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령(言霊)

by 송지훈

일본의 저명한 문호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영어 교사 시절에 있었던 일화는 그가 활동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정서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한 명이 “I love you”라는 문장을 “我、汝を愛す。(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직역을 했을 때, “일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라 했고, 그러면 어떻게 번역하는 게 옳을지 묻는 그의 제자에게 “月が綺麗ですね。(달이 아름답다.) 정도로 해두세요.”라고 답한 것이다.


달이 아름답다.

月(つき, 달)가 好き(すき, 좋아하다)와 발음이 닮은 점까지 생각해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랑에 대한 일본인의 서정적 정서를 더없이 선명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준 일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일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달빛 아래 서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싶지만 그저 내뱉는 한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자신의 마음을 꼭 움켜쥔 한 남자의 떨리는 눈동자가 두 눈앞에서 그려지는 것도 같았다. 당장이라도 내뱉고 싶은 사랑의 말은 계속해서 입 안만 맴돌 뿐이고, 그런 자신을 하얗게 비추는 달빛 아래에서 마침내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말로 조심스레 담아낸 마음. 어찌 보면 아무런 연관도 없는 한 마디지만 가슴에 남는 여운은 신비로울 만큼 길다. 위대한 문호는 그런 것일까. 그저 흑과 백에 지나지 않는 텍스트를 가지고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과 감수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영화 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내게 하는 것. 짧은 일화지만 나는 그 점을 여실히 느꼈다.


최근에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에 비슷한 맥락의 답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타바테이 시메이( 二葉亭四迷)라는 문인이 러시아 문학 투르게네프의 밀회라는 작품에서 “(나는 이제) 당신 거야 “라는 장면의 한 문장을 “死んでもいいわ。(죽어도 좋아.)”라고 번역한 점이다. 그리하여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남자의 고백에 “죽어도 좋아.”라는 여자의 답변은 지극히 관용적이면서도 전형적인 일본인의 문학적 고백과 승낙의 표현이 되었다고 한다.


두 문장의 문답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에 대한 스스로의 정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당히 모호한 의미가 될 수도 있는 다른 표현으로 에둘러서 전달했다는 점이다. 한데 후타바테이의 표현은 아무래도 나츠메 소세키의 표현에 비해서 아름답다는 느낌은 적다. 일본인들이 저 두 문장에 대해 정서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래도 단어 하나하나가 고유하게 지닌 의미 자체도 영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달이라는 유려한 대상에 대해 아름답다는 표현을 덧댄 것은 다분히 여성적 문체이면서도 상냥하고 부드러운 표현이다. 달이 뜨는 밤이라는 시간과 달이 보이는 밤하늘 아래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일련의 매개들이 한데 어우러져 듣는 이로 하여금 남자가 지닌 연인에 대한 애정을 더욱 가련하고도 아름답게 빛내는 것이다.

반면 죽어도 좋다는 표현은 죽는다는 극단적인 표현이 도리어 전후 사정에 대한 맥락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듣기에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없는 것 같다. 여성이 마주한 자신의 연인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을 만큼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아무래도 죽음은 그에 얽힌 배경 내용이 주어지지 않고 그저 듣기에는 깊은 감동보다 무거움을 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두 문장을 통해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두괄식 비즈니스 메일에 절어 항상 효율과 핵심만을 추구하던 나도 문학적 감성을 아예 잊은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령(言霊)은 실존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쓰는 말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고 그 영혼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지식에 의해 단어가 주는 정보에 보다 집중하는 경향을 지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단어와 문장이 지닌 고유한 감정은 여실히 듣거나 읽는 이의 정서에 스미는 것이다. 그러니 말은 신중히 해야 하고 글은 정성 들여서 써야 한다. 언어는 나에게만 하는 독백과 나만 읽는 글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에 앞서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잊지 말자. 좋든 나쁘든 내가 입을 열고 펜을 들어 만들어낸 모든 언어는 그 스스로 유기체로서 청자 및 독자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렇게 문예에 대한 진솔한 정성을 들이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나츠메 소세키의 일화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따뜻한 한 문구를 자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안고서라면 글 쓰는 것이 더더욱 즐겁고 설레는 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