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속도로 배우는 일
멘토는 결코 잘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멘토링이라는 고리 위를 오래도록 걸어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경력은 숫자로 강렬하게 남지만, 지구력은 경험으로 층층이 남는다. 화려한 타이틀보다 더 큰 신뢰는, 변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오리라 믿는다.
오래 버틴 사람은 많다. 하지만 오래 ‘남아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리듬이라고 본다. 자신의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 잠시 멈춰도 다시 걷기 시작하는 사람. 그런 멘토는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그 자체로 ‘지속성의 증거’가 된다.
그래서 진짜 멘토의 구력은 스펙이 아니라 리듬이다. 자신을 닦고, 관계를 이어가는, 묘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리듬 말이다.
지구력은 근성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멈출 줄 아는 사람의 용기다. 지친 몸을 쉬게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사람. 그런 멘토는 완벽하게 버티는 법보다, 적당히 무너지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이다.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돌본 사람만이 남을 돌볼 수 있다. 지친 멘토는 쉽게 조급해지고, 그 조급함은 결국 멘티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괜찮은 멘토일수록 쉬는 법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한 템포 늦춰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당장 답이 떠올라도 말 꺼냄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 시간의 여유가, 상대의 속도를 인정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지구력은 결국 ‘스스로를 용서할 줄 아는 기술’이다. 완벽하게 이끌지 못해도 괜찮다고, 지금은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경험 없이 얻기 힘든 이것은, 그 사람만이 오래도록 타인을 지탱할 수 있다.
멘토는 무언가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한편 말을 아끼기도 하는 존재다.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 눈치는 비위를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읽는 감각이다.
멘티는 때로 지도를 원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내심 조용한 동행을 원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 일종의 안 짚어 되는 지팡이를 손에 쥐고 싶은 심리랄까. 같이 한숨을 쉬어줄 사람,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힘들겠다’고 말해주는 사람. 멘토의 매력은 바로 그런 인간적인 타이밍에 있다고 경험적으로 느꼈다.
그러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견딜 줄 아는 사람.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말보다 표정을 읽고, 표정보다 숨을 읽는다. 지구력 있는 멘토는 그 눈치로 관계를 지킨다.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아는 것. 그게 기술이라면, 아마도 인간적으로 가장 따뜻한 기술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다양한 이들과 사연과 더불어 부대껴보니 나의 무엇이 늘었는가 생각해 봤을 때 결국 눈치가 빨라짐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한때는 멘티였다. 모르는 게 많고, 인정받고 싶고, 실수로 얼굴이 화끈거리던 시절. 그 시절이 없던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시절을 잊지 않는가다. 멘토의 구력은 결국 그 기억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를 기다려준 이의 시간, 나를 대신해 욕먹어준 상사의 표정, 내가 헤매던 밤을 묵묵히 지켜봐 주던 사람의 침묵. 그 경험이 멘티의 마음을 만든다. 그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 나중에 괜찮은 멘토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멘토링은 결국, 인간의 속도를 인정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기다림을 받는 사람의 불안도 안다. 그래서 괜찮은 멘토는 절대로 조급하지 않다. 가끔은 미안함으로 배우고, 가끔은 그 미안함으로 사람을 품는다. 그 미묘한 온도차가 멘토를 숙성시킨다.
멘토의 구력은 잘난 이력이 아니라, 관계의 내구성이다. 몇 명을 가르쳤는지가 아니라, 몇 명과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는가가 중요하다.
누군가를 오래 돕는 일은 체력보다 체온이 필요하다. 식지 않는 온기, 버텨주는 존재감, 그리고 그저 옆자리에 남아주는 인내. 또 찾게 만드는 동력. 이게 진짜 멘토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멘토는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아니다. 때문에 오히려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다. 넘어져 본 사람, 울어본 사람, 그리고 결국 웃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더 잘 공감하고 오래 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근육이 있어서다.
결국 멘토의 구력은, 멘티에게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가 아니라 “저 사람처럼 살아도 괜찮겠다”를 느끼게 하는 힘 아닐까. 그게 가장 인간적인 멘토의 얼굴이다.