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빈 작가님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영감을 과도하게 부어주는 작품은 감히 활자로 남기기를 시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담과 남겨질 내 글에 대한 기대(정말이지 웃기지 않을 수 없다)에 미루고 미루다 보면 이미 기억은 휘발되어 있다.(!)
그럴 때마다 결국 내게 남아 있는 건 아쉬움뿐인데, 작년부터 올해 극초반까지 굉장히 다독하던 시기에 읽었던 작품들 중 다수가 그랬고(좋은 것 많이 읽었는데 아쉽다. 땅을 친다), 올봄에는 『파리대왕』이 그랬다. 다시 펼쳐 보면 어떤 감각 때문에 내가 미쳤었는가 어렴풋 느껴지긴 하지만, 그 시절의 나를(불과 몇 개월 전이지만서도) 남 보듯 하며 어렴풋 느끼는 감각은 넌지시 생경하게 쳐다볼 뿐이다.
열림원에서 시대 비판적인 비현실 속 현실 이야기를 하나씩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정보라 ≪아이들의 집≫과 서윤빈 작가님의 작품을 연이어 본 나는 그것이 콘셉트라는 것을 확신한다). 거기에서 '이런' 느낌을 준 또 다른 작품을 만났다. 서윤빈 작가님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이다.
고전 중에서도 아포리즘스러운 저자의 사색이나 철학을 담은 글들을 가장 극진히 모시는 나에게, 이 책은 심지어 고전이 아니고, 심지어는 또 SF다.
일곱 개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잇는 방식, 내용적인 측면, 문체적인 특징 이렇게 세 가지를 중심으로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이때, 병렬로 읽고 있는 아민 말루프의 ≪레오 아프리카누스≫, 국내 최애작 한강 선생님의 ≪희랍어 시간≫, 해외 최애작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얼마 전 2회독을 하고 내게 드디어 최애 작가로 떠오른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모두 언급할 예정이다. 참고로, 나의 독서와 쓰기 생활에, 이처럼 최애작을 한 번에 함께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째, 일곱 개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잇는 방식
생명은 어미의 양수에서 시작된다. 모(母)의 태 중에서 자라나지 않는 생명체라 할지라도 배아와 양분 영역은 촉촉하고 끈적한 세포외기질로 둘러싸여 있다.
우연히, 병렬독서하던 두 권의 책 모두 '빠른고 강한 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물�로의 비극☔️이 축축하게 포문을 연다.
길에는 얇은 막이 생겼고, 급류와 소용돌이가 지금부터는 새로운 법을 따르라는 듯 차선을 가렸다.
열림원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p.22
내가 있는 골목길, 내가 그토록 자주 지나다녔던 길이건만, 급류에 휩쓸리면서 황량해진 골목길을 보고 있자니 거기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더라고.
교양인 출판사의 《레오 아프리카누스》 p.26
대홍수 신화는 언제나 재창조를 위함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이 세상은 자꾸만 거대한 산모가 되어 모든 것을 양수에 품고 잉태한 것을 새로이 낳으려고 한다.
창세기 6장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이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6장 4~5절)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결국 하나님이 노아 가족과 짐승만을 남기고 온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 정화하는 거대한 홍수를 일으킨다. 이는 2항의 천지 재창조 화소와 같은 것이다.
북스힐의 《한국 신화의 해명》 p.84
이처럼, 일곱 개의 이야기는 모두 출산을 앞둔 이 세계를 그리기에 물기가 가득하다. 액체 같은 이야기는 세포막 없이 엉겨붙는다.
둘째, 내용적인 측면
'순환'과 '소통'. 내가 개인적으로 환장하는 모티프다. 여기서 한강 선생님의 《희랍어 시간》을 말할 수 있겠는데, 이때 나는 늘상 두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를 함께 거론한다. 소통 기능이 상실되어도 연결되는, 삶의 끝(죽음)에 이어져 있는 또 다른 생. 과학적으로도 우주적으로도 우연이란 없다. 하지만 우연의 없음은 그 자체로 우리의 존재가 필연적인가 하는 물음에 진화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동시에, 인간 외 고등 생물의 존재를 고려해보게 하고 반대로 창조론까지도 생각해보도록 가능성을 한껏 연다.
누군가 죽었다는 것은 오늘도 모든 게 정상적으로 계속될 거라는 증거다.
