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도
직장의 또래 남자 동료와 카풀을 한 적 있다. 잘 모르는 사이라 부탁하기가 어려웠지만, 그가 생각보다 흔쾌히 응해주었다. 당시 살던 집이 직장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 초입이라 그 길목에 내가 타서 가는 식이었다. 소정의 주유비를 매달 전했고, 혹시 출장이 있거나 반차를 쓰는 날엔 괘념치 마시라 했다. 출근 시간대에 맞는 기차는 없었지만, 퇴근 시간에는 대충 맞는 기차가 있어서 어떻게든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혐오가 가득한 힙합 노래를 아침부터 듣는 것은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여자친구인지 썸인지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주말에 남자들끼리 펜션 잡고 술 마신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어찌저찌 직장에 도착했다. 그때 그와 나 사이 있었던 공통점이라면 남미에 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어서, 그 주제에 관해서는 내 얘기도 했던 것 같다.
그가 오후에 외근을 나간 뒤 바로 퇴근을 한다고 했던 날, 퇴근 시간 무렵 연락이 왔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으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진짜 없는데. 과한 친절을 베풀 땐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때도 나는 인간의 선함을 더 믿어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더니 며칠 뒤부터 별안간 그는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지름길로 못 가고 돌아간다거나, 퇴근 시간에 나를 내려주고 나면 너무 막힌다거나 한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가 지름길이라 말하는 길로 가서 그의 동네 근처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한 번 더 탔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던 그는 어느날 나에게 쐐기를 박았다. 나 때문에 소개팅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네? 뭐라구요? 그는 횡설수설하며 설명했고, 나는 그 말이 끝내 나를 태워주느라 소개팅할 시간이 없다는 건지, 그가 이미 나를 그의 연인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소개팅을 못한다는 건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둘 다를 말하는 것 같았으나 둘 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퇴근을 하고 그의 동네에 돌아오면 오후 5시 30분이었고, 당시 나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말을 듣고도 그의 차를 계속 탈 순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차를 타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고, 내리면서 그 달의 주유비를 지급하고 차에서 내렸다. 출퇴근 무궁화호 기차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 기출문제를 풀었고, 여름 휴가 기간 동안 운전학원을 등록했다.
불행하게도 운전학원 강사들은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 군상이었고, 나는 50만원을 태우고도 장내 시험장 연석 위에 차를 세운 채 내려야 했다. 그 순간 장내에 울려 퍼지던 "OO번, 내리세요!"는 몇 년간 트라우마가 되었고, 나는 운전 면허로부터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