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
위즈덤 하우스의 위픽 시리즈에서는 레터 형태로 온라인 선연재를 한 후에 곧바로 물성을 입혀 출간을 하는 것에서 과감함과 자신감, 그리고 특별함을 느꼈다. 새로운 시즌부터는 '색'에만 변형을 주고 있긴 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매번 콘셉트에 맞게 같은 표지 디자인에 색감과 질감을 다르게 썼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안팎으로 이런 키치하고 당돌한 기획력이라니! 그래서 시즌 1 초기부터 슬며시 팬을 자처했고 한 번은 담당 편집자의 북토크에도 몰래 참석하기도 했었다. 어떤 작품은 레터 연재부터 관심을 가지기도, 어떤 작품은 출간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구매하기도, 어떤 작품은 표지 색과 감촉만으로 랜덤뽑기처럼 선택하기도 했다. 어떤 작품에서는 개인적인 기준으로 큰 파문을 담고 있기에 과감함 그 이상의 것에 혼자 쫄아서(?) 놀라기도 했다. 국내 현대문학을 전혀 즐기지 않던 나는 위픽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젊은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새 책장에 위픽 시리즈 22권이 쌓여 있고, 김서해 작가님의 ≪라비우와 링과≫ 그리고 한참 핫했던 예소연 작가님의 ≪소란한 속삭임≫ 외에는 모두 완독했다.
나 또한 혼자서 수줍게 기획한 시리즈들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시리즈별 글감도 꽤 많이 쌓여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풍족함을 느꼈다.
어느 순간까지는 기쁨이었고 언젠가부터는 부담이었는데, 오랜만에 오늘은 풍족이다.
#1
≪소녀는 따로 자란다≫
≪만조를 기다리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
#2
≪오로라≫
≪두더지 인간≫
≪다다른 날들≫
#3
≪10초는 영원히≫
≪마유미≫
≪루카스≫
그리고 #4
임솔아 작가님의 ≪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
축축하고 적적하지만서도 기댈 수 있음에 든든한, 고통의 파문에, 그래 든든하게 포섭되는 순간. 그것을 담은 작품을 오늘, 위픽 시리즈로 만났기 때문. 멋진 기획 안 멋진 창작자의 작품에 또 한 번 나를 찾았기 때문.
"진짜 주인공은 영혜가 아니라 언니인 것 같아요.
영혜가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본인이 '그렇게' 되었을 거라 떠올리잖아요."
폭력 속에 식물로 피어난 여자, 한강 선생님의 ≪채식주의자≫를 읽고는 식물이 되기로 결정한 영혜보다도 화자이자 그녀의 언니인 인혜에게 집중했다.
위픽 시리즈의 ≪소녀는 따로 자란다≫에서는 단 한 번도 부모가 바라는 상에 부합하지 못한 내 모습과, 하지만 이런 나를 멋지게 받아들인 '수'처럼 멋진 나의 어른들을 보았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에서는 서로를 인정하며 사랑하며 서로 성장하는, 성장해야만 하는 그 관계를 보았다.
결국 우리는 모(母)의 태(胎)로 돌아간다.
≪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는 ≪채식주의자≫에서처럼 '태'를 공유한 관계가 등장한다.
심지어는 나와 이름이 같다. 유리 규리, 규리 예리.
국내 현대문학에서만이 찾아볼 수 있는 그 정취.
이제는 꽤나 충분히 감각한 것 같은데도 새로운 작품은 또 다른 감흥을 선물해준다.
이번에도 그랬다. '언니'라는 말에서 오는 친족에 대한 나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연민과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