열림원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p.14
그것은 마치 대멸종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발코니가 수십 마리의 날치 사체로 수북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보아온 광경이었지만, 그 냄새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죽은 날치들에게서는 상한 분유 냄새가 났다.
같은 책, p.65
필연적이지 않은 것들. 이마. 손. 꼬리뼈. 무릎. 머리카락. 눈동자······ 나는 미끄러지고 있다.
같은 책, p.255
나 혼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물리적 의미에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내가 가진 어떤 관점에서 볼 때 그런 것인가?
열린책들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p.11
사람의 뇌도 이런 동물의 뇌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지능이 탄생한 것은 주사위 던지기에서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필연적인 발전일까? 여기서도 우리는 겸허하게 자신의 무지를 직시해야 한다. 이 질문은 지능이 우주에서 드문 것인지 묻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그럴듯한 답을 얻지 못했다.
같은 책, p.29
마구 엉겨붙어 하나의 물질이 된 일곱 개의 이야기는 자기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을 녹인다. 멸종을 위함인지, 재창조를 위함인지, 그 둘 모두인지는 알기 어렵다.
여긴 생명의 바닥이에요. 모든 것이 하나로 맞닿아 있죠.
열림원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p.104
천왕성의 여왕, 어머니 슈슈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왜냐! 그건 발전된 그들의 세계에는 몸은 없고 마음만 있기 때문이야. 시간도 없고 축적도 없기 때문이지.
같은 책, p.208
그러니까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합해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민음사의 《싯다르타》 p.196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같은 책, p.206
사실 대홍수 '심판'이라는 말조차 인간 기준이다. 우리 외의 생명들에게는 다른 종에게 발생한 변화일 뿐일지 모른다. 순환과 합치는 하나를 이루도록 한다. 그래서 순환은 결국 온전한 소통을 낳는다.
온전함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야. 알게 될 거야 너도.
열림원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p.264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모른다. 그녀는 그를 똑똑히 보고 있다. 그것 역시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모른다. 책상에서 비스듬히 비치는 갓등의 빛을 받아 절반 가까이 그늘진 그의 얼굴을,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건너다보고 있다.
민음사의 《한강 디 에센셜》 중 <희랍어 시간> p.189
침묵하는 그녀의 우산에 빗줄기들이 소리치며 떨어졌던 것을 그는 모른다. 운동화 속의 맨발들이 흠뻑 젖었던 것을 모른다. 갑자기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길에서 헤어지면 기분이 더 이상하다고 했잖아. 그녀가 안으려고, 팔을 붙들려고, 손을 잡으려고 하자 물고기처럼 재빨리 빠져나간, 지느러미처럼 부드러운 살갗을 모른다. 빗물이 고여 생긴 검은 웅덩이들을, 그 위로 날카로운 대침처럼 꽂히던 빗발을 모른다.
같은 책, p.204
셋째, 문체적 특징
누가 직유법을 촌스러운 비유라 했는가. 일곱 가지 이야기는 각각 몇 가지의 커다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무리가 될 때까지 직접적으로 비유된다. 이게 정말 읽는 재미를 준다.
1. 게
이불 속에 고인 어머니의 냄새가 가장 고약해지는 시간이다. 어머니가 물고기처럼 입을 벌리고 꺽꺽거리고 있다. (중략) 피부가 매끈한 아나운서가 서울에 엄청난 비가 내릴 예정이라고 말한다.
열림원의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p.10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홀쭉한 얼굴이 꼬리지느러미처럼 좌우로 흔들린다.
같은 책, p.12
어머니가 마침내 입을 벌린다. 당신은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듯 알약들을 어머니의 입에 하나씩 물리고, 물을 흘려 넣는다.
같은 책, p.13
2.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
햇살은 총알처럼 피부에 와서 박히는 것이고, 피부가 상하는 건 박힌 총알을 빼내도 흉터가 남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같은 책, p.44
교대로 조금씩이라도 쉬자는 내 말에는 눈을 흘겼다. 황갈색 눈동자를 마치 총알처럼 발사하기라도 할 기세였다. (중략) 나는 앞으로 뭘 더 잘해야 할지, 애초에 어떻게 더 잘해야 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아내의 눈총을 뒤로하고 작은방에 들어가 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문은 눈총에 박살 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단단했다.
같은 책, p.47
폭염 속에서 윤슬의 총구가 그들을 겨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몸을 숨길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같은 책, p.58
3. 트러블 리포트
-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연작이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키워드는 '문제'인 듯하다. 이 이야기는 문제의 시작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5차 이상의 방정식에 근의 공식이 없는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복잡한 문제는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아도 못 푸는 수가 있다.
