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평론가협회 영화비평 공모 당선

부산영화평론가협회 & 영화의전당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영화비평 공모에 당선됐다.


올해부터는 공모전 마감일을 데드라인으로 잡고 장평을 써 보자는 심산이었고 올해 하반기에 파고 들었던 작가가 알랭 기로디였다. 나는 그의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때 스틸컷으로 함께 눈에 들어왔던 숏이 아마 마르틴과 제레미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숏이었던 것 같다. 예매에는 성공했으나 늘 그렇듯 늦잠으로 인해 부국제에서 영화를 보지는 못 했고, 운 좋게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미세리코르디아>를 상영해 주어서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원래는 기로디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지도로 삼아 <미세리코르디아>를 파고 드는 작품론을 쓰려고 했지만 올해 부산영평상 주제가 알랭 기로디인 것을 보고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연구하는 감독론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선이 되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많은 글이다. 알랭 기로디는 많이 알려졌지만 잘 탐구되지는 않은 작가다. 개봉작은 가장 최근작 <미세리코르디아>뿐이고, 그 외의 몇몇 작품들은 영화제를 통해서 간신히 소개된 정도다.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와 몇몇 리뷰들을 제외하고는 기로디라는 작가를 연구할 만한 논문은커녕 텍스트도 찾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기로디의 영화는 최근작들에서는 좀 덜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탈역사화하는 측면이 있는데(이와 관련하여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를 활용하는 비평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는 어떤 사회 역사적인 측면을 단서로 잡고 비평을 시도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참고할 만한 텍스트도 부족하고, 의지할 만한 바깥의 맥락도 무용한 상황.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냉소적이면서도 확고한 기로디의 신념을 인터뷰에서 발견할 즈음에는 외부 맥락을 내려두고 기로디라는 사람을 파고 들고 있었다.


기로디에 대해서는 이미 쓴 비평 말고도 할 말이 많다. 사실 원래 쓰고 싶었던 건 기로디의 몇몇 숏들을 탐구하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이었지만 아직은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일찌감치 접었다. 언어로 구현하기 어려운 듯한 이 감상을 언젠가 비주얼 오디오 필름 크리틱의 형식으로 기로디의 숏들을 모아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 켠에 넣어 둔다.


비평을 쓰던 중 문득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실천하는 임상가들을 위한 권고>(1912)가 떠올랐던 순간이 있다. 여기서 그는 분석가는 환자의 말을 의식 수준이 아닌 무의식 수준에서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식적인 생각과 판단은 분석작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호수 위를 유영하듯 잔잔히 떠 있는 주의하에 서로 간 대화에 빠져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어떤 꿈 같은 공상(Reverie)이 있고 이것이 피분석가의 주요 이슈를 해석할 단서가 된다. 말하자면, 내담자의 마음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과 함께할 때 유발되는 나의 공상과 정동을 먼저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어떤 점에서는 이와 비슷한 듯하다. 깜깜한 극장 안, 스크린에 반사되는 빛과 어둠의 유희. 극장 밖에서 이미 지나가버린 이미지와 시간을 더듬다 문득 마주하게 되는 나의 어떤 것. 비평이란 것도 영화에 대해 쓰는 것 같지만 결국엔 나에 관해 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스크린과 프레임을 거울 삼아 나와 타자 사이를 공명하는 이 작업을 무척이나 애정한다. 쓰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성실히, 즐겁게 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