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허무한 허과장

제2화: 허과장, 돈을 벌다.

by 흐릿한형체




사실 허과장은 40살, 16년 차 대감집 노비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미래가 불안한 적이 없었다.

주위 친구들을 만나도 본인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저 대기업 소속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너는 대기업이라 걱정이 없겠다."

친구들에게 주로 듣던 말이다.

"에이, 대기업이나 일반 회사나 급여 차이는 별로 안돼. 그냥 다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지."

겉으로는 한탄스럽다는 듯이 말하며 함께 사회를 욕하고 공감하는 척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지만 사회 탓을 하는 건 루저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이런 것이고, 그렇다면 불평할 시간에 잘 살 궁리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난 어느 정도 잘 살고 있다고...

허과장은 친구들에 비해 이른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돈을 벌었다.

그로 인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주도적으로 밥을 사곤 했다.

그것이 우월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때를 회상하면 허과장은 또 허무함에 사로잡힌다.

허과장은 여행을 좋아했다.

매년 한 번씩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뉴욕, 런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등을 여행했다. 주로 혼자서 여행을 갔으며 일상을 벗어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장소에 고통이 스민다고, 그래서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난다고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평화롭게 불안함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당연하고 지루하게 느꼈고, 여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즐겼다.

한편으로는 우월감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실시간으로 여행하는 모습을 올렸고 반응을 살폈다.

허과장은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더 많아졌다. 그 당시에는 데일리룩, OOTD(Outfit of the day) 등 착장을 찍어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스스로 번 돈으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자 허과장도 유행에 합류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브랜드 의류 착장 사진이 공식 오피셜 계정에 공유되면서 급격하게 팔로워가 늘었다. 허과장은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 나서기를 싫어했지만 관심은 너무 좋았다. 무언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 기점 이후로 허과장은 더욱더 쇼핑에 매진했다. 명품 및 디자이너 의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신상 제품을 착용하고 가장 먼저 인스타 피드에 올리고 싶었다. 그러다 돈이 부족해지면 기존 제품을 헐값에 팔고 쇼핑을 계속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팔로워는 어느덧 만 명에 가까워졌고, 그 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하게 지내는 인친들도 생겨났다. 지루했던 일상이 자극적인 일상으로 변했다.

돈을 벌고 여행, 쇼핑으로 소비하는 삶은 언뜻 보기엔 풍족하고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허과장이 돈을 소비하며 즐기는 생활을 하는 데에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신용카드이다.

신용카드는 참 편리했다. 그리고 죄책감을 덜어 줬다. 그 달 부족한 돈을 채워줬다. 항공권, 여행경비, 쇼핑 등 당장 남아 있는 월급이 없어도 모두 가능했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이번 달 월급보다 카드 값이 더 나왔는데 어쩌지?'

'리볼빙? 이건 왜 가입하라고 하는 거지?'

'뭐? 이번 달에 모두 갚지 않아도 된다고? 이런 엄청난 혜택이 있다니'

이번 달에 모두 갚지 않아도 다음 달에 약간의 수수료만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허과장은 이것을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금액으로만 보면 소액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리볼빙 수수료의 수수료율을 알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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