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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요] 유엑서로 일하고 싶어요 #008

by UX민수 ㅡ 변민수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근본적인 차이는 흔히 생략되곤 하는 주제다. 특히 제조업에서의 ‘공장 정지’가 갖는 심각성은 서비스업계 경험자들은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는 화두일 것이다. 이것은 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일하는 방식, UX 관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논의거리다.




물리적 생산 기반의 절대성


제조업은 물리적 제품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이다. 때문에 제품이 생산되지 않으면 바로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생산 중단은 곧바로 천문학적 손실로 이어진다. UX의 관점에서 보면, 제조업은 제품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명확한 결과 중심의 프로세스를 요구받는다. 공장이 멈추는 것은 마치 심장이 멈추는 것과 같다는 표현은, 바로 이 ‘중단 불가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뉴스에도 나올 일이기 때문이다.


내 주된 커리어인 제조 기반 대기업에서도 실제로는 UX 조직이 개발이나 생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실제 공장 라인에 투입된 전례도 있기에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양산 시점에 맞춰 개발을 완료하지 못하면 생산라인 전체가 지연되므로, 단순히 디자인(d) 퀄리티를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 생산성, 안정성까지 고려한 UX 설계가 중요하다. 즉, UX 자체도 ‘디자인(D)’이라기보다는 ‘시스템 최적화’의 관점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슈처리 일과는 어떻게 보면 공무원이 일하는 모습과도 흡사해 보이기도 할 정도다.



서비스업의 연속성과 비물질성


반면 서비스업은 물리적 생산물보다는 사용자의 경험 그 자체가 상품인 경우가 많다. 고객응대, 서비스 플랫폼, 디지털 경험 등이 핵심 자산이며, 따라서 하루 서비스가 중단되더라도 백업 체계나 대체 루트를 통해 복구하거나 보완이 가능하다. 물론 이 역시도 사고지만 말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즉각적인 금전적 손실’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사용자 만족도’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형태의 리스크가 더 크다. 그래서 서비스 UX에서는 사용자의 피드백 루프를 빠르게 확보하고, 문제를 신속하게 수정하거나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일의 성과를 추적한다. 즉, 서비스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을 디자인(D)하는 일이 주되다 보니 ‘심장이 멈췄다’는 식의 체감은 하긴 어렵겠지만, 그만큼 UX가 차지하는 무형의 가치는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낫다 안 낫다 좋다 나쁘다는 없는 그냥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느냐 안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는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게다가 대개의 UX나 서비스 기획군 관련 정보는 서비스업에 기초한다. 암묵적으로 업계라 하면 그들이 중심인 것처럼 착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불균형이 기반으로 자리 잡혀 있다. 이에 제조업 준비생들은 정보 얻기 조차 하늘의 별따기다.



실무 관점에서의 UX 차이


실무에서도 이 차이는 뚜렷하다. 제조 기반의 UX는 제품 론칭 시점이 명확하고, ‘출시일에 맞춰’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야 하므로 프로젝트 드라이브가 상당히 강하다. 못 바꾸고 그냥 나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난다. 물론 나중에 개선할 수 있지만 서비스업에 비교하면 타이밍이 매우 늦고 제한적이다.


반면 서비스업의 UX는 ‘출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AB 테스트하며 사용자 반응을 기반으로 개선해 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업 UX에서는 일종의 ‘마감 중심적 사고’가 중요하고, 서비스업 UX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선 사고’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각 도메인에 맞는 UXer의 역량과 일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이걸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조직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


제조업에서는 생산, 품질, 하드웨어 설계, 마케팅 등 여러 부서와의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특히 생산 일정을 고려해 일정 관리가 매우 타이트하며, UX팀이 프로젝트의 선행 기획단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R&D 주도의 기획 이후 세부 조정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서비스업의 경우, UX 조직이 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고, PO(Product Owner)나 PM과 함께 제품 방향을 주도해 나가는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조직의 구조나 역할 범위가 유연하고, 피벗을 수 있는 여지도 많다. 때문에 서비스 담당자는 비교적 발언권이 크고, 실험적인 시도에도 열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업 선택 시 고려점


UX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구조적 차이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더 맞는 환경이 어떤 쪽일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업무 강도나 역할 범위뿐 아니라, 내가 어떤 유형의 문제 해결에 흥미가 있고 어떤 방식의 협업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진로 선택의 기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로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예를 들어,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제약 내에서의 최적해를 찾는 데에 흥미가 있다면 제조업 UX가 더 적합할 수 있다. 반면, 정답 없는 문제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개선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면 서비스업 UX가 더 맞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반화는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내 목표를 더 잘 이해하고 그에 부합하는 목표 회사를 잘 고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핵심역량이 된다.




제조업은 하루만 공장이 멈춰도 손해가 막대하고, 서비스업은 그것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이는 곧 일하는 방식, 프로세스, UX의 역할, 조직 구조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각자의 성향과 목표에 따라 더 잘 맞는 쪽이 분명히 존재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UX 관점에서 어떻게 다르고, 내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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