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아빠가 오늘은 마음 속 어두운 곳을 나누려 해.
아빠는 너희가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자라났으면 좋겠어. 아빠도 그러려고 노력한단다. 하지만, 아빠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
아빠가 그 사람을 왜 미워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진 않아. 대부분 나의 미움을 정당화하는 이야기야. 나는 그 일들이 사실이라 믿지만, 내가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는 걸 수도 있어.
미움이 마음 속에 싹틀 때, 아빠는 그러면 안 돼라고 계속 되뇌었어. 그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상처가 있어서 그럴 거야. 아빠는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싶었고, 그 아픔을 쓰다듬어주고 싶었어.
너희를 진짜 힘들게 할 사람은 너희 마음을 직접 찌르지 않는단다. 마음의 옆구리로 칼을 은근히 찔러들어와. 보이지도 않고, 잘 느껴지지도 않게. 단지 어디선가 내 뜨거운 피가 흐르는 느낌이 날 뿐이야.
그 사람을 품어주는 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품어주면 품어줄수록 그 칼은 더욱 선명히 아빠 마음을 찔러 들어왔단다.
런던의 한 카페에서 깨달았어. 내 영혼의 그릇이 아직 작아서, 그 사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구나. 내 영혼이 바닥 난 지금,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내가 떠나는 거다. 그렇게 아빠는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 있던 곳을 떠나기로.
너희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그렇게 싫은 사람이면 그냥 손절하면 되는 거 아니야?
물론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런데도 아빠는 그게 쉽게 안 되는 거 같아. 내가 싫어한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또 내가 싫은 사람도 포용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손절은 그 친구에 대한 미움에 지는 거라 생각했어.
떠나기로 결정한 뒤에, 나의 미움을 스스로 인정했나 봐. 그래서인지 그 친구에 대한 미움도 자유를 얻었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미움은 그대로 남았어. 아니, 더욱 자란 것 같아. 이젠 험담을 해도 거리낌이 없고, 그 친구의 실패를 더욱 기뻐하게 된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아빠 스스로 너무 후져 보이는 거 있지?
언젠가는 이 미움이 해결될까?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까? 너희가 컸을 때 해결했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찰스 크래프트라는 사람이 쓴 내적 치유에 관련된 책을 보면, 어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다시 친해져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래.
아빠를 위해서 기도해주겠니? 아빠가 너무 후져지지 않게. 그리고 미움으로 아빠 영혼이 썩지 않게.
너희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