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싸드라: 당신의 비밀을 아는 중고차 딜러 (상)

[연재] 중고차 살 땐 역시, 결론은 카-싸드라 | 제1화

by 원망



중고차 살 땐 역시, 결론은

카-싸드라

제1화 | 당신의 비밀을 아는 중고차 딜러 (상)


마세라티의 여인들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마세라티가 강남 오피스 타운으로 향한다. 운전석의 연주(30)는 투피스 정장 차림이다. 단정한 머리, 고운 얼굴, 옅은 화장. 모든 것이 기품을 뿜어낸다. 조수석의 진아(26)는 캐주얼한 단발머리다. 그녀는 연주를 '언니'라 부르며 재잘거린다.


"이젠 남자 없이 살아야 할 거 같아요."

"왜, 이번엔 그렇게 잘해준다며."

"말 통하면 잘생긴 남자, 잘생기면 돈 많은 남자...

제가 꼬시는 게 아니라 꼬이는 건데. 아닌가, 언니? 그냥 내가 남미새인 건가?"

"네 매력이 죄는 아니지. 네가 잘 고르면 되잖아."

"이번엔 돈도 많고, 시간도 나한테 맞추고, 성실하고, 성격도 좋고, 말도 잘 통하고, 외모도 내 스타일인데..."

"인데?"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널?"

"내가 그 사람을... 다정하던 사람이 조금만 짜증 내면 꼴 보기 싫고, 와 달라던 사람이 약속 있다고 하면 알면서도 화가 나요. 나 안 사랑하는 거겠죠, 그 사람?"

"푸흐! 사랑하네. 사랑해!"

"몰라요... 언니가 부러워요. 형부 같은 남편은 어디서 찾는 거예요?"

"운이 좋은 거지.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네 형부가 처음으로 내가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거든. 그것도 운이고. 히히."

"와, 언니 자랑도 할 줄 아네. 형부 같으면 나도 그랬겠다."


차량 스피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화면에 '리버빅'이 뜬다. 연주는 자신의 전화인 줄 알고 손을 뻗다 갸웃한다.


"러버박? 누구지?"


진아가 재빨리 통화 거부를 누른다.


"내 거예요. 내 거."


진아는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엉뚱한 말을 덧붙인다.


"아휴, 시도 때도 없이...!"


연주는 진아의 당혹감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 네 전화였어?"


연주는 모르는 발신자 이름이 진아 전화에서 떴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말투였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진아였다.


"이게 왜? 아... 그때 은혁 씨랑 언니랑 형부랑 같이 형부 차로 남양주 갔을 때, 내가 음악 담당이었잖아요. 그때 연결해 놓은 걸... 아휴 민망해라."

"아, 그거야 알지. 근데 '러버박'은 또 누구야? 은혁 씨는 최은혁이잖아. 그새 바뀐 거야?"

"아니, 그냥 자꾸 쫓아다니는 남자인데."

"그냥 쫓아다니는 남자를 '러버박'이라고 저장해?"

"아휴, 지가 자길 그렇게 부르니까요, 촌스럽게, 웃겨서 저장한 거예요."


진아는 연주가 '리버빅'을 '러버박'으로 읽은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빨리 이 대화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나, 그때 이 차 스피커 소리 참 좋아했는데... 이제 이 차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응 그래, 나야 가끔 탔던 차니까, 형부가 정이 든 차지."

"그런데 왜 판다는 거지?"

"또 차가 바꾸고 싶나 봐."

"근데 이걸 꼭 언니가 직접 가서 팔아야 해요?"

"그러게 말이야. 형부가 워낙 꼼꼼하잖니. 환자한테 소개받은 딜러인데, 여기서 해야 감가를 잘 쳐 준다고. 그리고 이 딜러가 차량이 많아서 나보고 마음에 드는 차 있으면 하나 사라고 하더라고."

"네? 형부는 새 차를 사고 언니는 중고차를 사라고요?"

"아아, 그게 내가 옛날부터 가끔 오래된 차들 보면 '와 예쁘다, 타보고 싶다' 했었거든. 이 딜러가 올드카 매물을 많이 가지고 있대."

"아, 그렇구나. 전부 처음 듣는 얘기네..."


연주는 곁눈질로 진아를 힐끗 보며 가볍게 웃는다.


"그럼, 처음 듣지. 우리가 만난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히히, 그렇죠."


높은 현대식 빌딩 앞에 마세라티가 멈춘다. [하병원] 간판이 보인다.


"자, 그럼 잘 가."

