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색과 우리의 경계

작가정신 작정단 14기, 세 번째 ≪초록 땀≫

by 젊은최양

≪나주에 대하여(2022)≫로 2023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김화진 작가님,

≪최소한의 최선(2023)≫에서 인아영 평론가님과 좋은 합을 보여준 문진영 작가님,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네 번째 작품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작가님,

곧 내게도 올 따끈한, 후텁지근한! 신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2025)≫의 공현진 작가님,

문제적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두 번째 작품 <공의 기원> 김희선 작가님,

작가정신의 또 다른 시리즈 소설,향의 ≪0 영 ZERO 零≫ 김사과 작가님이 하나의 테마로 모였다.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 세계를 이루는 우리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개인 속으로의 침잠 그 모든 것에 겨웠다. 땀이 날 정도로.

각 작가님의 여섯 작품이 순서대로 둘씩 나뉘어 엮였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실존에 관한 탐구로 해석되는 <뮤른을 찾아서>가 좋았다. 이렇게 작가의 해설 및 후기가 덧붙여진 앤솔러지 형식의 소설집으로는 나의 확신에 찬 감상이 작가의 의도가 아닌 경우가 있어 매번 뒤통수를 맞는다. 실제적인 묘사로 지금 현대의 모습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평했던 작품이 극 추상적인 개념인 진짜 사랑과 이상향을 말하고 있었다든지(<빛과 빗금>), 아주 몽상적이고 감각적으로만 감상한 작품이 사실은 아주 극 사실적인 경험 기반의 이야기였다든지(<이사>,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둘씩 묶어, 그리고 나의 감상이 늘 그렇듯 다른 작품들과도 엮어 재조립해보려고 한다.



하긴, 이것은 소설일 뿐이다. 작가의 완고한 사상을 전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거나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

작가정신의 《초록 땀》 p.139, 이서수 작가님의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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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

김화진 작가님의 <초록 땀>과 문진영 작가님의 <나쁜 여행>


혀를 입 속에 수납하는 법을 잊은 사람과 언젠가부터 초록 땀을 흘리는 사람.

여기에서 황모과 작가님의 단편 《10초는 영원히》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사랑을 보았지만, 지금은 약한 이들에 대한 보살핌과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을 바라본다.


우리 반 애들은 정말 개성 만점이다. 이곳에 이렇게 모여 다들 앉아 있는 것만도 기적이다. 원민이는 말이 너무 느렸다. 원민이와 대화하려면 말하는 속도를 반쯤 늦춰야 했다. 말이 속사포처럼 빠른 기광이와는 앙숙처럼 사이가 나빴다. 별명이 할아범인 하범이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오늘도 세상을 욕하고 있었다. 은서는 두 겹으로 쓴 마스크 속에서 콜록거렸다. 동숙이는 심성은 착했지만 부지불식간에 무쇠 주먹을 휘두르면 무서웠다. 다모증 중기는 오늘도 제모를 하고 있었고, 책상에 짐만 남기고 교실에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건 루다였다. 유슬이는 코스프레 중독이 심해 꽤 자주 모습을 바꿨다. 지난번엔 미소년이었는데 오늘은 초등학생이다.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중 《10초는 영원히》 p.12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부러워해야 하는 걸까?


보영은 화들짝 놀란 몸짓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부른 사람이 나라는 걸 확인하자 아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그때 나는 무의식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보영이 내뱉는 숨이 부러웠다. 뱉을 때 자연스럽게 뱉어지는 숨.

작가정신의 《초록 땀》 p.14



아니면 다름을 그대로 다르게만 느끼며 나누고 예의 주시해야 하는 걸까?


숨 쉬는 것의 불편함을 잊은 잠깐의 집중. 그러다가 뭔가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이질적인 장면이라기보단 이질적인 색깔. 아주 작은 색깔이었다.

같은 책, p.21


분류가 정확히 되는 건 그래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름 붙이는 일은요.

같은 책, p.39



언제나 옳은 쪽은 사랑이다. 정답은 존중이리라. 유레카! 땀을 날리는 찬바람 같은 바른 답!


이상하게도 류비가 나를 이미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위픽 《10초는 영원히》 p.38


한쪽은 긴장을 해서 눈에 안 보이는 문제가 생기고 한쪽은 눈에 보이는 문제가 생겨서 긴장을 하고...... 얄궂네요.

그렇게 말해보는데 열린 창문으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 문제를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니 속이 시원했다.

작가정신의 《초록 땀》 p.39



초록이 무성한 치앙마이에는 태국인 핌과 이름이 잊힌 아이 파난이 등장한다.

<나쁜 여행>에도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핌이 있다.


그는 핌이 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핌은 그 생각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같은 책, p.82



<초록 땀>에서 다름을 부러워하지도 서로를 겨누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각자의 색을 존중하되 스스로를 아껴야 하는 것을 모든 인물이 인정했다면, <나쁜 여행>에서는 결국 이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채 끝이 난다.


