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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19. 2024

킷사텐(喫茶店) 좋아하실까요?

최민지 작가, 도쿄 킷사텐 여행(남해의 봄날)

 책은 결과물일 뿐이다. 심플하게 형상화된 한 권의 책 뒤에는 작가의 수 없이 긴 뜨거운 시간이 담겨 있다. 얼마나 길고 뜨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최민지 작가는 '킷사텐(喫茶店)'이라는 씨앗 하나만 품고,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일본의 킷사텐 문화권에서 이 책을 피워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고 묵직한 시간을 보내며 마침내 아름다운 책을 만들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이 책은 오직 최민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최민지 작가가 긴 시간 이 책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나 역시 생소했던 킷사텐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게 되었고, 작가가 책을 만드는 그 뜨거움에 전염되어 내 삶에 충실하고 삶을 더욱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냉정하게 말해 책은 뜨거움 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뜨거움이 향했던 본질인 킷사텐의 역사와 문화. 이 책은 그 본질에 충실하다. 작가가 수없이 도서관을 오가며 오래된 문헌들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번역하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만든 이 책을 찬찬히 곱씹으며 읽다 보면 긴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이 책에는 방대한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 다행히 그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이 책은 그 퀄리티를 인정받아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소출판사 성장 부분 제작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p.14 (최초의 킷사텐 가히사칸) 킷사텐에 바둑판이며 장기판, 신문, 책, 붓과 벼루를 놓자 손님들은 그곳에서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도쿄라는 도시에 문화 살롱으로서 킷사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가 전업 작가가 되기 전 7년간 운영하던 재즈카페가 사실 재즈 킷사였음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하루키가 킷사 운영을 접은 후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즈 킷사를 사랑하는 방식에서는 마음이 울컥했다.

-p.211 재즈가 좋아서 열세 살 때부터 레코드를 모았다는 하루키는 대학 시절 아내와 결혼하면서 재즈 킷사를 시작한다.(중략) 무라카미 하루키는 킷사텐 마스터가 아닌 작가의 방식으로 재즈 킷사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파울리스타 킷사텐의 진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행복한 시간

 많은 킷사텐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책에 등장하는 많은 킷사텐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형태의 공간은 손님과 손님이 교류하는 킷사였다.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서로를 알아보고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을 생각하며 나도 설레였다. 그런 킷사텐에 가보고 싶다. 마스터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을지도 궁금하다.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 아니었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꾸미고 싶은 공간이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과 커피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p.201 후게쓰도가 거대한 창작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마스터가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손님과 손님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창작욕구를 자극하고, 새로운 예술을 촉발하는 킷사텐을 만들고 싶어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오센틱(authentic)'한 킷사텐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작가의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크기에 새삼 감탄했다. 오센틱은 거짓이나 모방이 아닌 진실과 사실을 뜻하는 말로 작가는 질문한다. 공간의 오센틱함은 무엇일지. 그리고 이 오센틱을 담고 있는 공간이 긴 시간 자신만의 진정성을 쌓아온 킷사텐이라 말한다. 그러한 작가 본인이야말로 오센틱 한 분이라 여겨졌다. 그 역시 오센틱 한 혜안이 있기에 일본 곳곳에 산재한 많은 공간 중 보물 같은 킷사들을 찾아내 넓은 바다에서 끝없이 조개를 캐는 기분으로 자신의 모든 노력을 갈아 넣고 집필 작업에 임해 기어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 아닐까. 그를 한없이 응원하고 싶고,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되는 이유이다. 

 끝으로 작가의 긴 시간의 노고로 완성된 이 책이 발간된 올 12월에 안 좋은 상황과 겹쳐 당장 큰 빛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왠지 이 책은 오래도록 살아남을 책임을 확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류의 책을 아직까지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아 이쪽 분야로는 독보적인 책이 될 것을 예감한다. 

 킷사텐에 가서 숙련된 마스터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싶어 지는 밤이다.  


※ 최민지 작가님의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talats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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