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규정하는 힘에 대해서

다른 차원의 몸에 대한 착각

by 양예린

텔레비전 속의 마른 연예인을 볼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선망’이라고 단정한다. 그 마른 몸을 갖고 싶어 한다는 단순한 인과. 하지만 나는 이 설명이 이 현상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룬다고 생각한다. 실은 우리가 다이어트 강박에 빠지는 이유는 ‘그 몸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무의식적으로 이입하기 때문이다.

연예계는 현실과 닿아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으로 유지되는 공간이다. 그들 역시 인간이지만, 우리외는 다른 속도와 다른 조명 속에 살아간다. 우리의 일상은 무수한 반복과 지루함으로 구성되지만, 그들은 늘 드라마틱한 서사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무의식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한다. 저 사람의 삶은 내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직관. 그리고 그 세계로의 입문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가 오직 그들의 마른 몸이라는 착각.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몸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을 통해 그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우월감, 선택받은 존재라는 분위기, 주목받는 삶에 이입한다. 몸매는 단지 그 감각을 가장 쉽게 모사할 수 있는 표면일 뿐이다.

비현실적인 몸매 집착은 이렇게 탄생한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낮은 체지방’이 아니라, 삶의 공기 바꿔버리는 듯한 다른 세계로의 유입이다.
그러나 그 공기는 몸을 바꾼다고 해서 흘러오지 않는다. 연예계라는 공간은 조명, 편집, 기획, 시장 논리가 결합해 만들어낸 철저히 ‘제작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닮고자 애를 써도, 그 문은 애초에 우리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세계를 향한 욕망을 끊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어디에서 생성되는지 스스로 파악하는 일이다. 다이어트 강박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구성한 세계를 통과해 우리를 바라본다. 나의 몸이 부족한것이 아니라, 그 몸을 해석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회복은 몸을 다듬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둘러싼 시각적 환경에서 멀어질 때 시작된다. 화면을 끄고, 스크롤의 속도를 늦추고, 내가 입문하려 했던 ‘다른 세계’가 실은 내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에게 속한 속도와 몸의 감각을 되찾는다.

몸의 주도권은 그때 조용히 돌아온다.
특정한 체형을 향해 나를 깎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내 몸이 견디는 현실에 다시 귀 기울이는 방식으로.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선명한 세계에서 빠져나와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의 온도, 무게, 리듬을 다시 손에 쥐는 것.

비현실적인 몸의 욕망은 결국 다른 세계에 대한 미련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 몸을 온전히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그 미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실은 비현실과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은, 우리에게 가장 단단한 중심을 되돌려준다.

그 중심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몸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가장 고급스러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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