나는 앙심을 품을 사람을 정하기 위해 친구 누구에게 줬냐고 재차 물었다. 핌이 한참 있다 대답했다.

...... 기억이 안 나.

그럼 그렇지, 그건 돌려주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핌이 중얼거렸다.

...... 너는 내 이름 기억나?

넌 핌이잖아.

풀네임.

핌...... 핌...... 기억나지 않았다. 아까 들은 여자애의 진짜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좀 더 싫어졌다. 잠시 후 핌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책, p.89



다름에 대한 인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남에게 향하던 화는 자기경멸로 이어진다. <나쁜 여행>에서는 이 퀘스천마크가 인물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해소되지는 않으나, 까오가 아닌 그 애, 이름이 잊힌 아직 때 타지 않은 순수한 어린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바른 답을 일러준다.

우리는 존중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며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그때야만이 비로소 자기를 귀히 여길 수 있다. 높은 곳에서 저 멀리를 더 넓게 보자. 초록을 보면 눈이 좋아진다던데, 먼 곳을 보면 눈이 좋아진다던데.


그러고 보니 까오가 아닌 그 애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같은 책, p.90


핌이 짐을 꾸리는 동안 나는 캔맥주를 들고 발코니에 앉았다. 울창한 나무들이 푸른 담요처럼 지평선을 덮고 있었고, 그 뒤로 붉은 해가 절반쯤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 내가 이 장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이 건물이 홀로 높기 때문. 저 풍경 안에 속하면서 동시에 저걸 내려다볼 수는 없다.

같은 책, p.91



누군가에 대한 앎은 '구별 짓기'와 동시에 일어난다.

(중략)

누군가와, 어떤 거리도 생성하지 않은 채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누군가를 기어이, 기꺼이 조금도 모르거나 혹은 나 자신이 그 누구도 아닌 채로 존재할 수는 없을까.

같은 책, p.94, 문진영 작가님의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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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이루는 우리들 사이의 경계와 기억

이서수 작가님의 <빛과 빗금>과 공현진 작가님의 <이사>


<빛과 빗금>과 <이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바깥에서 점차 안쪽으로, 낯섦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끈다.

존중과 사랑과 돌봄이 지금 당장 이 시점에 이 나라에서 어떻게 풀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한 개인의 안과 밖을 연결한다.


2018년 10월 27~29일 내내 나는 이태원에 있었다.

재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외출이 제한되었을 때 이때의 순간에 굉장한 갈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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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야, 너 지금 집이야? 이태원 아니지? 이거 보면 답장 좀 해줘."

2022년 10월 29일 새벽, 생방송으로 보도되는 뉴스를 보며

끊기지 않는 카카오톡 알림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죄책감의 눈물. 이제는 그곳에 가기가 힘이 든다.


해오는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빚이 있다고 말했다. 그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우리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우진에게는 기적으로 다가왔는데 해오에게는 우리가 대신 살았고 누군가 대신 죽었다는 부채감으로 해석되었다.

같은 책, p.169



우리는 잊지 않되 살아가야만 한다. 우연하게 읽게 된 《루카스》는 그때를 기억하게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정말 펑펑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리고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기억을 잘라내려는 것들과 싸우지 않으면 기억을 지켜낼 수 없다.

위픽 《루카스》 p.81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으로부터 한 정거장 떨어진 합동 분향소에서 애진은 약속했다.

(중략)

시피알로도 살리지 못했다는 말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보호자들을 볼 때마다 그 바다와 그 골목에서 자식들을 잃고 목 놓아 울던 얼굴들이 겹쳤다. 애진은 그 골목에서 숨이 멈춰버린 자신과 같은 이름의 또래 희생자를 생각했다. 그 골목에서 끝나버린 그의 이야기와 참사가 아니었다면 계속됐을 그의 이야기들을 상상했다.

같은 책, p.82



존중과 사랑과 돌봄을 너에게, 우리에게, 그들에게 실천하려면 모두를 빗금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

색으로, 방향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


"승주야, 빛을 먼저 보면 안 될까."

"뭐라고?"

"색보다 빛을 먼저 보라고."

승주가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빛이 뭔데?"

빛은......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야. 입자나 파동, 광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식상하지만 사랑과 온기라 표현할 수 있고, 식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노려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온기라고 말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라고도. 색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랑과 온기와 기억을 지키고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걸 우리는 자주 잊잖아. 특히 너는, 때로는 빛이 없는 사람같이 굴잖아.

작가정신의 《초록 땀》 p.128



이해되지 않는 냄새처럼, 내게 어떤 사고들은 영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전에 예방되었어야 할 사고들을 마주하면 참담하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들. 어떻게 한결같이 반복되는 것일까. 사고의 징후가 있었다고. 사전에 안전 문제를 지적받았다고. 다른 뉴스에서 같은 말을 본다.

(중략)

나는 냄새를 쫓았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일까 쫓는 동안 나는 불안하다. 불안을 느끼는 동안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냄새를 나는 쓰기 시작한다.

