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사랑의 필수조건
'비밀'은 독일어로 Geheimnis이다. 이 단어는 집 혹은 가정에서 파생된 geheim이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으로 원래는 '익숙한 것', '친밀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가정 혹은 집에 속한 것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비밀'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1부 '거울'편에서 투명사회의 자기 인식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했고, 2부 '벽'편에서 타자와의 경계의 모호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 두 과정을 통해 '비밀' 역시 존재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공유되고, 해석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사생활이 아닌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잃게 된다. 모든 것이 공개된 곳에 '주체성(Subjektivität)'은 존재할 수 없다. '주체'는 "아래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모든 감각의 아래에서 지각을 관장하는 '인식의 중심'을 의미한다. 이 주체는 공개되지 않고, 공유되지도 않으며, 해석되는 대신 해석을 하는 능동적 기능을 한다. 주체성은 '나'라는 익숙한 것의 비밀 공간, 즉 '내면의 성역'에 머물며 외부의 시선이나 판단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한다. 인간의 존엄은 바로 '숨길 권리'로부터 시작된다.
비밀은 단순한 은닉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내면의 실험실'이다. 일기장과 비공개 메모는 누군가에게 공개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쓰이며, 카오스와 같이 이곳에서 자신의 비도덕적 욕망과 모순은 창조적 시선을 잉태한다. 외부 세계의 질서로부터 고립된 이 은밀한 공간에서 자아는 성장한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비밀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고, 그 거리 안에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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