"네네, 언니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참, 너 있다가 혹시 형부 마주치면, 아니, 그냥 원장실에 말하고 저 뒤에 갈아입을 옷이랑, 간식 있는 것 좀 전해 줄래?"


뒷자리에 커다란 쇼핑백이 보인다. 그 옆에는 리본이 둘러있는 작은 상자가 있다.


"아, 네네."

"참, 그 옆에 거는 네 거야. 케이크. 맛있게 먹고."

"어머, 언니, 고마워요!"


진아는 연주에게 인사하고 짐을 들고 차 밖으로 나가 병원 입구로 들어간다. 연주(남편)의 차가 다시 출발한다.


엠파크의 초미남 딜러


연주의 차는 거대한 인천의 중고차 단지 엠파크로 들어선다. 그녀는 내비게이션을 살피며, 한 큰 주차장 건물 3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엔 판매 중인 다양한 차량들이 빽빽하다. 특이하게 오래된 수입차들이 많다. 연주는 차에서 내린다. 명함 사진과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번호를 누르려한다.


“이연주 씨 되십니까? “


연주는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온몸이 떨린다.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다. 연주는 뒤돌아본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높은 곳에서 나왔다. 연주가 고개를 올린 곳에는 실크 넥타이가 보인다. 밤무대에서나 볼 법한 과한 빛을 내는 넥타이다. 아직 얼굴을 마주하기 전이지만, 목소리에 이어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연주의 모든 것을 굳게 만든다. 연주는 뻣뻣해진 몸을 가까스로 움직여 고개를 든다. 연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질식했을지도 모른다. 기이하다. 그는 마치 19세기 유럽에서나 입을 법한 과하고 화려한 수트를 입고 있다. 그의 머리는 곱슬거리는 금발이다. 그의 얼굴. 그것은 예쁘다, 잘생겼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답다가 가장 가까운 표현이지만 그것도 부족하다. 연주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른다. 감정이 압도되면 몸이 반응하지만 연주의 몸조차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반응이 아주 익숙한 듯, 그 아름다운 사람은 연주에게 왜 그리 긴장했냐고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간다.


“이연주 교수님, 하대수 원장님 아내분 맞으시죠? 하 원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저는 카-싸드라라고 합니다.”


남자(라는 사실은 이제야 안다)는 연주에게 안주머니에서 황금 테두리가 둘러 있는 명함을 건넨다.


[차를 팔 땐 카-사드라. 결론은 역시 비-싸드라.

차를 살 땐 카-팔드라. 결론은 역시 카-싸드라.

엠파크 최고가 대한민국 최고, 중고차는 역시,

누가 뭐라 해도, 결론은, 카-싸드라! T.010.9181.005X]


명함의 내용은 산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남자의 얼굴은 모든 신뢰를 더하고, 곱하고, 그리고 남는다.

연주는 이런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자체가 신기하지만 덤덤한 척 (떨면서) 말한다.


“네에… 이 차…”


카-싸드라는 품에서 작은 아이패드를 꺼내서 서류 화면을 스크롤한다.


“네, 하 원장님께 기본적인 서류는 받았습니다. 그럼 차를 한 번 확인해 볼까요?”


카-싸드라는 연주가 타고 온 차의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다. 주행거리와 공조시스템을 확인하고, 태블릿의 서류와 대조하며 체크한다. 차 외관 구석구석을 살펴본 그는 마지막으로 아직 열기가 남은 차의 보닛에 손을 얹는다. 연주는 아직도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그의 모든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 그제야 연주는 그가 손에 어울리지 않는 가죽 장갑을 끼고 있단 걸 안다. 카-싸드라는 조심스럽게 오른손 장갑 한 짝을 벗는다. 보닛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린다. 카-싸드라의 감은 눈앞에 생생한 장면이 펼쳐진다.


보닛을 만지면 보인다; 카-싸드라의 시선


깊은 산속 인적 없는 곳에 화려한 무인 모텔 앞이었다. 모텔 간판 불빛과 한밤중 작은 산 너머 시골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흔적 외에는 캄캄했다. 모텔로 향하는 마세라티의 라이트만 숲 속을 비추었다. 모텔 진입 전, 차가 멈춰 섰다. 차 안에는 연주의 남편 하대수와 연주의 후배 진아가 함께 있었다. 대수는 선루프를 활짝 열었다. 진아가 대수에게 물었다.


“왜 세워요?”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가자.”

“그래요. 시골 공기가 너무 좋다.”


