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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여름 Jul 04. 2022

요리하기 싫어!

12년 차 주부의 앙탈

주부가 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요리하기가 싫다. 요리에는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다. 요리를 하기 위해 쓰이는 시간은 아깝게 느껴지고,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은 귀찮다. 내가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식사란 생존을 위해 한 끼를 때우는 행위일 뿐이다. 무엇을 먹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허기를 달래기만 하면 된다.


미래에 음식을 대체할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된다면 나는 기꺼이 음식 대신 알약을 선택할 것이다. 나처럼 음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요리를 하는 행위는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것과 같다. 나도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한 때는 요리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요리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서 배우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유튜브를 찾아보면 쉽고 빠르게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고수님들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 하면 대충 비슷하게(?) 맛과 모양을 낼 수는 있으니까.

오늘 점심에는 애호박전과 순두부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건강 프로그램에서 애호박을 극찬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여름철 뙤약볕 아래서도 말라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애호박은 더위를 이기는 대표적인 여름철 음식이라고 했다. 진행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려니 당장 애호박 요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 애호박전은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기도 해서 노릇하게 전을 부치고, 순두부찌개에도 애호박을 잔뜩 썰어 넣었다. 딸아이는 엄마의 요리를 평가할 때 객관적인 편이다. 다행히 오늘은 엄지를 치켜들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영영 요리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요리는 주로 남편이 담당하고 있다. 물론 나도 요리를 하지만 메인 셰프는 남편이다. 신혼 때는 ‘내 음식이 맛이 없어서 남편이 요리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요리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더 나은 맛을 내기 위한 연구도 서슴지 않는다. 온갖 천연재료와 소스들을 자기만의 비율로 적절하게 섞어서 풍미를 살리고, 같은 메뉴를 매번 다른 조리법과 양념으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일종의 '요리 실험'즐기는 것이다. 한식조리사 자격증 취득을 고민할 정도로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남편의 요리는 언제나 맛있다. 요리를 잘하는 남편을 둔 덕분에 나의 요리 실력은 십 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번 주는 남편이 출장 중이라 내가 주방에 들어갈 일이 많아졌다. 점심을 먹고 아이와 오후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수산코너에서 싱싱해 보이는 병어를 두 마리 고르, 채소코너에서는 감자와 고사리나물을 담았다. 색이 진하고 맛이 좋아 보이는 과일 빼놓지 않았다. '여름 나기를 하려면 좋은 음식으로 잘 먹어야 한다. 사십 대는 더 이상 아무거나 먹어도 쌩쌩한 나이가 아니다. 먹는 게 남는 거다.' 마음속으로 요리를 해 먹어야만 하는 이유를 열 가지 이상 꼽아봤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요리하기가 싫다.  


밥때는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뭉그적거려 보지만 피할 수는 없다. '엄마'에게 요리는 소질이 있든 없든, 하기 싫든 좋든 해내야만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리하는 게 정말 재미없다.” 아이에게 하소연을 해본다. 속 깊은 아이의 응원에 힘을 내며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나에게 요리는 평생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숙제를 즐기며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려나. 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또 한 끼를 해 먹기 위해 정성을 다해 아이가 좋아하는 고사리나물을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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