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점짜리 영어로 밥벌이

by Sean

영어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단연 고통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내 첫 영어는 윤선생. 그 덕분인지 영어 듣기는 항상 잘해왔던 편이지만, 어린 시절 배웠던 영어 문법 단어들은 너무 어려웠다. 형용사, 명사, 대명사, 부정사, 품사.. 이게 다 뭔지. 단어 자체가 어려우니 영어가 재미있을리 만무했다.


그에 비해 2살 터울의 나의 언니는 영어 시험만 보면 100점, 아니면 95, 96점.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말하기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오고,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는 100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첫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에서 77점을 받았다. 문제를 받았을 때 덜컹했던 마음에 비해서 잘나온 점수라고 생각하고 옆 초등학교에서 동생의 운동회에 참석하고 있던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나 무슨 과목은 96점, 뭐는 88점..' 하니 엄마가 '영어는?'하고 물어봤다.


'영어? 77점!'


그 순간 변했던 엄마의 표정과 돌아오는 말,


'집에 가서 얘기해.'


아차,


초등학교 때는 평균 90점 아래로 내려가본 적 없던 내가 앞자리 7을 보는 것은 낯설었지만,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 생각했는데, 엄마는 달랐다.


굳은 표정으로 내 방으로 온 엄마에게서 나온 첫 마디,

'엄마는 너한테 너무 실망했어.' 그리곤 내 방 문을 닫고 나갔다.


차라리 혼을 내고 화를 냈더라면, 내 마음이 조금 나았을까?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마음이, 나는 자격미달이라는 그 사실이 14살 꼬맹이를 괴롭혔다.

3일 밤낮으로 소리도 내어 울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나는 영어가 무섭기 시작했다.


'실망'이라는 말이 나에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 뒤로 나는 내게 꼬리표를 붙였다.


'영어 못하는 애'로.


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영어를 못하는 애였는데,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받으면 다들 곧잘한다고, 조금만 하면 치고 올라갈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에 아랑곳 않았고,


'엥? 점수가 잘못나온거 같은데.'라고 치부하곤 했다.


그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로 밥벌이를 하고, 국제연애를 하고 계속 영어를 써야하지만, 나는 결코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밥벌이도 하고, 원어민 남자친구도 만나고, 공공기관 일처리도 하고, 전화도 받고 주문도 한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77점짜리 영어지만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