진아는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대수는 진아의 몸을 가로질러 글로브 박스에서 액상으로 된 파이프를 두 개 꺼냈다. 하나는 자신이, 다른 하나는 진아에게 건넸다.


“이걸로 피워봐.”

“이건 뭐예요?”

“깨끗한 거야.”


둘은 액상 파이프와 연초를 번갈아 피우며 서로의 입을 맞추고 건넸다. 진아가 느낌이 오는지 눈이 풀렸다.


“아, 좋아…”

“빨아줘.”


대수는 운전석에서 바지를 내리고 진아에게 말했다.


“우리 저기 안 들어가요?”

“공기가 너무 좋잖아. 안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있을 텐데, 여기서 해줘.”


진아는 고개를 숙였다. 액상 파이프를 피우며 대수는 흥분했다.


“후우- 진아야, 저 안에 들어가면 더 좋은 거 줄게.”

“음, 뭔데요?”

“오늘은 주사기도 챙겨 왔어.”

“흡… 그, 디오제약? 박계수 팀장이 구해준 거예요?”

“응, 이런 건 너도 처음일 거야.”


진아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대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그러다 박 팀장한테 꼬리 잡히고, 둘 다 감옥 가는 거 아니야?”


대수는 진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다시 숙이게 하고 말했다.


“미친, 박 팀장한테 내가 벌어주는 게 얼만데…”

“아읍, 잠깐! 나도 넣어줘!”


진아가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키더니 스커트 아래로 속옷을 내렸다.


"여기서? 안에 들어갈 건데?"

"여기 공기가 너무 좋아. 여기서 하고 싶어요."


대수는 황급하게 옷을 완전히 벗었다. 진아에게 키스했다. 몸을 뉘이다 멈추고 차 문을 열었다.


"나와!"


진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대수는 진아를 차 보닛에 눕히고 몸을 포갰다. 어두운 산속, 멀리 모텔 불빛과 대수의 마세라티 라이트만 밝게 빛났다. 라이트 주변으로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진아가 대수의 몸을 받으면서 소리쳤다.


"벌레, 벌레가 너무 많아!"

"벌레도 네가 맛있나 보지."

"잡아줘요, 벌레."


대수는 진아의 몸을 돌리고 하얀 허벅지와 엉덩이의 벌레들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렸다. 소리치는 진아와 더욱 격해지는 대수.


"너, 너무 흥건해!"

"내가 흥건한 게 아니야. 당신 때문이야. 하대수 당신이 큰 강물이니까. 빅 리버!"

"응, 맞아. 이제부터 리버빅이라고 불러. 사랑해, 진아야."

"아! 사랑해! 리버빅!"


이건 첫 번째 원칙: 비밀은 말하지 않는다.


“뭐가 잘못됐나요?”


연주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카-싸드라가 보닛에 손을 댄 시간은 채 10초도 안 됐지만 그 기이한 분위기에 연주는 불안하다. 카-싸드라는 손을 떼고 눈을 똑바로 뜨고 연주를 바라본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사전에 하 원장님이 주신 자료 그대로예요. 사고 이력도 전혀 없고, 정말 깨끗하게 타셨네요.”

“아, 네네. 뭐 그야 병원, 집, 가끔 세미나 가는 거 말고는 어디 안 가니까요.”

“네네. 자, 이제 저기 제 사무실로 가셔서 서류 작성하시면 됩니다.”

“자, 잠깐만요.”


연주는 돌아서는 카-싸드라를 붙잡는다.


“저… 저기 저 차는 파는 거 맞지요?”


연주가 가리키는 곳에는 1980년형 올리브색 벤틀리 뮬산이 있었다.


“아, 네. 파는 건 맞는데, 외형만 저렇고 내부는 전기차로 개조된 차량이에요.”

“아, 저는 차 잘 몰라요! 안에는 상관없어요. 전에 우연히 봤던 차라서, 저 차 좀 알아봐도 될까요?”

“네, 좋아요. 일단 운전석에 타서 핸들을 한 번 잡아보시겠어요?”

“네?”

“아, 차는 일단 핸들을 잡아봐야 느낌이 오니까요.”


카-싸드라가 운전석의 문을 열어준다. 연주는 차 안에 탄다. 핸들에 두 손을 올린다. 카-싸드라는 아직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을 차의 보닛에 올리고 눈을 감는다.



중고차 살 땐 역시, 결론은 카-싸드라

제2화 | 당신의 비밀을 아는 중고차 딜러 (하편)에서 계속

저주받은 예언자

인생은 계속된다

성진아폴로니아그룹

경차를 팔러 온 고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