 소리의 디자인도 훌륭하다. 사람들이 공간의 중심쪽으로 이동하면 아주 작은 발소리도 크게 공명한다. 여러 겹으로 묵직하게 공명하는 이 소리가 너무 좋아 여러번 발을 굴러보는데 어른인 나는 갑자기 시간여행을 해 10살 아이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30분단위로 정해진 숫자의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어 관람환경이 아주 좋은데 20여분쯤 지나니 사람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길래 사람없는 공간의 작품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라운드의 곰리전을 보고나서 미술관 본진으로 들어오면 실내에 하나 더 곰리전이 있다. 이번 곰리전은 좋아서 두번 방문했는데 첫번째 방문 때는 이후 호암에 '루이스 부르주아'전을 보러가야 해 바쁘기도 했지만 실내 전시가 있다는 것을 아예 몰랐다. 같은날 우연히 친구도 이곳에 방문했어서 나중에 친구의 글을 보고 실내전시도 있다는 걸 알아 두번째 방문했을 때 간 것이다.


DRAWING ON SPACE
Antony Gormley
2025. 6. 20 ~ 11.30
뮤지엄 산


실내에 있는 곰리작품은 얇은 알루미늄 소재로 같은 사람을 동글게 동글게 표현한 것과 회화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도 빼놓지 않고 꼭 봐야 되고 보고 나면 곰리의 작품세계가 얼마나 확장성이 있고 다양하며 더할나위 없이 근사한지 알수 있다.

비슷비슷하지만 명확히 다른 여러 인간군상


전시의 타이틀이 <<Drawing on Space>>인데 드로잉이 꼭 스케치북에만 하는 것은 아니며 공간에도 이렇게 툭툭 구현할 수 있는데 그것이 이리도 훌륭한 독립 작품이 된다는걸 보여준다.


이 작품들의 타이틀은 모두 <Liminal Field: OOO>인데 OOO안에 'Slip,' 'Stay,' 'Slide,' 'Foil,' 'Assume'같은 단어들이 들어간다. 모두 2015 ~ 2017년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들, 드로잉들이었다.


<Orbit Field II> 2024

이 작품은 <Orbit Field II>라는 작품인데 작품의 사이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 Handicapped 인 사람들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지정된 루트가 있다.


작가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 보여주는 작품


두번째 갔을 때 80대의 엄마랑 같이 갔었는데 함께 본 여러 이전 전시들에서 본인이 혹시 몸을 제대로 못가눠 작품들을 칠 까봐 어떨 때는 작품을 보고 싶어도 안보겠다시곤 한 엄마도 이 작품의 감상 방식이 여러 다양한 사람들에 훨씬 배려적이라는 것을 아시곤 원껏 맘껏 작품 사이들 돌아다니며 즐기졌다.


곰리 작가에게 개인적 경험에서도 감사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곰리 작가의 여러 스케치성 회화작품들도 꽤 많았다. 연한 묵의 질감으로 인간을 그린 그림들에 마음이 가 닿았다. 그가 그린 사람들은 한 캔버스에 대부분 한사람씩으로 비례와 균형을 스터디하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스스로 고독해 보였다.






이번 전시는 곰리작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도 한몫 단단히 했다. 이번에 새로 오픈한 그라운드 외에 뮤지엄 산에 그렇게 여러번 갔으면서 이번에 처음 안도 타다오의 <빛의 공간>에 들어갔다. 그의 시그니처인 빛이 구현하는 십자가를 예상했어도 눈으로 직접 보면 전혀 새로운 감각인 양 아름답고 지극히 종교적이며 명상적이었다.

<빛의 공간> 안도 타다오

전시관은 원래도 조용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외부에 꾸려진 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 어느 누구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조용조용히 감상하고 각자의 사진을 찍고 조용히 나간다.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힘이자 아우라인 것.


하늘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흐린 날이어도 충분히 부드러운 십자가를 만들어 줬다.


비가오는 날이었어서 더 잘 보인건지 바닥에도 선명한 십자가가 생겼다.


대낮이었는데 카메라를 요레죠레 했더니 어두운 건축물 사이로 환한 빛이 들어온 것처럼 찍혔다. 실제는 저렇게 어둡지 않은데 사진으로는 이레 잡혀 감탄스러운 작품이 되었다.






진짜 몇번을 뮤지엄산에 와 놓고는 뮤지엄 뒷쪽 정원의 조각품과 돌무덤은 자주 갔어도 뮤지엄 초입의 이 조각공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Untited> 조엘사피로, 1995

내가 아주 좋아하는 조엘 사피로의 작품이 싱그런 자연속에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듯 경쾌하다.


<폭포 Cascade> 에릭 오어 Eric Orr, 1994

스탠리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모노리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붙인 타이틀이 <폭포>라 우주세계의 그 무엇을 상상했다가 너무 현실적으로 뚝 떨어뜨려진 작품.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모노리스 같은 탈현실의 오브제로 받아들였다.


<빨래하는 여인 Washerwoman> 오귀스트 르누와르 1917

느닷없이 너무 유명한 작가가 등장해 버린 작품. 아름다운 인상주의 회화를 주 무기로 하는 작가지만 가끔 이런 청동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뮤지엄 산도 한점 가지고 있었다.


뮤지엄 산의 시그니처인 입구정원

매일 봐도 지겹지 않을 푸르름과 아름다운 산의 능선, 그리고 시그니쳐 작품


갈때마다 똑같은 모습을 찍는데도 또 이렇게 남기고픈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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