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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기차

by 정은숙

2주 만에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탔다. 년에 한두 번도 안 가던 곳인데 연례행사가 된 지 여러 해다. 일주일 전에 상행과 하행기차표 예매도 마쳤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일찌감치 표가 매진되는 까닭이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길치인 탓에 이번에는 남편이 따라나섰다. 오전 7시 36분 기차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최근에 기차역 근처로 이사한 덕분에 걸어서 5분 만에 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인데 승객이 제법 많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야 기차가 천천히 역으로 들어온다. 탑승칸은 1호차 7C, 7D. 한참을 걸어 자리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좌석이 역방향이다. 매번 꼭 확인하고 예매했는데 이번엔 그냥 지나쳤던 모양이다. 대안이 없으니 앉을 수밖에 없다. 좌석배치는 반대편 승객들과 마주 보는 형국이다. 어려서부터 알아주는 멀미왕인지라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창밖 풍경은 곳곳이 청청하다. 나뭇잎들은 진한 초록빛으로 빛나고 모내기를 앞둔 들녘 논들은 호수처럼 물부자다. 흐린 하늘도 모처럼 그 속에 잠겨 쉬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길이 지나간 곳은 이미 어린 모들이 앙징맞은 춤을 춘다. 역방향 좌석에 앉은 덕분에 바깥 풍경이 거꾸로 스쳐 빠르게 지나간다. 마치 과거를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한참 동안 뒤로 가다 보면 과거 어디쯤 추억의 공간에 도착할 같은 착각마저 든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듯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사는 나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인가 싶다. 매번 아니라고 부정하고 나는 예외라고 우겨보지만 집을 나서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전사가 되어버리는 것을 아는 탓이다.


욕심이 없다고 믿지만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고 견주는 날이 많았다. 잠시 내려놓고 멈추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시간들. 지나친 조바심과 책임감의 무게끔은 억울할 때도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휴가 하루 쓰는 일조차 여러 번 망설이고 머릿속은 늘 거미줄처럼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늘 숨이 턱에 차 넘어지고 난 후에야 하는 수 없이 멈추고 또 후회한다. 삶은 완전히 채워진 상태보다 조금 모자란 순간, 다시 걷거나 뛰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한데 쉼과 멈춤에 익숙지 않은 탓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꿈결이다. 지난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신경이 곤두선 탓에 잠을 설쳐 피곤했던 모양이다.

한 시간여 넘게 잠을 자다가 깨서 주변을 살핀다. 출발할 때 빈자리었던 좌석이 어느새 만석이다.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사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우는 사람,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멍하니 앉아 낯선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시간을 채운다. 가끔은 순방향이 아닌 역방향 좌석으로 기차를 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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