같은 책, p.90
문제를 너무 많이 풀다 보니 문제들이 다 거기서 거기로 비슷해 보이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지겹도록 익숙한 문제를 정작 풀어내지는 못한다는 점까지도. (중략) 만약 국가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조선소나 생산직 일자리라도 얻어야 할 것 같다는 그들의 문제는 너무나도 단순해서 오히려 해답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보이는 그런 문제였다.
같은 책, p.92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책, p.110
아무도 죽지 않는 동안 대중의 관심은 옅어졌고, 사망자들의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시험 시간이 끝난 후의 시험 문제처럼 시큰둥한 것이 된 후였다.
같은 책, p.111
4. 애로 역설이 성립할 때 소망의 불가능성
콘크리트 유토피아 → 기생충
그러나 꿈은 이미 물속에 잠겨 버린 것의 이름이었다. 그것의 마지막 숨이 보글보글 물거품이 되어 떠오르듯, 우리는 우리가 희망했던 미래에 관해 농담을 주고받았다.
같은 책, p.130
팔에 게알처럼 오글오글한 소름이 돋았다.
같은 책, p.133
뭐 그게 거짓말이었다면 말년에 허리가 망가져서 늘 웅크리고 누워 있어야 했던 걸로 벌 받은 셈 치는 수밖에.
같은 책, p.154
어머니, 제가 일도 하고 다른 집도 구하기를 바라셨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누가 고생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싶겠어요. 웅크려 살아도 몸이 편한 게 더 좋지.
같은 책, p.157
5. 리버사이드 아파트 여름맞이 안전 유의 사항
생략
6, 7. 생물학적 동등성
간호사가 작은 음악실만 한 병실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여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루한 템포를 견뎠다.
같은 책, p.182
지루한 연주에 앙코르 요도 없이 왁자지껄하게 움직이는 관객들만 남았다.
같은 책, p.183
승우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할 말이 없을 때 그는 아무 말이나 하기보다는 쉼표를 찍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여자는 그런 고요가 싫지 않았다. 건반을 누르고 소리가 날 때까지의 짧은 시차. 음악이 멈출 때, 그건 비음악이 아니라 쉼표다. 여자는 덩굴처럼 얽히며 나아가는 화성적인 곡조를 떠올렸다.
같은 책, p.185
우리, 그러니까 어머니 슈슈의 아이들은 이 목록 어딘가에서 드러나는 차이로 서로를 구분한다. 목록의 차이는 다른 화음이 다른 소리를 내는 것처럼 감각적이다.
같은 책, p.221
결론
어쩌면 인간 스스로가 낳은 인간 기준의 심판 이후에야 진정한 순환과 합치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온전한 소통을 보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현존하는 것들에의 파괴를 걸쳐야 한다. 그 또한 순리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심을 키울 필요가 있을까? 개인주의를 자의적으로 싹 틔우고 열매 맺도록 둘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그 파괴의 시초가 되지는 않을까?
깨어 있다면, 문제를 직시했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심지어 슈슈의 일원이 되는 방향으로서라도, 극복되지 않을 것이란 없다.
자연은 슈슈의 따뜻한 감촉을 떠올렸다. 그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었던 기억. 피부 아래 갇혀 있었던 정신이 터진 세포처럼 확장되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감각의 흐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사랑. 외로움 없는 상태를 떠올렸다. (중략) 네가 나를 내어 주지 않으면 나는 계속 네 안에 있게 될 거야. 계속 너인 채로 멈춰 있게 될 거야. 생명은 끝없이 다시 짜이고, 진화해야 해. 너······ 승우 맞아? 나는 기억 속의 승우야. 네가 기억하는 승우이고, 슈슈의 일원이 된 승우이기도 하지. 나는 시간을 따라 존재하지 않는, 무수히 반복되는 존재의 그림자가 된 거야.
같은 책, p.263
하지만 그 운명은 단지 의식이 깨어 있는 흔치 않은 순간에만 비극적이다. 신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인 시지프, 무력하면서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자신에게 주어진 비참한 조건의 내용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 그가 산정에서 내려오는 동안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그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명징한 통찰은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한다. 도전으로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없다.
현대지성의 《시지프 신화》 p.187
창조가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같은 책,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