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정보라 ≪아이들의 집≫
열림원에서 시대 비판적인 비현실 속 현실 이야기를 하나씩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 피부에 직접 와닿는 이야기들에 뉴스를 보고 있는 것마냥 안타까워 눈물이 글썽 맺히다가도 '깡통'이라고 불리는 보육 로봇, 뇌파 조종 방식의 입는 외골격 로봇, 통합적 양방향 합성 신경통로를 탑재한 의족 등 미래 과학 기술들의 등장에, 휴, 현실이 아니었군! 다행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어린이와 청소년,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지키고 기르는 것이 당연시된 근미래에서 그들은 과학에 의존하기도, 신문물들을 의심하기도 하며 서로 기대어 살고 있다.
지난 6월 말 시작한 같은 책을 천천히 3번 읽는 비대면 독서 모임의 단체 채팅방에서 8인의 여성이 첫인사로 본인 취향의 책을 소개했다. 연이어 언급되는, 내게는 아직 낯선 '정보라'.
나는 이번 비현실 속 현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말하던 정보라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어서 해당 단체는 자신들의 기술을 활용하면 '장애자나 동성애자 따위가 태어날 가능성이 원천 차단된다'고 공언했다.
열림원의《아이들의 집》 p.49
첫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는 무명(無名)이 아니라 형질을 알 수 없는 무정형(無定形)이다.
무정형, 구(球), 삼각형, 정사각형, 마름모, 표(表), 관(慣).
그들은 이름이 있다.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알 수 없지 않다. 하지만 특정하거나 예측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겉을 통해 의도치 않게 무의식 중 한 판단도 '아닐 수' 있다.
"태어난 곳은 몰라요. 이 동네, 이 지역에서 살았어요."
사실은 외국인이 아닌 사람이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같은 책, p. 70
- 어린이들의 행복을 지원하는 화합을 찾고 있습니다.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요?"
무정형이 되물었다. 상대방은 처음에 알아듣지 못했다. 무정형도 휴대전화를 꺼내 통역 앱을 켰다. 다시 한번 모임의 이름을 되풀이했다.
같은 책, p. 194
돌봄과 양육을 국가와 공동체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와 무결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정보라 작가님의 《아이들의 집》과 더불어, 악하지만 약할 수도 있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황모과 작가님의 단편 《10초는 영원히》도 떠올랐다.
"우리를 봐. 이곳에선 아픈 자들에게 그 어떤 처치도 하지 않았어."
(중략)
간수들은 우리에게 소년범, 사회 부적응자에 더해 한 가지 이름을 또 붙였다. 공상 구현병, 희귀성 망상 질환자.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중 《10초는 영원히》 p.78
첫 정보라였지만, 현실과 가까운 미래의 경계, 평범한 현대물과 공상과학의 경계, SF와 호러의 경계를 거부감 없이 미묘하게 내놓는다는 것이 특별하게 닿았다.
문체에서 특징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첫째로 인물 액션의 모든 단계를 서술한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인물의 의미 있는 액션만을 선택적으로 묘사한다면, 정보라 소설에서는 인물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간 뒤 무엇을 잡았고 고개는 어떻게 했는지 등 액션의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서술해주어, 상상하다 보면 한장 한장 스케치북 넘기듯 장면이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연속되는 영상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 다른 부분으로는 대비되는 묘출 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전하는 표현을 맛깔나게, 그리고 이질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관은 친아버지의 이름을 제시했다. 담당 공무원은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개인정보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관이 아버지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 동의를 얻으려면 아버지를 찾아야 했고, 아버지를 찾으려면 아버지의 연락처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연락처를 얻으려면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열림원의《아이들의 집》 p. 103
그 2주 동안 관은 온갖 가능성을 상상하며 불안과 두려움의 나락에서 희망과 기대감의 골짜기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같은 책, p. 104
눈물의 외침과 기쁨의 탄성과 아쉬움과 애도의 한숨과 또다시 흘러나오는 눈물 속에서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같은 책, 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