같은 책, p.179, 공현진 작가님의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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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속으로의 침잠

김희선 작가님의 <뮤른을 찾아서>와 김사과 작가님의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사랑과 존중에 관한 이론을 직접 세상에 맞대어 볼 줄 알게 되었다면, 실제적 눈을 떴다면, 알에서 깨어 나왔다면, 싱클레어처럼 다시 내 속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생각에 잠겨가는 얼굴과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옳거나 그르다는 건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마지막 두 작품은 시적인 이야기들이다.

한쪽은 어떤 색이 사라졌고 다른 한쪽은 어떤 향이 계속 떠오른다.

알에서 깨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사랑해야만 하지만 사실은 어두운 세상에 둘은 모두 약간은 비뚤어져 있다.


언제나 꿈에서는 그 색깔이 뭔지 깨닫는다. 그러나 깨어나면 그 색깔을 잃고 만다. 입에서만 맴도는 이름처럼 그 색은 이곳에 없다. 이곳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 어쩌면 우주 전체에도 그 색은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그런데 나의 꿈에서만 나타나는 건지- 아니면 그날 이후 사라진 건지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저 없다는 사실뿐이다.

같은 책, p.186


흠, 사실 그런 문제에는 좀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사고실험을 해보는 게 좋다, 이 말인데요. 누군가가 블랙홀을 통과해서 화이트홀로 나온다면, 그때 그 존재는 이전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먼저, '같다'라는 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정말로 같은 것? 같지 않은데도 같다고 믿으면 같은 건가요? 혹시 같은데도 같지 않다고 믿는 경우는요? 또는, 이런 식의 접근은 어떻습니까? 세계는 우리가 믿는 대로 봉이는 건지, 아니면 고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그걸 그저 보기만 하는 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까요?

같은 책, p.192


그때 벽에 걸린 티브이에선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요. 무음으로 해놨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 무너진 병원 건물 같은 데서 아이들과 여자들이 뛰어나오는 광경이 보였어요. 이제 와 돌이켜보면 거긴 아마도 팔레스타인이 아니었을까요? (중략) 그는 자기가 들고 있던 종이컵이 엎어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외쳤어요. 저걸 왜 컬러로 보여주는 거냐고. 난 물었죠. 그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 건지. 그러자 진수가 절망적으로 대답하더군요. 저 화면은 반드시 검어야 한다고, 화면 전체가 온통 검음으로 칠해져서 모든 걸 가려야 한다고. 나는 반문했어요. 그러면 우린 아무것도 볼 수 없잖아?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던 진수는, 한참 후에야 낮게 중얼거렸어요.

봐야 아는 건 아니잖아요 온통 검정색이어야 우린 볼 수 있어요 아니 봐야만 해요.

같은 책, p.202

(*검은색=검정, '검정색'은 비표준어다.)


모든 것이 어제와 동일한 채로, 너만 삭제되어 있다. 익숙한 홍차향, 창밖의 초록색 풍경, 여느 때와 다름없는 거실의 공기 속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네가 사라졌다는 것을.

일단 차를 마시기로 한다.

같은 책, p.225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기계들이 내는 조용한 소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나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나는 네가 되지 않겠다고, 제발, 필사적으로, 어둠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힘을 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은 채로, 무 냄새도, 너의 이름조차 잊은 채로, 오직 불길한 기계들이 내는 소음 속에서, 진한 홍차향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책,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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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 하는 세상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서도 다른 쪽으로 가는 일원들, 벗어나고 싶은 그 심정. 사고의 회로는 다시 첫 번째 장으로 간다.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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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황인찬 시인의 <학교를 안 갔어>와 천서봉 시인의 <7월의 복합>이 떠오른다.


학교를 안 갔어


일단 전철을 탔고

시를 벗어났어


다들 학교도 안 가고 회사도 안 가고

뭐하는 걸까


나에게는 변명이 많았지

현장학습을 하러 가는 날이에요

집에 급한 일이 생겼어요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진 않았지만


전철을 달렸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들

강물에 반사되는 빛


기관사가 차내에 계신 분들께 알리는 소리

다들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나도 사람에게 할말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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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복합


우리는

갈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연습

가령, 비를 가진 구름의 형태에 관한 연구처럼

우리는 한 발을 내딛는다


발끝에서 7월이 시작되고


우리는 소나기를 어느 모서리에 맞추어야 할지 몰라

밤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그러나 중얼거리는

무지개 때문에 도무지 겹쳐지지 않는 슬픔

되돌아와서 어디까지 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문장

이것은 우리가 처음 발견하는 여름, 찢어져도 괜찮아

연습이니까 가령, 중독되지 않는 고독에 관한 연구처럼

우리는 뜨겁게 반복되고 그리고 버려질 거야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7월에서 끝나버린 발끝


어떤 연습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났으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영영 못 돌아올 거야 우리에게 헌신하는 7월은

참 착하지 갈 데까지 갔다가 녹아버린 얼굴은

얼굴 없이 되돌아오는 우리의 슬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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